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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17-11-24

10개월 유아도 가치 판단한다 비용 소요와 얻는 이익 직관적으로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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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할 때는 목표 달성에 드는 노력과 목표를 이뤄 얻는 이득을 계산하게 된다. 그런데 10개월 정도 된 아기들도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애쓰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목표한 바에 얼마나 큰 가치를 두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런 능력은 목표를 이루는데 드는 비용과 얻는 이익에 대한 정보를 통합해야 하므로, 어린이들이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 매우 일찍 직관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미국 MIT와 하버드대 연구진이 수행한 이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23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아기들, ‘경제 수학’을 직관으로 판단

논문 저자인 샤리 류(Shari Liu) 하버드대 대학원생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아기의 세상 첫 경험을 언급한 것에 대해 “아기들은 세상을 그렇게 복잡하고 혼란스런 곳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며, “아기들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데 드는 비용과 그런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목표의 가치를 포함해 숨겨진 여러 변수들의 측면에서 그 행동을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논문 저자의 한 사람이자 ‘뇌, 마음 및 기구 연구를 위한 MIT-하버드 연합센터’(CBMM) 핵심멤버인 조쉬 테넨바움( Josh Tenenbaum) MIT 뇌와 인지과학부 교수는 “이 연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근원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라며, “연구 결과는 매우 놀랍게도 경제학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는데 핵심이 되는 기본 수학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몇 마디 단어만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아기들에게는 매우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테넨바움 교수는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이자 CBMM 핵심 구성원인 엘리자베스 스펠크(Elizabeth Spelke) 박사와 함께 연구팀을 이끌었다. CBMM 박사후 과정 연구원인 토머 울만(Tomer Ullman)도 이 연구에 참여했다.

10개월 정도 된 아기들도 사람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 목표에 두는 가치를 판단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Credit: Pixabay
10개월 정도 된 아기들도 사람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그 목표에 두는 가치를 판단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Credit: Pixabay

가치 계산은 어떻게 하는가

이전 연구에 따르면 성인과 노인들은 사람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관찰함으로써 그 동기를 추론할 수 있다고 한다.

하버드/MIT 연구팀은 이 능력이 언제, 어떻게 개발되는지에 대해 알고자 했다. 이전 연구에서 아기들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에 대해 일관성이 있고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를 기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에서 제기된 질문은 아기들이 사람들의 목표와 그것을 얻기 위해 요구되는 노력을 결합해 그 목표의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연구팀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 10개월 된 아기들에게 튀는 공 모양의 만화캐릭터인 ‘에이전트’가 특정 목표 즉 다른 캐릭터에 접근하려고 애쓰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동영상에서는 에이전트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높이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먼저 아기들은 에이전트가 낮은 벽 위로는 뛰어올랐으나 중간 높이의 벽에 뛰어오르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았다. 두 번째로 에이전트가 중간 높이의 벽으로 뛰어올라 일부 목표는 달성했지만 최종 목표 달성을 위해 높은 벽으로 뛰어오르기를 거부하는 장면을 보았다.

연구팀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에 관한 유아의 직감을 평가하기 위해 에이전트(빨간 공)가 장애물을 뛰어넘어 목표(파란색 캐릭터)에 도달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Courtesy of the researchers
연구팀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에 관한 유아의 직감을 평가하기 위해 에이전트(빨간 공)가 장애물을 뛰어넘어 목표(파란색 캐릭터)에 도달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Courtesy of the researchers

아기들도 노력의 양에 따른 가치를 추정

그런 다음 아기들에게 에이전트가 아무런 방해 없이 두 가지 목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줬다. 어른이나 나이 든 어린이들은 에이전트가 먼저 본 비디오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에이전트가 두 번째 목표를 선택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연구팀은 10개월 된 아기들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에이전트가 첫 번째 목표를 선택하는 장면을 보여주자 이 장면을 더 오랫 동안 주시했다. 이는 그 결정에 놀랐다는 것을 의미한다(주시하는 시간의 길이는 어린이 대상 연구에서 통상 놀라움을 측정하는데 사용된다).

