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5,2017

‘팬데믹’, 전염병 대유행의 잔혹사

[신종플루 특집] 신종플루의 역사학

[편집자 註] 신종플루가 기승이다. 하지만 신종플루에 대한 국내의 정보는 대부분 치료제나 백신, 그 위험성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들과, 백신 치료제의 개발에 관해 국내에서 조명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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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겨울이면 찾아오는 계절성 독감은 일반적인 감기와는 다르다.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종류는 200여종에 이르지만, 계절성 독감은 단 한 종류의 바이러스, 즉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nfluenza virus)’에 의해 유발되기 때문이다.

공포의 역사학

계절성 독감이 대중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이유는 그것이 전염성 질환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기록된 이후 다양한 형태의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해 왔다. 때로는 인구의 4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몰면서 인류의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 전염병이다1 .

2,500만 명의 유럽인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염병으로 기록된 ‘흑사병’의 기억도 이러한 공포에 일조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깝게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20세기 초엽,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의 기억이 ‘신종플루’의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타인으로부터 전파되는 전염병은 공포영화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좀비’로부터 우리가 느끼는 공포와 비슷하다. 좀비에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된다.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일종의 좀비다. 좀비는 좀비를 만든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에 언론과 WHO의 경고가 더해져 신종플루에 대한 사회적 공포가 완성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계절성 독감이 언제나 위험한 것은 아니다. 계절성 독감은 언제나 유행성(혹은 전염성, epidemic) 질병이다. 정부와 WHO가 계절성 독감에 주목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과학자들과 의사들, 그리고 제약회사들에 의해 활발하게 연구되는 이유는 대유행(판데믹, pandemic)이라 불리는 현상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첫째, 한 지역에서 시작된 독감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갈 경우, 둘째,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경우, 셋째, 독감을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직전에 유행했던 바이러스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아형(subtype)을 지닐 경우를 모두 만족할 때의 독감을 대유행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건을 살펴보면 2009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H1N1형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계절성 독감, 즉 신종플루는 대유행의 조건 중 한가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WHO가 우려하는 것은 신종플루를 유발하는 현재의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독성이 강해져 높은 전염력과 함께 대유행을 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아직까지 신종플루가 대유행이 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2. 독감의 대유행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3.


인플루엔자 바이러스(INFLUENZA VIRUS)의 발견

1932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최초로 분리되고 나서야 계절성 독감을 유발하고, 주기적인 대유행으로 많은 사람을 죽이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전염병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에 따라 독감의 대유행을 기원전 5세기 그리스까지로 소급하기도 하고, 중세와 르네상스에 유행했던 호흡기 질환들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히포크라테스에 의해 최초로 독감이 기록되었다고도 하지만 확실한 과학적 사실은 아니다. 다만 스페인 독감을 포함해 20세기 3번의 대유행을 유발한 주범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계절성 독감이 20세기 인류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20여 년 전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가 발견되기 전까지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대부분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연구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실 HIV를 제외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가장 잘 연구된 바이러스에 속한다.

문제는 아는 것과 막는 것은 때론 별개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거의 수십 년간 연구해온 과학자들, 의사들, 제약회사도 계절성 독감의 유행패턴을 바꾸는데 실패했다. 아마도 그것이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며, 우리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과거를 직시해야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계절성 독감의 유행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때때로 발생하고, 어떤 국가에서는 거의 매년 발생한다. 계절성 독감이 주기적으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공포는 사실 이 바이러스가 지닌 무시무시한 예측불가능성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정상적이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며 차라리 그 시간에 바이러스의 생활사와 백신 및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체계적으로 연구된 이후 축적된 결과들을 바탕으로 계절성 독감의 몇 가지 특징이 밝혀졌다.

첫째, 겨울철 습도가 높고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유행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습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매우 잦은 빈도로 독감이 유행한다. 둘째, 최근의 유행을 살펴보면 동반구와 남반구에서 최초의 유행이 시작되고 이 후 유럽과 북미로 퍼져나가는 경향이 있다. 셋째, 바이러스의 껍질 단백질들에 변이가 생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면역이 없는 경우 유행이 더 쉽게 일어난다.

지난 50년을 무작위로 7년 단위로 나누어 조사해보면 계절성 독감의 유행이 전세계 모든 국가에 걸쳐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감이 유행되는 해에는 평균적으로 10%의 인구가 감염되고, 감염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독감 증상을 보인다.

계절성 독감의 유행으로 인한 치사율은 평균적으로 0.1%로 알려져 있지만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독성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심장이나 폐, 신진대사에 문제가 있는 노인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비록 매해 백신이 만들어지고 위험군의 연령층에 주사되지만, 광범위한 백신 접종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특히 유행이 가장 심각하게 진행 중일 때 유행을 막을 수 있을만한 정도로 확실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진 사례는 아직까지 없었다4.

