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탄생한 이후, 인류의 모든 문명은 시간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천 년 전 문명의 시작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시간을 정확하게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좀 더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하게 됐다.
시계가 없었던 고대에도 일 년, 한 달, 하루라는 단위를 이용하는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으며 시계를 만들어 쓰면서 좀 더 높은 수준의 문명에 도달했다. 고대에도 부강한 나라는 해시계, 물시계 등을 만들어 정교하게 시간을 사용한 국가들이다.
이후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진자를 이용한 기계시계가 발명됐다. 이후 전자 혁명이 일어나면서 전자시계가 나오고 오늘날에는 원자시계를 표준시계로 만들어 사용하지만 시간의 정확성은 아직도 그 나라의 부강함을 대변한다. 오차가 가장 적다고 할 수 있는 표준시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미국을 비롯한 5개국 밖에 없다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과학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도 이 몇 개의 나라에 속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10년 동안 표준시계 개발에 전력해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1초 오차에 도전하는 ‘KRISS-1’ 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담당한 표준연의 시간주파수 연구실 권택용 박사는 “‘KRISS-1’은 기존의 시계보다 정확도가 10배나 높다”며 “고도화된 미래의 첨단 정보사회로 가는데 기여할 것이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1초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다”라고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일찍이 말했지만 현대인들은 오히려 시간을 매우 흔한 자산처럼 여기고 산다. 한 시간, 하루, 일 년도 그냥 허비해버릴 수 있다.
하물며 1초라는 시간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소중해보이지 않는다. 1초 정도 늦는다고 해서 약속이 어긋나거나 일을 그르치는 일은 없기 때문에 1초는 너무나 하찮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상생활에서 일뿐이다.
지난 8일 개막한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수들은 자국의 명예를 걸고 온힘을 다해 싸우지만 그것은 상대 선수와의 싸움이자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모든 경기들은 시간에 제한을 두고 있으며 수영, 육상 등과 같은 기록경기에선 1초로 울고 웃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권 박사는 “우리는 1초가 틀려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화기의 경우처럼 지금과 같은 통신사회에선 그렇지 않다”며 “이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전화기들을 선으로 연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즉, 전화선을 2명에게 연결할 시에 전화선 2개가 필요하고 볼 때, 이런 식으로 3명은 선 3개, 4명은 선 6개로 늘어나는 전화선은 나중에 100명의 경우, 선 4,950개로 불어나고 1,000명의 경우, 선은 499,500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권 박사는 “이로 인해 전화선 하나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사용하고 인터넷도 마찬가지다”며 “이 때 중계를 해주는 장치들에 사용되는 시계의 정확도에 따라 통신 상태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1초는 21세기 첨단 정보화 사회에서 통신의 속도, 품질, 용량 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아울러, 비행기, 선박, 자동차 등의 내비게이션(항법)에서 위치정보를 이용, 이동경로를 만들 때, 위치는 시계의 정확도에 직접 연관된다.
권 박사는 “미래 첨단 산업, 고도화된 정보사회 등에서 시간은 가장 우선적인 인프라로 구성되어야 한다”며 “이러한 국가, 산업에 사용되는 시계들의 평가 등을 위해서는 보다 정확한 국가 표준이 요구되고 이는 한 나라의 경쟁력이다”고 말했다.
원자의 복사선을 보호하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시계를 만들어내는 일은 가능할까? 전문가 권 박사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정확한 시계 개발은 시간의 오차를 줄이는 일이며 그것은 1초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 표준연은 보유하고 있는 세슘원자시계 5대와 수소메이저 4대로 대한민국표준시 생성에 이용하고 이들을 세계협정시와 계속 비교하면서 정확한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중이다. 그것은 바로 1초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권 박사는 “표준시의 생성과 유지를 위해 원자시계를 이용하지만 초의 정의와는 약간 차이가 나게 된다”며 “1967년 국제도량형회의에서 결정된 1초는 세슘원자의 두 바닥상태 사이의 전이에 해당하는 복사선의 9,192,631,770 주기의 지속시간이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세슘원자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정의된 주파수는 외부의 영향이 없을 때의 주파수를 말한다. 즉, 이 두 바닥상태는 원자에 영향을 주는 자기장, 온도, 빛, 전기장, 중력 등에 영향을 받아 그 주파수가 달라지고 상용의 원자시계에서 나오는 주파수(또는 1초)는 정의에서 벗어난 값이 된다.
하지만 이번에 표준연에서 개발한 ‘KRISS-1’은 1차 주파수표준기로 원자의 복사선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제어할 수 있고 1초의 정의에 더욱 다가갈 수 있는 시계다.
권 박사는 “주파수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10여 가지로 이중 자기장은 원자의 복사선에 영향을 미쳐서 주파수를 달라지게 하므로 자기장을 정확히 알아야 주파수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자기장에 의해 변화한 값을 빼주어야 1초의 정의인 자기장이 없는 상태의 원자의 복사선을 알 수 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차폐다.
“우선, 자기차폐를 통해 지구자기장을 막는다. 이어서 아주 미세하고 균일한 자기장을 원자의 경로에 만들어준 다음에 원자의 다른 복사선을 이용, 자기장의 세기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한다. 그러면 원자의 복사선이 자기장에 의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 수 있고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주파수에 자기장에 의해 변화한 값을 빼주면 결국 자기장의 영향이 없는 원자의 복사선의 주파수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주파수에 영향을 주는 10여 가지 요인에 의한 주파수 변화 값이 제거된 1초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표준연이 개발한 KRISS-1은 국제도량형회의에서 결정한 1초의 정의에 맞는 주파수를 갖고 있다.
권 박사는 KRISS-1 개발의 의의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도 1초의 정의를 실현하는 1차 주파수표준 기를 확보한 것이다”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시간의 원기를 갖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KRISS-1은 상용 원자시계 보다 10배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 산재한 300 여대의 원자시계의 평균을 보정해 국제 원자시가 생성된다면 우리나라도 KRISS-1을 통해 국제 원자시 생성에 기여하고 우리의 능력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게 된 것.
이를 토대로 권 박사는 소형원자시계 개발 연구를 수행중이다. 또 앞으로 이 연구가 진척되면 복사선이 마이크로파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를 갖는 광시계를 구경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 조행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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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8-08-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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