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를 보다 보면 숙주에 침투하여 행동을 조종하다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도록 만드는 기생 생물의 무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행동까지 조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숙주에 기생하여 이를 파멸로 이끄는 기생생물을 실제로 접할 수 있는데, 바로 ‘동충하초’다. 하초동충이라고도 불리는 이 버섯은 포자가 곤충을 숙주 삼아 기생하다가, 결국에는 곤충의 몸을 영양분 삼아서 성체 버섯으로 자라게 된다.
그런데 곤충 중에서도 동충하초와 같은 방법을 통해 성체가 되는 곤충이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다른 곤충의 몸에 알을 낳아 기생하도록 하다가, 알에서 나온 애벌레가 결국에는 숙주인 곤충을 죽이도록 만드는 ‘맵시벌류’가 그 주인공들이다.
다른 곤충의 몸에 산란한 뒤 기생
맵시벌류는 벌목(Hymenoptera) 맵시벌과(Ichneumonidae)에 속하는 벌류로서 허리는 잘록하고 배는 길쭉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벌의 특징은 배 끝에 기다란 산란관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산란관을 이용하여 나무 속에 들어있는 다른 곤충의 몸속에 산란관을 찌른 다음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
환경부 산하 기관인 국립생물자원관은 친환경적으로 해충을 방제할 수 있는 17종의 맵시벌류를 찾았다고 최근 발표하면서, 이 기생성 벌류를 잘 활용하면 친환경적 해충 방제를 위한 ‘천적 곤충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수년 전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현상으로 개체수가 현저히 증가한 해충들의 친환경적인 방제를 위해 천적 곤충이 될 수 있는 자생생물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친환경적 생태계 관리용 천적 곤충 탐색’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꽃매미나 미국선녀벌레 같은 해충들을 제거할 수 있는 자생 천적 곤충인 고치벌과 기생파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맵시벌류 연구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생성 벌류의 미기록종 발굴 사업’의 하나로서, 이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13종의 신종 벌류와 35종의 미기록종이 새로 발굴됐다.
인공 증식 기술 확보가 사업 성패 결정
맵시벌류에 속하는 벌들은 농작물이나 수목에 피해를 일으키는 해충에 산란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딱정벌레가 대표적인데, 이 곤충은 나무에 구멍을 뚫어 면역력을 약화시킨 다음 병이 들도록 만든다.
맵시벌류의 벌들은 딱정벌레 같은 해충의 애벌레나 번데기에 산란을 하는데, 여기서 부화한 애벌레는 숙주의 몸속에서 기생하면서 영양분을 빼앗다가 결국에는 숙주를 죽인 다음 자신은 성체가 된다.
국립생물자원관의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통해 발굴한 ‘어리혹마디꼬리납작맵시벌’이나 ‘혹마디꼬리납작맵시벌’ 등은 버드나무, 자작나무 등에 해를 끼치는 유리나방류의 번데기에 기생하면서 이들을 공격한다”고 밝히며 “이들 맵시벌류들이 해충의 개체수 조절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혹마디꼬리납작맵시벌의 경우는 나무속을 먹고 자라는 곤충들의 천적으로서, 수목해충으로 인한 문제가 생겼을 때 방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은 현재 맵시별류들을 대량증식하고 방사하는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관계자는 “천적 곤충 조사·발굴 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을 통해 밝혀지지 않은 국내 자생 생물을 찾아낼 계획”이라고 전하면서, “해충 방제 분야에 천적 곤충을 이용하는 등 생물자원의 활용 영역을 다양하게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번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의 서홍렬 연구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나무를 병들게 하는 해충들의 종류가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맵시벌류는 그런 해충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다. 맵시벌류에 속하는 17종은 각각 죽이는 해충들이 다르다. 군인으로 치면 병과에 따라 주특기가 다른 것처럼, 맵시벌도 어떤 종은 나방의 번데기를 죽이는 것이 있고, 또 어떤 종은 매미 유충을 죽이는 것이다.
- 천적으로 해충을 퇴치하려면 아무래도 천적 곤충들을 많이 증식시켜야 할 텐데, 증식시키는 방법이 있는지와 증식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은 없는지?
단 기간에 인공적으로 증식시키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생명체이다 보니 실제 매뉴얼대로 잘 증식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반면에 맵시벌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생육시키는 자연증식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단점이다. 부작용 문제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천적을 이용한 해충 퇴치 방법이 좋다는 점은 바로 이런 이유다. 특히 대량 증식을 통해 해충이 사라지게 되면, 천적 곤충도 따라서 감소하므로 일정 기간에 발생하는 대량 증식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 해외에서도 맵시벌류를 이용한 사례가 있는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정도의 테스트 수준이다. 인공 증식이 생각보다 까다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 증식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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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1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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