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인 10월 22일 서울, 대구, 춘천, 동해, 용인, 수원 등 10개 도시, 19개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무료 SW 강연이 진행된다.
교육단체, 공공기관이 추진하거나 정부나 지자체가 마련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어린이들에게 SW가 무엇인지, SW 만드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자발적인 봉사자 60여명이 뭉쳐 만들어낸 프로젝트다. 이름하여 '10월, 소프트웨어에 물들다(이하 소물)'.
전 네이버 CTO이자 국내 최고 SW개발자 가운데 한 명인 김평철 박사, 구글 핵심 인력 중 하나인 이해민 프로덕트 매니저를 비롯해 IBM, MS, SAP, LG전자 등 국내외 유수의 IT기업에 종사하는 개발자들과 대학교수, 연구인, 교사 등 40명이 강연 기부자로 흔쾌히 나섰다.
길벗출판사, 정보문화사, 신영북스, 이지스퍼블리싱 등 10여개의 SW관련 출판사들은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들에게 증정할 책들을 계속 보내오고 있다. 기부금을 내거나 물품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전국의 도서관에 공문을 돌리고, 강연기부자를 찾고, 자원봉사자를 확보하면서 두 달만에 전국적인 행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만들고 부수기를 좋아하며 써볼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은 SW로 이뤄져있다고 생각하는 이 교수는 입버릇처럼 SW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2012년부터 이런 교육을 해보고 싶었다'는 그를 만나 소물 행사를 구상한 배경과 SW교육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났나.
= 사실 이 아이디어는 매년 도서관에서 과학 강연을 하는 카이스트 정재승교수의 '10월의 하늘' 행사의 포맷을 그대로 따왔다(10월의 하늘은 올해도 10월 29일 50여개의 전국 도서관에서 진행된다). 2012년 당시 한성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10월의 하늘 행사 강연자로 참석하면서 'SW에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서는 '과학 덕분에...'라는 일종의 부채감을 갖고 있지만 SW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무엇인가를 개발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지만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는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도 했다. 그동안 바빠서 엄두를 못내다가 2015년 이후 SW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좋아지고 부모들도 SW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지난 8월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취지의 행사를 하면 어떨까 하고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다들 팔 걷고 나서겠다고 호응해줘서 시작하게 됐다.
어떻게 준비했으며 현재 진행상황은 어떤지.
= 다들 직장인이라 8월 31일 킥오프 모임 말고는 모두 온라인 회의로 진행했다. 킥오프때도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다 모일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심각하게 논의한 것은 무엇을 우선 포기해야할 것인가였다. 멋지게 꾸민 홈페이지, 많은 수의 도서관, 풍부한 기부금 등은 기대를 접었다. 무리하지 말고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원의사를 밝힌 기업이나 개인들이 있었지만 어떤 조직적 구심체가 있는게 아니라 개인들의 집합체였기 때문에 도움받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각 지역 도서관에 공문을 보내 참여를 권유하고 강연자를 확보하고 출판사에 책 기증에 관한 협조를 구하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도서관 10군데만 참여해도 괜찮다 생각했는데 19개나 신청을 해서 기대 이상이었다. 강연자나 봉사자들이 흔쾌히 응해주고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서 가능했다.(250명이 멤버로 가입한 소물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자발적으로 강연자료나 강의시 유의할 점, 유용한 팁들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다독이고 있다.)
소물에서는 어떤 강연이 진행되나.
= 2시간동안 2명의 강연자가 각각 1시간씩 진행한다. SW코딩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내용들은 요즘 학교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많이 배울 수 있다. 물론 일부 시연을 하거나 관련 내용이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SW가 무엇인지, SW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SW를 개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난 작업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그래서 강연자에게 주문한 것은 거창한 파워포인트 자료나 그럴듯한 외부 사례가 아니라 반드시 강연자 자신의 경험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 제목과 내용은 강연자가 알아서 하지만 이 원칙 하나는 공유하고 있다. 소물 행사를 통해 크게 바라는 것은 없다. 그저 몇 명의 아이들만이라도 'SW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SW에 대해 조금은 더 친근한 생각을 가지고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SW와 SW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해왔는데.
= 세상에서 쓰여지는 모든 것들은 SW로 이뤄져있다. SW는 문제를 정의하고 그것을 절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가령 밥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숟가락이 있어야 하고, 숟가락을 들어야 하고, 밥을 떠서 입에 가져가야 하는 절차들이 있어야 가능한 행위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있어 SW적인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해결을 돕기 때문이다. SW로 이뤄진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과정과 넘어가야 할 단계가 있는데 이를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SW교육이다. 빌게이츠, 스티브잡스가 이 세상에 많은 일들을 해놓았지만 아마도 그 시작은 누군가가 이들이 만든 결과물에 대해 '그거 멋진데'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였을 것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평가받고 증명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SW교육도 이렇게 해야 한다. 재미를 느끼고 만들어보고 문제를 해결해보고 평가받으며 조금씩 전진하는 것이다. SW교육은 코딩 교육이 아닌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다. 물론 코딩 교육은 수학에서 구구단을 외우는 것처럼 유용한 측면이 있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나 효과는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SW교육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 교재나 교구들의 종류나 수준도 좋아지고 있고 SW 선도학교 등 SW를 육성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제 부모들도 SW를 한다고 굶어죽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웃음). 이제까지 SW 교육은 하겠다고 손을 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대중 교육, 보통 아이들을 위한 SW교육이 되려면 고민이 좀 더 깊어져야 할 것 같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SW교육 기조는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을 요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학생에게 SW교육을 시켜도 생각보다 코딩을 잘 못한다. 빨리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보통 아이들은 동기부여나 관심을 가지지 못한 채 SW에 대한 부담감만 가질 수 있다. 조금이라도 재미있다는 느낌을 줘야하고 '우리의 문제가 SW로 해결된다'는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행사에서도 그렇지만 개발자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나누고 공유하고 함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발자들에게 어떤 특징들이 있는 건지.
= 90년대 이후 SW라는 것이 너무 덩치가 커져서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졌다. 반드시 협업하고 상호학습해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설득, 공감, 공유와 같은 가치들이다. 이런 게 아마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오픈소스 SW를 활용해 개발할 경우 남들이 만들어놓은 어떤 기반 위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소물을 해마다 진행할 계획인가.
= 그렇다. 소물 인터넷 도메인도 10년 계약해놨다(웃음). 1년에 두 번 할 수도 있고, 내년에는 봄에 개최할 수도 있다. 다른 행사와 합칠 수도 있고, 어떤 구심체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행사가 끝나고 평가를 통해 함께 논의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반응이다. 아이들의 참여가 저조하고 반응이 좋지 않다면 과감하게 접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석 교수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한성대 교수, NHN 넥스트 학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국민대 컴퓨터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조인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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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10-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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