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전래동화인 ‘아기돼지 3형제’를 보면 집을 짓는 소재로 ‘짚(straw)’과 ‘나무’, 그리고 ‘벽돌’이 등장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밀짚으로 지은 집은 늑대의 입바람에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제일 허술한 소재로 등장한다.
얼마나 약하게 보였으면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 속에서도 밀짚을 제일 나약한 소재로 그렸을까? 하지만 이제 그런 약한 이미지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짚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부각되면서, 튼튼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좋은 최고의 건축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첨단기술 전문 매체인 기즈맥(Gizmag)은 영국의 친환경 프로젝트 그룹이 밀짚으로 만든 주택단지들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난 4일 보도하면서, 단열 능력이 뛰어난 밀짚을 소재로 주택을 지으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을 다른 지역의 1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 링크)
단열 소재이면서도 화재와 바람에 강한 밀짚 패널
영국의 리즈 지역에 건설된 친환경 주택단지인 '라일락 커뮤니티(LILAC Comminity)'는 밀짚으로 된 조립식 패널로 지어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이 단지가 단순히 밀짚을 소재로 지어졌다고 해서 유명한 것은 아니다. 리즈 지역의 평균 에너지 소비 수준과 비교하여, 이 주택단지의 가스요금이 90% 가깝게 절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 주택단지가 에너지를 대폭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유는 소재와 설계가 차별화되었기 때문이다. 밀짚을 가공하여 만든 외부 벽과 지붕, 그리고 3중으로 이루어진 창문 등이 단열성을 유지하도록 만든다. 또한 모든 구조가 밀폐가 잘 유지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외부로 열이 누출되는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라일락 커뮤니티는 지속가능한 건축을 추구하는 영국의 프로젝트 그룹인 베일하우스(BaleHaus)가 조성했다. 베일하우스는 3개의 회사가 협업하는 프로젝트성 조직으로서, 밀짚 절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모드셀(ModCell)사와 시공을 맡은 캐단(Cadan)사, 그리고 디자인을 담당하는 화이트(White)사로 이루어져 있다.
모드셀사가 제공하는 조립식 패널의 주요 소재는 밀짚이다. 이 회사는 밀짚과 나무섬유를 압착하여 절연제로 만들고, 여기에 목재로 패널의 틀을 만들어 완벽한 친환경적 제품을 만들었다. 또한 패널의 규격을 모듈 유닛(Module Unit) 형태로 제작하여, 시공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이 만든 밀짚 소재의 패널은 화재와 바람에도 견딜 수 있다. 영국의 건축 규제 요구사항인 조립식 주택의 화재 저항 실험에서 화재 저항 기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고, 강한 바람에 대한 저항도 강하여 최대 시속 193km의 태풍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모드셀사의 관계자는 “라일락 커뮤니티의 가치는 현대적인 생활방식을 영위하더라도, 이렇게 사는 삶이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다”라고 설명하며 “이런 효과를 인정받아 라일락 커뮤니티는 최근 자치단체에서 지정하는 ‘패시브하우스(Passivhaus)’ 주택으로 인증 받았다”고 말했다.
패시브하우스란 첨단 단열공법을 이용하여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한 건축물을 말한다. 따라서 별도의 난방설비 없이도 겨울철에 20도(℃)정도의 따뜻한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비로소 패시브하우스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밀짚보다 더 뛰어난 볏짚 소재 에너지 절감 주택
서양의 짚 문화가 밀짚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의 짚 문화는 볏짚이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밀짚이 아닌 볏짚을 활용한 에너지 절감형 친환경 주택이 하나둘씩 선을 보이고 있다.
볏짚으로 만든 집을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 Bale hous)’라 부르는데, 스트로베일이란 육면체 형태의 상자 모양으로 볏짚을 압축한 것을 말한다. 볏짚을 뜻하는 스트로(Straw)와 가벼운 것을 단단히 묶는 더미를 가리키는 베일(Bale)의 합성어다.
소재로 사용하는 볏짚은 압축해서 제작하는데, 이는 집을 지을 때 벽돌 역할을 한다. 물론 이 같은 건축 소재는 서양의 밀짚 가공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지난 2005년에 강원도에서 처음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지어진 이후, 지금까지 관련 주택들이 지어지면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에너지 절감 주택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볏짚과 밀짚의 소재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들은 “볏짚이 밀짚보다 더 다양하고 광범위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라고 평가하면서 “밀짚의 경우는 속이 빈 대롱 구조여서 마르게 되면 쉽게 부서지지만, 볏짚은 속이 찼으면서도 부드럽기 때문에 감촉과 내구성면에서 밀짚이 따라오지 못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볏짚으로 만든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앞에서 예를 든 라일락 커뮤니티의 경우처럼 바로 ‘단열성’이라 할 수 있다. 폭이 50센티미터(㎝)나 되는 두툼한 볏짚에 3~5센티미터 두께의 황토까지 바르기 때문에 따로 단열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보온효과가 좋다.
또한 ‘습도조절’ 능력도 단열성만큼이나 매력적인 요인이다. 장마철에도 집 안에 빨래를 널면 하루 만에 뽀송뽀송하게 마르게 되는데, 이 같은 현상은 바로 볏짚이 가진 탁월한 습도조절 능력 덕분이다.
볏짚은 실내 습도가 높으면 습기를 빨아들였다가 실내가 건조해지면 다시 발산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장마철에는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실내 습도가 바깥보다 낮아서, 오히려 문을 꽁꽁 닫고 있어야 시원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장점으로는 ‘경제성’을 들 수 있다. 스트로베일 건축연구회의 자료에 따르면 여름에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평균 실내 온도가 목조주택보다 3도 정도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면적이 100제곱미터(㎡)인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경우는 난방비가 일반주택에 비해 50퍼센트 정도가 더 절감된다. 실제로 콘크리트로 지은 집에 살 때보다 겨울철 난방비용이 훨씬 덜 든다는 것이, 이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이 외에도 저렴한 건축비 또한 스트로베일 하우스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에너지절약 주택으로 꼽히는 패시브하우스도 3.3제곱미터 당 평균 건축비가 650만 원 이상을 상회하지만,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450만~500만 원에서 건축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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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3-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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