June 22,2018

30년 만에 인정받은 옥수수 과학자

노벨상 오디세이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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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미국의 여성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은 노벨위원회로부터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82세의 노과학자는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0여 년간의 모욕과 무시를 참으며 홀로 연구를 이어가던 모습이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스쳐갔기 때문이다.

1902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하트포트에서 의사의 셋쌔 딸로 태어난 매클린톡은 어릴 때부터 자동차나 기계 수리하는 일을 좋아했다. 당시 여성들은 대학을 잘 보내지 않던 관행을 무릅쓰고 그녀는 아버지를 설득해 코넬대학의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는 에머슨 교수 밑에서 옥수수 염색체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옥수수 연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연구에 사용하는 옥수수를 연구원들이 직접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옥수수에서 튀는 유전자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바바라 매클린톡의 평소 연구 모습. ⓒ Public Domain

옥수수에서 튀는 유전자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바바라 매클린톡의 평소 연구 모습. ⓒ Public Domain

하지만 옥수수 농사보다 그녀를 더 힘들게 한 건 여성 과학자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당시의 대학 풍토였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매클린톡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코넬대학, 미주리대학 등을 옮겨 다녔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다. 에머슨 교수 밑에서 옥수수를 함께 연구한 이들 중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한 것은 그녀가 유일했다.

그녀의 떠돌이 생활을 종료시킨 곳은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였다. 그녀는 40세가 되어서야 그 연구소의 정식 연구원이 되어 옥수수를 더욱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2년 후 매클린톡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유전학회의 회장이 되었으며, 미국과학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이단적 가설로 취급 받은 튀는 유전자 이론 

옥수수는 알맹이가 보통 노란색을 띠지만, 파란색이거나 갈색 또는 빨간색의 알갱이가 혼재된 개체를 흔히 볼 수 있다. 옥수수의 이 같은 잡색 문제는 멘델이 밝힌 유전법칙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연구에 매달린 매클린톡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옥수수 잡색 현상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본래 있던 위치에서 다른 염색체 위치로 이동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자리를 바꾸는 유전자를 그녀는 트랜스포존(transposon) 또는 튀는 유전자(Jumping gene)로 명명하고, 그에 대한 이론을 1948년과 1950년에 논문으로 각각 발표했다. 또한 1951년에는 미국유전학회의 특별 심포지엄에서 트랜스포존 이론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새로운 이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한 곳에 새겨진 표식처럼 늘 제자리를 지키며 정보를 바꾸는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다. 유전자가 마치 염주의 구슬처럼 염색체 속에서 순서대로 꿰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갑자기 대열을 이탈해 다른 염색체 사이로 이리저리 옮겨다닌다는 매클린톡의 주장은 이단적인 가설로 취급받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매클린톡은 유전자의 기능과 구조가 세포 및 세포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와의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즉, 유전자는 옥수수라는 유기체와의 교감을 통해 결정된다는 의미였다. 이는 기존의 과학적 가치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유전자가 유기체의 특성과 기능을 전적으로 결정한다고 믿었던 유전학계로부터 그녀의 주장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유전정보는 DNA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된다는 중앙통제론이 확고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DNA의 구성성분 중 하나만 달라져도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 분명한데, 유전자가 무책임하게 튀어다닌다는 매클린톡의 주장을 받아들이려는 유전학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줬어요

그럼에도 매클린톡은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수도승처럼 은둔생활을 하며 옥수수 시험장에서 홀로 자신의 연구를 이어갔다.

그 후 분자유전학의 발전으로 그녀의 튀는 유전자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19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맨처음으로 튀는 유전자가 관찰된 곳은 박테리아의 게놈에서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동물과 식물에서도 튀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쥐의 혈액 중 항체를 만드는 DNA의 경우 무수히 다양한 형식으로 유전자가 재배열되었다. 인체의 면역계가 많은 종류의 항체를 만드는 것도 그처럼 유전자가 뒤섞이기 때문이다.

옥수수 알맹이의 잡색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매클린톡의 튀는 유전자 이론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병원성 감염이나 아프리카의 수면병, 암세포의 염색체 변화 등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때 황당한 가설로 취급받던 튀는 유전자 이론이 확실한 이론으로 정립되면서 그녀는 각 연구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상을 받았다. 1978년 미국 브랜다이스대학은 로젠스틸상을 수여했으며, 1979년에는 미국 록펠러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각각 그녀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헌정했다. 어떤 때에는 심지어 일주일 동안 무려 3개의 상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드디어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단독 수상자로 결정되자 그녀는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을 남겼다.

“나 같은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참 불공평한 일입니다. 옥수수를 연구하는 동안 나는 모든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옥수수가 해답을 알려준 덕분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거든요.”

자신을 이단으로 몬 세상과 과학계에 원망을 가질 만했지만, 그녀는 뒤늦게 주어진 노벨상마저 과분하다고 표현할 만큼 겸손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매클린톡은 1992년 9월 2일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옥수수 연구실과도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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