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2,2017

한국 BEST SF작가 10인, 배명훈(1)

인간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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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과학소설의 미래를 밝게 해줄 작가 후보 가운데 배명훈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필자는 과학기술창작문예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굵직한 주제를 유기적으로 엮어 익살맞게 풍자한 단편 <스마트 D>에서 작가 배명훈의 가능성에 일찌감치 주목한 바 있다.

이 소품은 대기업의 상혼에 삼천포로 빠져버린 지적 재산권의 현주소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시대에 빅브라더나 다름없어진 기업이기주의 그리고 인간의 통제력을 넘어선 기술문명이란 주제들을 능청스레 한데 뭉뚱그려 놓았다.

2006년 무크지 [해피 SF] 2호에 실린 그의 새로운 단편 <스윙바이>는 풍자정신과는 동떨어진 세계로 나아가는 듯해 다소 의아한 감을 줬는데, 아니나 다를까 2009년 출간된 연작집 <타워>는 처음에 품었던 기대를 몇 배 이상으로 충족시켜주는 괴작(怪作)이었다. 이것을 읽고 난 독자들은 신예작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치 인간사회에 대한 깊이 있으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Sciencetimes


이듬해 발간된 선집 <안녕, 인공존재; 2010년>에서는 전작의 사회풍자와는 달리 훨씬 SF적인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바탕에 깔고 인물들의 개인사를 파고든 단편들이 주종을 이뤘지만 사람살이에 대한 곱고 따뜻한 시선은 여전하다.

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타워>의 뾰족하면서도 유연한 사회비판정신이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떨칠 수 없다.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는 적지 않지만 동시에 뭔가 뭉클한 응어리를 남겨주는 작가는 만나기 정말 힘드니까.

2011년 발표한 <신의 궤도>는 배명훈의 본격 장편 SF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제까지 이러한 시도를 한 국내 작가가 드물다는 점에서 일단 이목을 끈다.1) <타워>까지만 해도 SF라기 보다 세태풍자물로 기존 출판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충분했고 <안녕, 인공존재>는 단편집이라 재기발랄한 온갖 사고실험에 따른 부담이 비교적 덜했다 볼 수 있다.

반면 <신의 궤도>는 작가가 명실상부한 과학소설로서의 장르 정체성을 드러내며 시장과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점에서 상업적으로 위험한 시도인 동시에 과학소설계에서 고무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본격 과학소설의 장르특성을 전면에 내세워봤자 상업 작가로서 그다지 득 될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명훈은 두 권으로 나눠 펴낸 꽤 두꺼운 장편에다 우주여행과 테라포밍, 냉동인간, 복제인간, 우주전쟁, 끈이론과 접목된 항성 파괴무기, 대재앙 이후의 세계(post-holocaust), 살아있는 항성(인류 진화의 다음단계), 인공지능의 자의식 과잉 및 오작동으로 인한 살인(HAL 9000시리즈의 후계자?), 과학이 찾아낸 진실을 거부하는 종교적 맹신 그리고 진실을 호도하는 거대관료제도의 폐해 등을 구석구석 쑤셔 넣는다.

결과적으로 SF의 고전적인 주제·소재들에서부터 최근 현대과학이 일궈낸 새로운 통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메뉴가 하나의 비빔밥으로 조리된 것이 바로 <신의 궤도>다.

이 글에서는 그간 발표된 배명훈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몇 가지 특징을 살펴봄으로서 그가 향후 한국 과학소설계에 기여할 방향과 가치를 개략적이나마 가늠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배명훈의 장점은 장르 안팎에 구애받지 않는 폭넓은 대중성이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들은 과학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굳이 과학소설 독자라야만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예컨대 호시 신이치와 츠츠이 야스타카 같은 작가들은 훌륭한 과학소설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훌륭한 소설을 썼기에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점에서 배명훈은 선배작가인 이영수보다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물론 이영수 역시 특정 장르에 연연하지 않으며 쓰고 싶은 이야기는 뭐든 써낸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소설 작가 가운데 비교적 대중성이 높다는 이영수의 작품들조차 제대로 즐기자면 과학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설정들(클리세)은 물론이거니와 이영수 자신이 쏟아내는 특유의 설정들에 두루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영수는 그녀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고정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18년간 쌓아온 인기에 비해 마켓 파워가 정비례하게 성장해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대적으로 배명훈의 작품은 어떤 독자든 간에 소탈하게 소화할 수 있기에 앞으로 오년, 십년 후 시장에서 그의 영향력은 괄목할 만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그의 첫 선집 <타워>에서 기인한다. 얼핏 공학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경제성 면에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674층짜리 가로 세로 길이 각기 2~3km의 초거대빌딩이자 초강소국 ‘빈스토크’를 무대로 한 이 연작집은 딱히 따로 주석을 달지 않아도 한번 읽어보기만 하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작가는 빌딩 주변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하고 빌딩 주민들은 당연하다는 듯 대단한 선민의식으로 살아가는 빈스토크를 매개로 한 일련의 단편들에서 주상복합 강남불패의 신화라든지 강남공화국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온갖 병폐와 부조리를 시시콜콜 간질인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더 나아지고 더 존중받고 싶은 개인들의 한없는 욕망을 674층이나 되는 수직축에 해학적으로 투영함으로서 <타워>는 권력과 재화 위주로 재편돼 가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한국인들을 희화화한다. 여기에 실린 매 단편마다 과학소설다운 설정과 소도구가 등장하지만, 독자들은 그러한 양념들을 말 그대로 감칠 맛 도는 덤 정도로 여기면서 작품의 본질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





* 작가에 대한 간략한 이력

배명훈은 1978년 부산 태생으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 단편 <테러리스트>로 ‘대학문학상’을 받았으며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에서 단편 <스마트 D>로 등단한 뒤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나섰다.
배명훈이 신인작가치고는 비교적 독자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빈스토크’라는 동일 시공간을 배경으로 쓴 연작집 <타워; 2009년>가 주목을 받으면서부터다. <타워>는 100여 년의 역사가 넘는 우리나라 과학소설이 드디어 해외번역물 위주에서 벗어나 우리의 것을 이야기하게 된 시점에서 창작과학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물꼬를 터야 할지 보여준 사례다. 이듬해 나온 두 번째 단편집 <안녕, 인공존재>는 2009년부터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각종 지면에 발표된 작품들과 미발표 원고를 한데 묶은 것으로 <타워>와 같은 예리한 사회풍자와는 달리 개인적인 인간사를 조망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특유의 따스한 시선은 여전하다.
2010년 배명훈은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2011년 펴낸 <신의 궤도>는 작가 개인에게 최초의 장편이란 의미가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본격 SF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주목된다.

* 생몰년: 1978년 ~
* 주제의식, 선호경향: 현대산업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인간미 넘치는 풍자와 해학
* 수상경력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부문 수상/ 2010년 제1회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
* 과학소설 역사에서의 비중: 한국과학소설의 앞날을 열어갈 젊은 작가
* 대표작(과학소설): <타워; 2009년>, <신의 궤도; 2011년>




1) <신의 궤도>를 읽으며 떠오른 일감은 ‘작가 배명훈이 이제 정말로 과학소설을 쓰려 하는구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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