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로봇이 갑자기 한국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인가. 21세기 세상을 바꾼다는 로봇기술에 대한 과학적 관심? 한국에서 나랏돈을 수천억씩이나 쏟아 붓는 프로젝트가 순수 과학탐구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요즘 로봇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진짜 배경은 어려워진 경제상황 때문이라 봐야 한다.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한국경제는 최근 몇 년 새 급부상한 중국경제의 추격 앞에 서서히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 가전 등 한국경제를 이끄는 간판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시급히 찾지 못할 경우 우리는 10년 뒤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한국의 로봇열풍을 들여다보면 작금의 경제난국을 돌파하는데 첨단 로봇산업이 한 몫 할 것이라는 대중들의 막연한 기대심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인은 지금 로봇을 통해 노동이 사라진 멋진 신세상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로봇이 과학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더 가깝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한다면 한국 로봇산업의 현재와 미래가 다시 보일 것이다.
한국 로봇산업의 현주소
한국의 로봇산업은 국가 순위로 따지자면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통계수치로 나타난 우리나라 로봇산업 규모는 세계 6위, 사용대수는 세계 5위이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임을 감안할 때 이 땅의 로봇산업은 세계 정상에 가까운 경쟁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에는 많은 거품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1962년 미국 GM이 자동차 생산라인에 작업용 로봇을 처음 투입한 이래 세계 로봇시장은 미국, 일본, 유럽의 자동차 산업을 주무대로 성장해왔다. 즉 ‘자동차 생산력=로봇 수’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자동차 분야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끝에 세계 5위 자동차 생산 국가로 올라섰고 덩달아 세계 5위 로봇 사용국이란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공장에서 로봇설비가 늘어남에 따라 이 분야에 종사하는 국내 과학기술자의 숫자도 당연히 증가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자동차 공장에 설치된 조립용 로봇의 숫자를 바로 그 나라의 로봇산업 수준으로 간주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조되는 로봇설비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모터, 센서 등 로봇부품의 태반은 외국의 원천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일본, 미국에서 로봇제작에 필요한 핵심부품을 팔지 않을 경우 국내에서 독자적인 로봇생산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 로봇산업은 자동차, 전자산업의 성장과정에서 축적한 자동화 기술을 바탕으로 신흥공업국가로선 괄목할 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로봇제작에 필요한 핵심부품의 국산화가 미흡한데다 독자적인 로봇개발의 경험도 부족해 미국, 일본 같은 로봇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로봇, 21세기 한국을 이끌 신성장동력
그렇다면 로봇은 사람들의 기대처럼 우리 경제를 이끄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한국과 선진국간의 로봇기술격차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말이다. 필자의 대답은 예스다.
로봇은 머지않아 현대자동차, 삼성반도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차세대 로봇산업에 기대를 거는 첫 번째 이유는 요즘 로봇산업을 둘러싼 주변 기술환경이 급속히 진화하면서 한국 측에 매우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로봇이 해온 주된 역할은 정확하고 반복적인 동작으로 공장에서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는 로봇은 근육보다는 두뇌, 즉 지능을 갖춘 자동기계(지능형 로봇)로서 일상 속에서 인간의 삶을 돕는데 더 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비쿼터스로 대표되는 정보통신(IT)혁명의 두번째 파도는 로봇의 활동영역을 어두운 공장이 아니라 햇살 비치는 세상 너머로 넓히고 있으며 예전에는 상상치도 못한 로봇 애플리케이션으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이 같은 주변 환경의 변화는 선진국의 기술장벽에 막혀 고심해온 국내 로봇산업에 더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로봇의 물리적 힘에 인공지능을 조합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무엇보다도 로봇의 활동을 지원하는 주변 환경부터 지능화돼야 한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IT인프라는 지능형 로봇이 행동하기에 문자 그대로 천혜의 환경이다.
게다가 정부의 적극적인 로봇육성책은 한국을 21세기 지능형 로봇의 메카로 부상시킬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산업자본은 지난 1990년대 한국을 먹여 살린 IT산업의 다음 타자로 로봇산업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닮은 존재를 만들려는 염원에서 비롯된 로봇기술의 진화는 미국, 일본을 거쳐 지금 한반도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려하고 있다.
로봇강국의 미래는 문화적 상상력에 좌우된다
이처럼 호의적인 상황전개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로봇강국의 비전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땀과 노력에 달려 있다. 정부는 우리 현실에 맞는 비전을 갖고 차세대 로봇산업에 집중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또 필자는 우리가 로봇강국이 되려면 로봇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함께 로봇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문화적 상상력, 로봇 마인드를 고양시키는 작업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오늘날 세계 제일의 로봇왕국, 일본이 있기까지는 로봇을 친근하게 여기는 일본국민들의 로봇관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요즘 민간 주도로 자생적인 로봇행사가 자주 열리는 모습이 무엇보다 반갑다. 로봇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지속적 관심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진정한 로봇강국으로 거듭나는 가장 확실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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