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6,2018

카레의 ‘항암 효과’, 어디까지 사실일까

커큐민, 항암제 가능성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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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약이다’는 말이 무색하게 현대인의 대사질환 다수는 만성적인 과식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식재료 만든 음식을 적당량 먹으면 약까지는 몰라도 음식 때문에 병이 걸릴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여러 음식 가운데도 건강에 좋다고 손꼽히는 것들이 있는데, 인도의 음식 카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카레의 주재료인 강황에 들어있는 커큐민(curcumin)이라는 성분이 특히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에 ‘프렌치 패러독스’가 있다면 인도에는 ‘인도 패러독스’가 있다. 즉 프랑스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으면서도 적포도주를 곁들여 마시기 때문에 심혈관질환 위험성이 낮듯이, 인도 사람들은 카레 덕분에 나이 들어서도 치매에 걸릴 위험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런 커큐민의 효과가 널리 알려져서인지 강황 비율을 높인 카레 분말도 나와 있다.

커큐민은 카레의 진한 노란색을 띠는 분자로 강황 뿌리에 최대 5%까지 들어있다. 카레 분말에 강황 비율이 5%라면 최대 0.25%의 커큐민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커큐민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인데 알츠하이머병은 물론 숙취, 발기부전, 대머리, 다모증(多毛症), 심지어 항암효과까지 작용범위가 광범위하다.

지금까지 나온 커큐민 관련 논문이 1만5000건을 넘는다.

생강과(科) 식물인 강황의 뿌리를 말려서 곱게 빻은 샛노란 가루에는 커큐민이 5%까지 들어있다. 수천 년 동안 만병통치약으로 불린 강황(커큐민)은 그러나 지난해 한 리뷰논문에서 터무니없이 과대포장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커큐민의 항암 메커니즘이 분자 차원에서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생강과(科) 식물인 강황의 뿌리를 말려서 곱게 빻은 샛노란 가루에는 커큐민이 5%까지 들어있다. 수천 년 동안 만병통치약으로 불린 강황(커큐민)은 그러나 지난해 한 리뷰논문에서 터무니없이 과대포장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최근 커큐민의 항암 메커니즘이 분자 차원에서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커큐민 연구는 시간과 돈 낭비?

그런데 지난해 1월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기사가 찬물을 끼얹었다. 커큐민의 효과가 터무니없이 과장돼 있다는 리뷰논문을 소개한 기사다.

이에 따르면 미국 미네소타대 마이클 월터스 교수 등 논문의 저자들은 커큐민에 대한 환상이 많은 연구자들을 진창에 빠뜨렸고 막대한 연구비만 낭비했다고 주장했다.

즉 커큐민 관련 논문 수천 건과 임상 120여 건 가운데 치료 효과를 확실히 보여준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기사가 나가고 두 달 뒤 ‘네이처’ 서신란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미챌 헤거 교수의 글이 실렸다.

‘커큐민 임상 데이터 모두를 폄훼하지 말라’는 제목의 서신에서 헤거는 학술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제대로 된 임상만 49건이 나오고 이 가운데 17건에서 효과를 보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아무튼 커큐민의 효과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7월 9일자 온라인판에 실린 논문은 커큐민 같은 천연물질의 약효를 보는 연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커큐민의 항암효과를 분자 구조 차원에서 규명했기 때문이다.

커큐민이 일부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고 연구자들은 여러 메커니즘이 제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로테아좀의 기능을 억제해 항암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프로테아좀(proteasome)은 세포 내 단백질 쓰레기처리장으로, 쓸모가 다 했거나 잘못 접힌 불량 단백질을 분해해 아미노산 2~10개인 작은 조각으로 내보낸다.

세포 내 단백질분해효소는 이 조각들은 개별 아미노산으로 쪼개 재활용한다. 리보솜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프로테아좀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것도 세포(궁극적으로는 개체)의 건강에 중요하다.

그런데 일부 암에서 프로테아좀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특정 단백질을 빨리 분해하고 그 결과 세포의 성장과 분열이 촉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이런 작용을 억제하는 항암제도 개발됐다. 그런데 10여 년 전 커큐민도 비슷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DYRK2 효소와 커큐민을 함께 넣은 상태에서 결정을 만들어 X선 회절법으로 구조를 밝힌 결과 DYRK2(표면이 흰 분자) 가운데 커큐민(노란색 골격 분자)이 강하게 결합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왼쪽과 오른쪽은 결합 부위를 확대한 이미지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DYRK2 효소와 커큐민을 함께 넣은 상태에서 결정을 만들어 X선 회절법으로 구조를 밝힌 결과 DYRK2(표면이 흰 분자) 가운데 커큐민(노란색 골격 분자)이 강하게 결합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왼쪽과 오른쪽은 결합 부위를 확대한 이미지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약물과 병용하면 시너지효과 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잭 딕슨 교수팀은 커큐민과 DYRK2라는 효소를 함께 넣어 만든 결정의 구조를 X선 회절법으로 분석한 결과 커큐민이 DYRK2에 찰싹 달라붙어 촉매로 작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DYRK2는 프로테아좀의 특정 단백질을 인산화시켜 활성을 높인다. 즉 커큐민의 항암효과는 DYRK2를 억제해 결과적으로 프로테아좀의 활성을 떨어뜨린 결과라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커큐민이 실제로 프로테아좀의 활성을 억제하는지 보기 위해 먼저 세포를 분쇄한 용액에 커큐민을 넣었다. 그 결과 프로테아좀 활성이 25~40% 떨어졌다.

그렇다면 실제 암세포에서는 어떨까.

프로테아좀 과도 활성으로 생긴 대표적인 암으로는 다발성골수종(혈액암의 하나)과 삼중음성유방암(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 수용체를 발현하지 않는 종양)이다.

연구자들은 프로테아좀 억제 항암제인 카필조밉(carfilzomib)과 커큐민을 단독으로 썼을 때와 둘을 같이 썼을 때 암세포의 생존율을 비교했다.

그 결과 다발성골수종과 삼중음성유방암 모두 카필조밉이나 커큐민 단독으로 썼을 때는 생존율이 50%를 상회했지만 둘을 같이 쓰자 20~3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반면 정상세포는 거의 죽지 않았다.

한편 사람의 삼중음성유방암 세포를 이식해 암을 유발한 생쥐를 대상으로 커큐민을 격일로 투여한 결과 종양이 커지는 속도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세포 실험과 동물 실험만으로 커큐민이 사람에서도 항암 효과를 낸다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존 항암제와 병용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꽤 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결과가 지난해 체면을 구긴 커큐민이 명예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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