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2,2017

한국 BEST SF작가 10인, 김보영(1)

국내 창작 과학소설계가 찾아낸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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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은 국내 창작과학소설계가 운 좋게 찾아낸 보석이다. 여기서 ‘운 좋게’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녀가 회사를 그만두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려 마음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기술창작문예에 중편 <촉각의 경험>으로 당선돼 등단했기 때문이다.

김보영이 만일 1990년대에 전업 작가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아마 그녀의 작품은 몇 번의 습작으로 그쳤을 터이고 끝내 순문학으로 전환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으리라. 물이 없는 곳에 어찌 물고기가 뛰어놀 수 있으랴!

우리나라 과학소설의 역사를 뒤돌아 보건대 장르 안팎에서 과학소설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인 작가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그들의 노력마저 대개 일회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시장은 고사하고 작가를 위해 이렇다 할 자극을 줄 환경조차 온전히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공급할 작가와 유통시장 둘 다 빈사상태였던 국내 창작과학소설계가 2000년대 중반 정부와 언론이 3년간 공동주관한 창작소설 공모전과 일부 출판사들의 과감한 창작과학소설 시험출간 추세에 힘입어 막 기지개를 펴던 시기에 김보영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녀뿐 아니라 과학소설계에도 행운이었다.

▲ 국내 창작과학소설계가 운 좋게 찾아낸 보석, 김보영(작가의 동의를 얻어 게재)

과학소설 독자들이 느끼는 김보영의 매력은 이 장르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누구나 읽기에 부담 없는 매끄러운 문장을 술술 풀어내는 솜씨에 있다. 다시 말해 그녀의 글은 뛰어난 순문학 작품과 다를 바 없이 고급스럽고 (이 장르문학에 문외한인 독자조차)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으며, 해외의 A급 과학소설 작가들 못지않은 과감한 발상과 도전정신을 발산한다.

그간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다양한 관심사로 미뤄보건대 (반드시 과학소설만 쓰란 법은 없지만) 평소 과학소설을 즐겨온 기호가 몸에 밴 탓인지 그녀의 작품들은 대개 전형적인 과학소설이거나 또는 적어도 과학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유형들이 많다. 덕분에 다분히 환상적인 이야기라도 그녀의 손길을 거치면 과학소설처럼 스토리의 내적 논리와 합리적인 전개가 튼실해진다.

이처럼 양손의 떡을 거머쥔 작가이다 보니 김보영의 작품들은 구태여 장르독자가 아니어도 편안하게 읽힌다. 독자에 따라서는 마치 뭔가 이색적인 맛이 나는 순문학 소설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양수 겹장 능력은 과학소설이 아직 충분히 개화하지 못한 국내시장에서 김보영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해준다.

김보영의 과학소설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과학소설 장르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다. 이러한 이해의 범주에는 비단 첨단과학지식에 대한 발 빠른 정보수집뿐 아니라 이를 소화·응용하는 과학소설이란 문학 장르 틀(그리고 심지어 클리쉐)에 대한 이해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식견은 선배작가들인 복거일과 이영수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하지만 복거일처럼 역사의식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이영수처럼 치고 빠지기 식으로 세상을 냉소적으로 조롱하지는 않는다. 김보영의 작품은 세상의 고민을 다 짊어진 양 독자의 어깨를 무겁게 하거나 자유분방한 독설이 지나쳐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 눈앞의 진실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러나 따뜻하고 섬세하게 교감한다. 때로 김보영도 설교조의 문장을 구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주제의식에 짓눌릴 정도는 아니며 비아냥을 위한 비아냥 따위는 엿볼 수 없다. (다만 최근에 발표한 단편 <신문이 말하기를; 2010년>은 문학이라기보다 주제의식만 전면에 부각된 논설 같아 큰 감흥을 받기 어려웠다. 주제에 작품이 잡아먹혔다고나 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여기서 그녀의 작품들 가운데 주요작 몇 편을 뽑아 리뷰해보기로 하자.

