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동요에 맞춰 상대의 손뼉을 치는 ‘손뼉치기’ 놀이를 하다가 한 사람이 져서 벌칙을 당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1초에 200만 프레임이 찍히는 초고속 카메라로 다시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긴 사람이 상대방 몰래 꼼수를 쓰는 장면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는 개그콘서트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몇 년 전 기발한 아이디어와 몸 개그가 결합된 형태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던 ‘초고속 카메라’ 코너의 한 장면이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 중 상대방의 눈속임에 넘어가거나 놓치기 쉬운 찰나의 심리를 마치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것처럼 재연해 웃음을 주는 개그 코너였다.
1852년 영국의 월리엄 탈보트가 순간적인 빛을 방출하는 조명장치를 이용해 최초로 고속 촬영에 성공한 이후 그동안 인간이 보지 못했던 신비한 순간의 모습들이 차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달리는 말의 네 발굽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촬영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말이 달리는 길옆에 여러 대의 사진기를 설치하고 줄을 연결한 다음 말이 줄을 차고 지나갈 때마다 셔터가 눌러지도록 했다. 그 결과 불과 몇 초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달리는 말의 네 발굽이 모두 순간적으로 땅에서 떨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인간의 눈으로는 16분의 1초보다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을 인식할 수 없으므로, 그 같은 찰나의 장면을 보지 못한다.
파리가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의 손길을 어떻게 놀랄 만큼 잘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밀도 초고속 카메라에 의해 드러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연구진이 1초에 5400번 깜박이는 비디오카메라로 파리가 피하는 움직임의 순간을 촬영한 것.
그 결과 파리는 다가오는 물체가 어느 쪽으로부터 오는지를 알아낸 후 자신의 다리를 날아가기 좋게 재배치시켜 점프를 하듯이 날갯짓을 하며 달아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 불과 0.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고속 카메라로 보면 골프를 칠 때 단단한 골프공이 마치 물풍선처럼 출렁거리며 변형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드라이버 샷을 할 때 골프 클럽의 헤드가 1~2톤의 힘을 가해 골프공은 지름이 약 15~20% 줄어들 만큼 출렁이게 된다. 하지만 헤드와 골프공과의 충돌 시간이 약 0.0005초에 불과해 사람의 눈으로는 골프공이 출렁이는 걸 볼 수 없다.
맨눈으로 볼 때는 평범한 물방울도 초고속 카메라를 들이대면 경이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떨어진 물방울이 수면과 충돌할 때 왕관 모양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반작용으로 솟아오르는 물기둥과 뒤이어 떨어진 물방울이 공중에서 만나 마치 살아 있는 듯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아토초는 100경분의 1초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 단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찰나(刹那)’를 요즘 시간으로 환산하면 75분의 1초, 즉 0.013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이보다 훨씬 더 짧은 시간의 개념까지 파고들고 있다. 10억분의 1초를 뜻하는 1나노초에 이어 그보다 1000배 더 짧은 시간을 1피코(pico, 1조분의 1)초라 한다. 또한 1펨토(femto)초는 1000조분의 1초이며, 1아토(atto)초는 100경분의 1초다.
이 시간의 개념들이 얼마나 짧은지는 빛의 속도와 비교해보면 극명해진다.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수 있는 빛도 1피코초에는 0.3밀리미터(㎜), 1펨토초에는 0.3마이크로미터(㎛), 1아토초에는 0.3나노미터(㎚)밖에 이동할 수 없다.
식물이 엽록소 사이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시간은 350펨토초이며, 수소 원자에서 전자가 원자핵을 한 바퀴 도는 데는 150아토초가 걸린다. 즉, 원자나 분자의 경우 피코초에서 펨토초 사이에 반응이 일어나며, 원자 안에서 전자가 움직이는 것은 아토초의 개념에 해당한다. 물질의 화학적 반응은 전자의 움직임에 의해 일어나는데, 아토초 단위로 들어가면 화학반응의 모든 과정을 낱낱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 연구진이 기존의 카메라보다 1000 배나 빠른 카메라를 개발해 화제다. 게이오대와 도쿄대의 공동 연구진이 개발한 이 카메라는 1초당 4조 3700억 개의 프레임을 찍을 수 있는 사상 최고 속도의 연사 카메라다.
현재까지의 초고속 카메라는 셔터 등의 기계적인 문제 및 데이터 전송 등의 전기적인 문제로 1나노초가 한계였다. 카메라의 연사는 기계 셔터로부터 디지털카메라의 전자 셔터로 진화해왔는데, 이번에 개발한 카메라는 광 셔터로 비약했다고 할 수 있다.
연사 속도는 이론적으로 광속까지 가능해
또한 기존의 초고속 카메라는 펌프-프로브 프로세스에 기반함으로써 한 이미지를 구성하기 위해 반복 측정이 필요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연구진이 이번에 개발한 카메라는 STAMP(Sequentially Timed All-optical Mapping Photography)로 불리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함으로써 반복 측정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STAMP 기술의 원리는 공간 및 시간 분산을 갖는 순차적인 시간 광학 빔에 대해 표적이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공간 프로파일을 광학적으로 맵핑하는 것이다. 원래 하나인 펄스 빛을 6개의 서로 다른 파장으로 나누어 기록한 후 나중에 서로 다른 위치의 이미지를 하나의 동영상으로 구성해 초고속 촬영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즉, 기계를 빠르게 동작시키는 개념이 아니라 빛을 느리게 하는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연구진은 이 원리를 실증하기 위해 유기금속화합물의 결정체에 쏘아 촬영한 결과, 열이 광속의 6분의 1 수준인 초속 5만 킬로미터로 파도처럼 전달되는 모습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 카메라를 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은 3~4억 원 정도이며, 크기도 2㎥에 달하지만, 제조비 인하 및 소형화가 가능하며 연사 속도도 이론적으로 광속까지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이용한 카메라가 화학 반응이나 격자 진동 파동, 플라즈마 역학, 열 전도 등을 포집하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레이저 가공의 정밀도 향상이나 초음파 치료의 원리를 규명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것으로 추정했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 저작권자 2014-09-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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