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4,2017

획기적 과학 성과, ‘X선 발견’

과학기술 넘나들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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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의 유언에 따른 노벨상이 사상 처음 수여된 1901년도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자는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 1845-1923)이었다. X선의 발견자로 잘 알려진 뢴트겐의 업적은 노벨상을 충분히 받고도 남을 만한 획기적인 학문적 성과이며, 또한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오늘날 수많은 병원에서 각종 질병의 진단 등에 쓰이는 X선 촬영장치가 바로 뢴트겐 덕분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X선의 발견자 뢴트겐 ⓒ Free photo

X선의 발견자 뢴트겐 ⓒ Free photo

 

저명한 과학사학자 쿤(Kuhn)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X선의 발견을 패러다임의 전환 수준으로 평가한 바 있다. X선의 발견이 과연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전환이나,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의 변화처럼,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뒤바꿔놓은 패러다임 전환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튼 뢴트겐의 X선 발견이 물리학 사상 그만큼 중요하고 획기적인 업적이라는 데에는 토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뢴트겐은 1845년 독일에서 직물업자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848년에 가족에 네덜란드로 이사하였고, 사립학교를 거쳐 위트레흐트 기술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퇴학을 당하여 대학 입학 자격을 박탈당했다. 대신 취리히 연방 기술전문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였고, 나중에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뢴트겐은 음극선에 관한 실험을 하던 중 정체모를 새로운 광선인 X선의 존재를 발견하였는데, 거기에는 다른 과학적 대발견에서도 간혹 등장하곤 하는 우연과 행운, 이른바 세렌디피티(Serendipity)도 뒤따랐다. 즉 뢴트겐은 음극선의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크룩스관이라 불리는 고전압의 진공관에서 나오는 음극선을 금속판에 쏘는 실험을 하였는데, 음극선관에서 검은 종이도 뚫고 지나가는 강한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나온 빛이 멀리 책상 위에 있던 백금시안화바륨 종이를 감광시키는 놀라운 현상도 목격하였다.

뢴트겐이 아내의 손뼈를 찍은 인류 최초의 X선 사진. ⓒ Free photo

뢴트겐이 아내의 손뼈를 찍은 인류 최초의 X선 사진. ⓒ Free photo

그는 자신의 부인을 실험실로 불러서 음극선관에서 나오는 미지의 빛으로 부인의 손 사진을 찍어보았는데, 손 안에 있는 뼈와 함께 손가락의 반지가 선명하게 나타난 사진이 찍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라게 되었다. 뢴트겐 부인의 이 손뼈 사진이 바로 인류 최초의 X선 사진인 것이다. 뢴트겐은 이 새로운 광선에 미지의 존재를 의미하는 ‘X선’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를 계기로 유럽의 과학자들은 음극선관 및 X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뢴트겐의 행운을 결코 단순한 우연의 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X선 발견의 단서가 되었던 음극선관 주변의 발광현상, 즉 음극선관 주변에서 사진 건판이 흐려지는 현상은 뢴트겐에 앞서 다른 과학자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룩스관이라는 음극선관을 발명한 크룩스(William Crookes; 1832-1919)도 진작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사진 건판이 못쓰게 되었다고 불평만 했을 뿐,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레나르트(Philip Eduard Anton Lenard; 1862-1947) 역시 음극선관을 이용한 실험을 많이 하면서 음극선관 주변의 발광 현상을 자주 접하였는데, 그는 뢴트겐이 음극선관 실험 장치를 제작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준 과학자였다. 그러나 레나르트 역시 음극선을 금속에 통과시켜 나타나는 현상 등 음극선의 성질 자체의 연구에만 주력하였기 때문에, X선 발견의 기회는 놓치고 말았다. 비록 레나르트 역시 음극선의 연구로 1905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X선 발견과 같은 획기적인 업적을 뢴트겐에게 양보(?)하게 된 것을 무척 아쉽게 여겼다고 한다.

X선 발견의 결과, 20세기 초반의 물리학은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즉 프랑스의 과학자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은 역시 비슷한 실험을 통하여 X선과는 약간 다른 존재인, 우라늄으로부터 나오는 방사선을 발견하였고, 그의 조교였던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이후 방사선과 방사능에 대한 연구를 더욱 발전시켰다. 또한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Joseph John Thomson; 1856-1940)은 크룩스관에서 나오는 음극선에서 발생되는 음극선이 음의 전기를 띤 입자들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즉 전자(Electron)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독일의 뢴트겐 박물관에 전시된 X선 발생용 크룩스관. ⓒ Free Photo

독일의 뢴트겐 박물관에 전시된 X선 발생용 크룩스관. ⓒ Free Photo

방사선을 발견한 베크렐은 퀴리부부와 공동으로 1903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전자의 존재를 입증한 톰슨 역시 1906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X선의 발견이 원자핵 물리학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이후에는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에 X선을 쬐여서 구조를 알아내는 X선 결정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X선 덕분에 예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인체 내부의 사진까지도 찍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의학의 발전에도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X선의 발견은 그 자체로서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물리학을 비롯해서 다른 과학 분야의 발전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쿤의 주장대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발견’이라고까지 평가할 수 있다고 하겠다.

뢴트겐의 생가. ⓒ Free Photo

뢴트겐의 생가. ⓒ Free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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