대유행(PANDEMIC)의 역사학

인플루엔자라는 말은 ‘영향을 미치다(Influence)’라는 뜻의 이태리어에서 나왔다. 이 단어가 최초로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357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발생했던 역병과 관련해서인데 ‘추위를 유발하는(Influenza di freddo: Cold Influence)’이라는 맥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독감의 증상 및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한 연구에 의하면 1173년 최초의 독감 대유행에 관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유행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했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1580년 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아프리카 및 유럽에까지 퍼져나갔던 전염병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대유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럽 전체가 6개월 동안 이 질병에 의해 고통 받았고, 독감은 결국 미국대륙에까지 퍼져나갔다. 로마에서만 약 8,000 명의 사망자가 보고되었으며 스페인의 몇몇 도시에서는 그보다 많은 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독감 대유행의 역사는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확실해진다. 1729년 봄에 러시아에서 시작된 대유행은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고, 지속적인 변종 바이러스를 발생시키면서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 처음에 발생한 독감보다 이후 발생한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독성이 더욱 높았다. 철학자 볼테르도 1768년경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겪은 독감에 대해 기술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후 약 40년 후에 다시 대유행이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1781년에서 1782년 사이에 발생했던 대유행은 가을에 중국에서 시작되어 러시아를 거쳐 전 유럽을 강타했다. 기록에 의하면 대유행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러시아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매일 30,000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로마 인구의 3분의 2가 독감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1830년에서 1833년까지 계속된 대유행은 1918년 스페인 독감과 맞먹을 정도의 독성을 지녔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또한 1830년 중국에서 시작되어 필리핀과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와 유럽에까지 이르렀다. 1831년에는 북미대륙에 독감이 상륙했고 1832년~1833년에는 북미에서 유럽으로 독감이 다시 넘어오면서 인구의 20~25%를 감염시켰다.

독감의 잔혹사: 스페인 독감

하지만 20세기 초반 세 차례에 걸쳐 세계를 강타한 독감의 대유행이 현재 우리가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며, 또한 전세계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공포감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전세계적인 대유행의 첫 번째 사건을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스페인 독감은 분자생물학적인 방법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라는 것이 증명된 최초의 대유행이다5. 전세계에 걸쳐 약 5,0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독감 대유행의 최악의 시나리오로 기록되고 있다.


사실 스페인 독감의 시작은 스페인이 아니었다. 어디서 대유행이 시작되었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지만, 최초의 발병이 보고된 것은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지역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스페인 독감이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6.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은 당시 1차 세계 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었던 스페인의 언론이 이 전염병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기 때문이지, 스페인이 독감의 발원지였기 때문은 아니다.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던 대부분의 국가들은 독감의 유행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언론의 독감 관련 뉴스를 철저히 통제했다.

스페인 독감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나타난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를 ‘서반아 감기’라고 불렀는데 약 740만 명이 감염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매일신보>는 많은 학교가 휴교하고, 회사들은 휴업했으며 추수를 할 수 없어 민심이 흉흉했다고 전하고 있다. <백범일지>에도 김구 선생이 1919년 약 20일간 서반아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망한 인구의 세 배에 이른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이 1차 세계대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스페인 독감의 발병지로 알려진 미국에서, 처음으로 독감 증상이 보고된 곳이 감옥과 군대 주둔지였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중의 군대 이동이 전세계적인 독감의 대유행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계를 비극으로 이끌었던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은 다시 스페인 독감으로 반복된 셈이다. 전쟁이란 단순히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전염병으로 인류에게 끔찍한 기억을 각인시킨다.

스페인 독감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1957년~1958년에 걸쳐 유행한 홍콩 독감이다. 홍콩 독감은 중국 윈난 성에서 시작되어 홍콩과 싱가폴을 거쳐 타이완 및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WHO가 계절성 독감에 주목하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분류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기부터였다. 대유행은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해안선을 타고 미국에까지 이르렀다.

1958년에 다시 시작된 대유행은 소련, 유럽, 일본 및 미국을 강타했으며 독성은 첫 번째 대유행의 독감과 비슷했다. 전세계 인구의 40~50%가 감염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중 25~30%가 독감 증상을 보였다. 치사율은 4,000명 중 한 명꼴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경우 유아와 노년층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국에서만 8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전세계적으로 약 백 만 명이 희생되었다7.

역사가 말해주는 것들

지난 300년간 발생한 10번의 대유행의 기원은 대부분 중국, 러시아,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었다. 각 세기 별로 대유행의 주기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개 40년~50년마다 대유행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인구가 증가하고 교통이 발달했지만 대유행의 주기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아마도 독감의 대유행을 일으키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인구의 증가나 교통의 발달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에 50~60년마다 찾아오던 대유행은 19세기에 이르러 10~40년 주기로 나타났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유행의 주기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68년의 독감 대유행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2008년경에 다시 대유행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아마도 2009년의 신종플루가 그 대유행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예측은 불확실하다. 다만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대유행이 1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9년의 신종플루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독감 대유행을 연구하는 것은 단순히 전염병학자들이나 과학자들만이 아니다. 의학사를 포함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독감은 인류사를 뒤흔든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독감 대유행의 면모는 그 규모에서 이미 전세계적인 사건이다.

나아가 지금까지 수십 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독감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여전히 독감이 유행될 것임을 알면서도 막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는 물질이 과학과 의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학과 경제학적으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앞으로 벌어질 독감 대유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대유행의 역사는 이러한 대유행이 가끔씩이지만 매우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역사는 또한 대유행의 참상이 인류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대유행들은 현대에 이르러 나타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그것이 우리와는 다른 종으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였다는 것 뿐이다.

대부분의 바이러스학자들은 언젠가 반드시 대유행이 올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쯤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미지의 대유행은 공포로서가 아니라, 철저한 준비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8.





1 세상을 바꾼 전염병의 역사. 파퓰러 사이언스. 2009. 11. 24
2 Pandemic flu: from the front lines. Nature 461, 20-21 (2009)
3 The first pandemic of the 21st century: a review of the 2009 pandemic variant influenza A (H1N1) virus. Scalera NM, Mossad SB. Postgrad Med. 2009 Sep;121(5):43-7.
4 A history of influenza. Potter CW. J Appl Microbiol. 2001 Oct;91(4):572-9.
5 최근엔 1890년 대유행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확인되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중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6 Influenza Report 2006
7 Realities and enigmas of human viral influenza: pathogenesis, epidemiology and control.
8 Maurice R. Hilleman. Vaccine Volume 20, Issues 25-26, 19 August 2002, Pages 3068-3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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