연구팀은 아기들이 에이전트가 같은 행동을 두 가지의 상이한 유형의 노력으로 수행하는 것, 즉  여러 기울기의 경사를 오르고 폭이 다양한 틈을 뛰어넘는 모습을 관찰할 때 같은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류 대학원생은 “우리 실험에서 아기들은 에이전트가 노력을 덜 기울이는 일을 선택했을 때 좀더 오래 주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는 아기들이 목표 달성에 들이는 노력의 양으로부터 에이전트가 그 목표에 두는 가치의 양을 추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비용과 가치 면에서 왼쪽은 벽이 높아 노력 만큼 가치를 얻지 못 하지만, 벽이 낮아지면 뛰어올라 목표한 곳으로 갈 수 있는 가치를 얻게 된다.  Courtesy of the researchers
비용과 가치 면에서 왼쪽은 벽이 높아 노력 만큼 가치를 얻지 못 하지만, 벽이 낮아지면 뛰어올라 목표한 곳으로 갈 수 있는 가치를 얻게 된다. Courtesy of the researchers

가치 판단 개념 생후 일찍 형성되는 듯

이 연구 결과는 아기들이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의 양에 기초해 사람들이 그 일에 얼마나 가치를 두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MIT 컴퓨터 과학 및 인공지능 연구실에 속해 있기도 한 테넨바움 교수는 “실험 대상 아기들은 말을 배우기 이전으로 스스로 적극적인 행동을 많이 할 수는 없지만 정교하고 정량적인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스펠크 교수는 유아를 연구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방식에 깊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철학과 경제학에 있는 직관 심리와 효용 이론의 중심 개념인 비용 및 가치와 같은 추상적이고 상호 연관되는 개념은 유아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어떤 조기-생성(early-emerging) 시스템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헝가리 중앙유럽대학 인지과학 교수인 게르게이 치브라(Gergely Csibra) 교수는 이 연구가 “말을 배우기 전의 유아가 경제학자처럼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다”며, “아기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비용과 이익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수록 성공할 때 얻는 보상의 가치가 더 크다는 잘 알려진 논리를 응용한다”고 말했다.

비용 및 가치와 같은 추상 개념은 유아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조기-생성 시스템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Credit: Pixabay
비용 및 가치와 같은 추상 개념은 유아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조기-생성 시스템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Credit: Pixabay

인공지능 모델링

지난 10년 동안 과학자들은 성인과 나이든 어린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목표와 의도 및 믿음들을 추론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입력자료를 통합하는 방식을 모방한 컴퓨터 모델들을 개발해 왔다. 이번 연구를 위해 연구팀은 그런 작업들 중 특히 줄리안 자라-에팅거(Julian Jara-Ettinger) 박사가 2016년에 수행한 연구를 기반으로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10개월 된 아기가 에이전트의 행동을 관찰한 후 에이전트의 목표를 추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새 모델은 ‘작업’(거리에 적용되는 모든 힘)을 행동 비용의 척도로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연구팀은 아기들이 직관적인 수준에서 그런 계산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테넨바움 교수는 “이 나이의 아기들은 말이나 셈을 할 수 있기 전에 뉴튼 역학의 기본개념을 이해하는 것 같다”며, “이 아기들은 중력 같은 것을 포함해 힘에 대한 이해를 통합하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유용성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아기들의 직관력은 언제 생길까

연구팀은 이러한 유형의 모델 구축은 인간의 행동을 더욱 정확하게 복제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중요한 단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테넨바움 교수는 “우리는 10개월 된 아기가 갖고 있는 상식 정도를 갖춘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우리가 이 아기들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직관 이론을 공학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갖춘 기계 구축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기들에게 이런 직관적인 능력이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나타나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울만 박사는 “어린이들이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지, 이런 정교한 기구를 어린이들이 스스로 어느 정도 구축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어떤 목표와 신념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를 가지고 태어나 이 정교한 기구를 구축하는지, 혹은 모든 것이 구축된 상태로 태어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3개월 정도 된 아기들에 대한 연구와, 팀이 개발 중인 직관이론을 학습하는 컴퓨터 모델이 이런 질문들에 해답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17-11-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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