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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015-07-29

환자는 여성, 연구는 수컷 생쥐 성별의 통증 차이 밝힌 연구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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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는 수렵채집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진화적 특성으로 인해 매우 다르다. 남자의 눈은 움직이는 것에 먼저 반응하는 반면 여자의 눈은 색상에 먼저 반응하는 것이 좋은 예. 남자의 경우 사냥감을 잘 찾기 위해 최적화되었으며, 여자는 과일이나 채소 등을 잘 찾는 데 최적화된 결과다.

이는 신체적 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자는 망막이 여자보다 더 두껍다. 남자의 경우 거대신경정세포가, 여자는 소신경절세포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거대신경절세포는 동작이나 방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소신경절세포는 색상 등에 대한 정보를 주로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남자와 여자는 듣는 감각이나 뇌 발달 등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때문에 성별에 따라 질환의 발병률도 다르다. 남성은 약물중독과 심혈관질환, 탈장이, 여성은 만성통증과 우울증, 자가면역질환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발생한다. 특히 골다공증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13배 이상 많이 발병한다.

1997~2000년 미국에서는 10종의 의약품이 판매 중지되었다. 8개 의약품은 여자에게서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났으며, 그중 4개 약물은 생리적 차이로 인해 위험성이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후에 작성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남녀의 생리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약을 만들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동물의 성비 불균형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 morgueFile free photo
실험동물의 성비 불균형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 morgueFile free photo

일부 과학자들은 그 같은 의약품이 제조되는 것은 임상시험 과정에서 암컷 실험동물을 사용하지 않아 일어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버클리대 연구팀이 2010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동물실험에서의 성비 불균형은 심각하다. 2009년에 발행된 10개 연구분야 42개 학술지를 분석한 결과, 8개 연구분야에서 수컷 동물의 실험 비율이 암컷 동물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

신경과학은 5.5:1, 약학은 5:1, 생리학은 3.7:1로 수컷의 비율의 훨씬 높았다. 특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흔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45%의 동물실험만이 암컷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연구 데이터를 성별로 분석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수컷 위주로 임상시험 하는 경우 많아 

사실 1960년까지만 해도 생식 관련 연구가 아닐 경우 실험동물의 성별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때문에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 질환도 수컷 위주의 동물로 임상시험을 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동물실험에서 연구자들이 암컷을 꺼리는 이유는 암컷 동물의 경우 월경주기와 같은 교란 요인으로 인해 데이터의 변동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암컷은 수컷에 비해 가격이 비싸며, 실험실에서 관리하기도 까다로운 편이다.

최근 이러한 연구 풍토가 명백히 잘못됐음을 밝히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앨라배마대의 로버트 소지(Robert Sorge) 교수팀이 6월 29일자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이 바로 그것.

기존 연구에 의하면, 뇌와 척수에 위치한 미세아교세포라는 면역세포가 만성통증의 발병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소지 교수팀은 실험용 생쥐의 통증 감지 과정에는 암수별로 각각 다른 면역세포가 관여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생쥐의 유전자를 조작해 미세아교세포의 ‘BDNF(뇌유래 신경영양인자)’ 유전자를 언제든 삭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처음에 실험용 생쥐들은 신경손상에 대해 모두 정상적으로 반응했지만, 1주 후 BDNF 유전자를 삭제하자 암수의 반응이 엇갈렸다.

즉, 수컷들은 통증 과민성이 사라졌지만, 암컷들은 그대로였다. 이는 수컷의 통증 과민성이 미세아교세포의 BDNF 신호전달에 의존하는 반면, 암컷의 통증 과민성은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 매개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연구의 공저자로 참여한 캐나다 맥길대의 제프리 모길 박사에 의하면, 만성통증에 관한 연구에서 전형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연구모델은 8주령의 수컷 생쥐다. 하지만 실제로 만성통증을 앓는 전형적인 환자는 50대 여성이다. 기존에 미세아교세포를 겨냥한 약물의 임상시험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 연구결과는 잘 설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동물의 실험결과가 인간에게도 적용될지의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진통제의 개발과정에서 실험동물의 성비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상징적인 연구결과이다.

기존 관행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 높아져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1993년에 임상시험에서 성비 불균형 현상이 심각함을 인식하고, 여성과 소수민족을 임상시험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발표했다. 그 후 NIH가 후원하는 임상시험에서 여성 참가자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실험실 연구의 경우 여성에게 빈발하는 질병을 연구함에도 불구하고 실험동물의 대부분이 여전히 수컷 일변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실험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30여 개의 저명 과학저널은 실험동물의 성별 정보를 밝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새 논문 게재 원칙에 합의했다. 지난 6월엔 미국 의회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연구에 성별 분석의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NIH도 지난 6월에 새로운 전임상시험 지침을 발표했다. 이 새로운 지침에 의하면 2016년 1월 이후 NIH에 연구비를 신청하는 연구자들이 하나의 성만을 연구할 때는 그 이유를 소명해야 한다. 또한 척추동물과 세포를 대상으로 실험할 때 양성 균형을 맞추는 실험 설계와 데이터 수집 및 해석 계획 등을 밝히도록 했다. 다만 성특이적 질병이거나 양성을 모두 구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동물실험에서의 성비 불균형 문제에 대한 피해는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임상실험의 최종 단계에서 여성에게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거나 여성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나 승인이 보류된다면, 결과적으로 남성 환자를 포함해 이 치료제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환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15-07-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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