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발표자료 없이 소도구와 연설만으로 3분 내에 청중을 매료시켜야 하는 젊은 과학기술인들의 대결 ‘페임랩(FameLab)’이 아시아 국가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지난 18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는 250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페임랩 코리아 2014’ 결선대회가 진행되었다. 페임랩은 2005년 영국에서 시작된 행사로, 주어진 시간 내에 청중이 과학기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연사가 쉽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야 한다.

6월 3일부터 영국에서 펼쳐질 ‘페임랩 국제대회’의 한국대표를 뽑는 이날 결선대회에는 총 11명의 후보자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지난달 108명 간의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행사는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열렸으며,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주한영국문화원이 공동 주관했다.
대상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주제로 천문학에 대해 강연한 지웅배(23,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참가자가 차지했다. 최우수상은 암세포의 성장과 사멸 원리를 소개한 이상곤(27, 중앙대 약학대 박사과정) 참가자가, 우수상은 동물과 사람 간의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을 설명한 이덕원(28,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참가자가 가져갔다.
창의성으로 관객 매료시키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대결
“지구는 예술이라 부를 만큼 완벽에 가까운 행성입니다.”
지웅배 참가자가 ‘아트(ART)’라 적혀 있는 스케치북을 꺼내며 연설을 시작했다. 태양과의 거리가 조금만 멀었거나 가까웠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생명체가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존재하는 별이 또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전 세계 천문학자들은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직접 방문할 수가 없기 때문에 관측과 계산만으로 알아내야 한다.
지구 같은 행성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의 주위를 공전하게 마련이다. 행성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면 항성의 빛이 깜빡이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항성이 행성의 앞을 지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빛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찾아낸 행성에 ‘에너지(E)’와 ‘물(H2O)’이 있다면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도 높다. 지웅배 참가자는 ‘아트’ 스케치북의 왼쪽 날개를 펴서 알파벳 E를 덧붙이고 오른쪽에는 H를 이었다. 그러자 예술이라는 단어가 ‘지구(EARTH)’로 변신했다. 객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과학 소통전문가 즉 ‘과학 커뮤니케이터(science communicator)’는 과학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동시에 관객을 집중시키고 매료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하기 위해 2005년 영국 첼튼엄 과학 페스티벌(Cheltenham Science Festival)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페임랩’ 행사는 3분으로 시간까지 제한해 짧은 시간 동안 창의성을 총동원하도록 압박을 가한다.
이러한 제약에서 젊은 아이디어와 새로운 시도가 피어난다. 마틴 프라이어(Martin Fryer) 주한영국문화원장은 이에 대해 “21세기 문제를 21세기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대상 수상자는 오는 6월 영국 본대회에 참가
다른 수상자들의 강연도 창의성과 기발함을 담아냈다. 좋은 내용에 개인적인 절실함이 덧붙여지면 관객들에게 진정성이 전달된다. 암세포에 대한 설명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이상곤 참가자는 실제로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이다.
윗옷에 여러 색깔의 장난감 공을 붙이고 등장한 이상곤 참가자는 하나씩 떼어내며 암세포의 발생과 전이의 원리를 설명했다. 공을 흔들자 번쩍이며 내부 램프가 빛났다. 청중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암세포는 질병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꿈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다. 이들은 정상세포에는 없는 특이한 신호를 방출해서 멀리 떨어진 동료 암세포의 분열을 가속시킨다. 이 신호를 가로챈다면 암세포만을 골라내 없애거나 성장을 막을 수도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본인의 전공 분야를 소재로 삼아 설명을 할 때 자신감이 넘친다. 이덕원 참가자는 수의학 전공자로서 동물과 사람 간의 바이러스의 변이 문제로 우수상을 받았다.
흔히들 바이러스는 같은 동물끼리만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의 전염병 중 75퍼센트는 동물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 비해 인간이 이룩해낸 성과는 미미하다. 지금까지 구조와 특성을 밝혀낸 것은 전체 동물 바이러스 중 1퍼센트에 불과하다.
예비수의사답게 고양이 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온 이덕원 참가자는 사람-동물 간 바이러스의 특성에 대해 연구한다면 초기 대응을 통해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9명의 후보자들이 갖가지 과학기술 분야를 소재로 열띤 강연을 펼쳤으며, 그때마다 객석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행사를 주최한 미래창조과학부 장석영 미래인재정책국장은 “이번 대회를 통해 발굴한 전문가들이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펼친다면 과학을 더욱 친숙하게 느끼는 사회 분위기가 차츰 만들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11명의 참가자 전원에게 ‘과학 커뮤니케이터’ 위촉장을 수여하며 젊은 과학자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줄 것을 당부했다.
최우수상을 받은 지웅배 참가자는 오는 6월 3일부터 8일까지 영국 첼튼엄 과학 페스티벌에서 열리는 ‘페임랩 국제대회(FameLab International)’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 임동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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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04-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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