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2,2018

플루타크 <영웅전>에서 영웅을 만나다

<이수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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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특별한 사람에 의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영웅의 등장을 기다리게 된다. 견디기 힘든 현실에 영웅이 대안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갖기 때문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난세를 극복해 대중들에게 희망을 준 영웅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영웅전이다.

영웅들의 활약상을 다룬 많은 책 중 플루타크 <영웅전>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원제는 <대비열전>으로, 유사한 점이 있는 인물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플루타크 <영웅전>에서 나오는 인물들 중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의 카이사르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 대왕<BC356~BC323>은 젊은 나이에 군대를 이끌고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 중 가장 유명한 전투가 이수스 전투다.

기원전 336년, 젊고 패기가 넘쳤던 알렉산더 대왕은 내정을 안정시키고 3만 5천명의 군사와 전함 160척을 이끌고 정복 전쟁에 나섰다. 당시 강력한 병사를 보유한 페르시아는 지중해는 물론 인도 서부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는 정복 전쟁에 나선 알렉산더 군대를 봉쇄하기 위해 60만 군사를 끌어 모았다.

두 군대는 안타키아 부근의 이수스에서 맞붙었다. 뛰어난 전술가였던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군대의 경계가 허술한 곳을 공격해 적의 야영지를 점령했다. 막대한 병사와 전차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군대는 전멸하고 마케도니아 인들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수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남으로 내려가 정복 전쟁을 계속했다.

-1529년, 패널에 유채, 158* 120

<이수스 전투>-1529년, 패널에 유채, 158* 120 ⓒ ScienceTimes

이수스 전투를 그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알트도르퍼의 <이수스 전투>다. 전투가 최고조였을 때의 장면을 포착한 이 작품은 미술 역사상 가장 장엄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오른쪽 하늘에는 지는 해가, 왼쪽 하늘에는 달이 떠오르고 있는데 장엄한 분위기를 창조하기 위해 해와 달을 동시에 화면에 그려 넣었다. 지는 해와 달 사이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비스듬히 매달린 대형 패널에 이 장면에 대한  설명문이 걸려 있다.

라틴어로 된 설명문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다리우스를 격퇴하다. 10만 명의 페르시아 보병과 1만 기의 기병이 전사하다. 다리우스는 1천 기에 불과한 기병과 함께 도망쳤으나 그의 어머니, 아내, 자식이 모두 포로로 붙잡혔다.”쓰여 있다.

그 외에도 이 작품의 곳곳에 군단의 이름을 나타내는 설명이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패널 아래 고리와 줄이 화면에서 정확하게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키고 있다.

화면 전면에 병사들은 창과 칼을 휘두르며 전투를 계속하고 있고, 알렉산더 대왕은 다리우스를 생포하기 위해 세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있다. 공포에 사로잡힌 다리우스는 뒤를 돌아보면 전차를 타고 도망가고 있고 그 옆에는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다리우스 여자 수행원들과 죽은 페르시아 군인들이 널려 있다.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1480년경~1538>의 이 작품은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여러 화가들에게 의뢰한 성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영웅적인 남녀 열여섯 명의 일화로 구성된 연작 중에 하나다. 알트도르퍼는 고대 전투나 페르시아 양식에 대해 알지 못해 이수스 시를 유럽의 도시처럼 묘사했다.

고대의 역사와 후대의 풍경이 어울려 있는 이 작품은 기병대, 갑옷, 구름, 창을 든 병사 등 전투 장면이 사실적으로 그려졌지만 공상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전투를 통해 제국을 건설했다면, 로마의 카이사르<BC100∼BC44>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로마에 기여한 공헌이 로마의 다른 황제들보다 크다.

전 세계에서 최고 권력자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천재성을 겸비한 카이사르는 공화정 제도를 개혁해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의 제국을 이끌었다. 그는 세금과 종교의 자유, 그리고 하층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해 로마 시민들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카이사르는 로마 역법을 양력으로 개정해 1년을 365일로 하고 4년에 한번 윤년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날이 커져가는 카이사르의 권력은 로마 공화정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원로회의 귀족들에게 불만을 샀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하기로 한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지만 로마 왕정 복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원로원 황금보좌에 앉은 카이사르에게 자객이 다가가 그의 옷을 잡았다. 그것을 신호로 모든 음모자들은 카이사르 보좌를 둘러싸고 단검으로 그를 찔렀다.

카이사르는 23군데 칼로 찔렸는데 브루투스가 찌른 곳을 포함한 3군데 치명적인 상처 때문에 죽었다. 그 순간 카이사르는 양아들 브루투스를 발견하고 “브루투스, 너 마저 저들과 함께 나를?”라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브루투스는 마지막 공화주의자 카토의 조카이자 카이사르의 사생아였다. 원로회의 귀족들은 카이사르의 암살은 성공했지만 후에 정권을 잡는 것에는 실패했다.

-년도 미상, 캔버스에 유채, 109*146

<카이사르의 암살>-년도 미상, 캔버스에 유채, 109*146 ⓒ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극적인 순간을 묘사한 작품이 퓌거의 <카이사르의 암살>이다.

붉은 색을 옷을 입은 카이사르는 단검을 든 암살자들에게 둘러싸여 쓰러져 있다. 카이사르가 손으로 가리키는 인물이 암상 주동자이자 그의 양아들 브루투스다. 브루투스의 한 손은 카이사르를 가리키고 있고 다른 손은 그를 죽이라는 신호다.

카이사르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암살자의 흰색 옷과 카이사르의 붉은 색은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화면의 긴장감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붉은 색은 암살을 암시한다.

프리드리히 퓌거<1751~1818>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재현했다. 카이사르가 3월 14일 붉은색을 입고 원로회에 나갔으며 그는 자신의 적이었던 폼페이우스 조각상 앞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이 작품에서 인물 뒤에 보이는 조각상이 폼페이의 조각상이며 빛의 대비로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고 있다.

플루타크 <영웅전>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스타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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