설명하는 대신 체험하게 하라! 복제인간 문제에 대한 농익은 사색, <촉각의 경험>

<촉각의 경험>은 김보영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그녀를 각인시켜주기에 한 치의 모자람이 없는 수작이다. 이 중편은 으레 복제인간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 하면 과학적인 근거는 고사하고 사회윤리와 관습을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천박하고 말초적인 상황(장기로 쓰일 복제인간들의 탈출기)을 연출해내는 데에만 골몰하던 시대흐름과 궤를 달리한다.1)

제약회사 사장 유시헌은 두 사람의 뇌파를 일치시키는 뇌파공명기로 클론은행에 있는 자신의 장기적출(臟器摘出)용 복제인간과 꿈을 공유함으로서 인간이 선천적으로 정보를 티끌만큼이라도 갖고 태어나는지 확인하려든다. 그의 클론은 태어난 이래 이제까지 아무 자극과 접촉 없이 오로지 인큐베이터 배양액 속에서 살아왔기에 인간이 후천적으로 획득하지 않은 정보가 있다면 이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리라 본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유시헌의 기억정보가 뜻하지 않게 클론의 뇌로 거꾸로 흐르면서 클론은 생전 처음 맛보는 강렬한 자극과 지식에 몸이 달아오른다.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지식. 알고 싶다. 더 알고 싶다! 클론은 원본의 꿈을 한없이 갈망한다. 반대로 유시헌은 본의 아니게 클론의 고독함을 절절하게 공유한다. 유시헌은 이제 뇌파공명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어렴풋이 클론의 간절한 욕망을 감지한다. 이러한 공명은 갈수록 심해져 유시헌이 시도 때도 없이 클론과 꿈을 공유하지 않으면 깊은 절망을 느낄 지경까지 악화된다.

그의 절망감은 다름 아닌 클론의 감정이 전이된 결과다. 마침내 유시헌이 인큐베이터 유리를 깨버리고 솟구치는 배양액 사이로 쓰러지는 클론을 와락 끌어안는다. 6개월의 실험기간 동안 누적된 상호교감은 유시헌으로 하여금 클론의 갈망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한 것. 살아생전 배양액 안에만 떠 있던 클론에게도 온전히 쓸 수 있는 감각이 하나 있었고 그는 이 감각으로 세상을 직접 경험하길 갈망했던 것이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꿈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를 제대로 만질 수가 없었어요. 그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지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는데. 그 음색만 멀리서 잡히고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는데, 자꾸 안개가 끼어 눈앞을 가리는 것처럼…”
                                  — <촉각의 경험>, <2004 과학기술창작문예 수상선집>에 수록, 2004년, 165쪽

시력, 청력, 미각 그리고 후각도 써보지 못한 클론이지만 손가락끼리 마주치는 촉각만은 그의 확실한 감각 자산이었다. 멸균처리가 되지 않은 채 인큐베이터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클론은 죽게 된다. 하지만 클론은 꿈을 공유하는 원본을 껴안음으로서 살아있는 또 다른 자신과의 감촉을 충분히 음미했으며 그 순간만은 생애 최고의 행복감에 도취된다.

이 중편은 굳이 할리우드 유명배우가 분(扮)한 근육질의 복제인간이 요리조리 잘도 도망 다니는 정신없는 액션으로 수고하지 않아도 복제인간을 장기로 써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섬뜩하면서도 가슴 아리게 전달한다. 복제인간이란 소재는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자문하게 하지만, <촉각의 경험>은 소재 못지않게 사물을 보는 관점이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1) 당시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 <아일랜드>가 국내에 개봉된 이래 국내 출판물(번역소설)과 SF공모전 투고작들에서는 복제인간을 다룬다 하면 인권을 강조한답시고 복제인간이 기득권을 틀어쥔 원본인간들의 사회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어찌나 서로 같은 설정을 베껴대는지 이 아이디어는 삽시간에 너덜너덜한 행주가 돼버렸다.





 ■ 작가소개: 김보영(1975년 ~ )

* 주제의식, 선호경향: 한국사회의 명암을 따뜻한 시선으로 과학소설에 담기

* 수상경력: 2004년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 당선

* 과학소설 역사에서의 비중: 한국 과학소설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젊은 작가

* 대표작(과학소설): <촉각의 경험; 2004년>, <다섯 번째 감각; 2005년>

김보영은 아주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4월까지 회사를 다니다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섰다. 같은 해 가을 한국과학문화재단(현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후원하고 동아사이언스가 주관한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중편 부문에 <촉각의 경험>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당시 <촉각의 경험>은 예심 3명과 본심 2명의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당선이 확정됐다.

현재 그녀는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며, [필름 2.0]이 선정한 ‘탈권위 무경계 신세대 문화전위 13인’에 선정된 바 있다. 다른 작가들과 펴낸 다수의 공동선집뿐 아니라 개인 선집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 등을 출간할 정도로 김보영은 과학기술창작문예로 등단한 작가들 가운데 비교적 활동이 활발한 편에 속한다.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는 원래 2005년 북토피아에서 전자책으로 출간했으나 2007년 행복한책읽기에서 종이책으로 재간했다.) 또한 창작에 힘쓰는 틈틈이 귀농한 부모님을 돕는 농사일도 낙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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