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2,2017

진통제가 미국인 수명 감소시켜

국가 비상사태 선언케 한 오피오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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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의사협회 학회지(JAMA)에는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게재됐다. 2000년부터 2015년의 미국인 평균수명 변화를 조사한 결과, 전체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일정 연령에 도달한 사람이 그 이후 몇 년 동안이나 생존할 수 있는가를 계산한 기대여명에서는 이상한 현상 하나가 감지됐다.

미국인의 기대여명이 2014년 78.9세에서 2015년 78.8세로 소폭 감소한 것. 이는 1993년 이래 처음으로 하향 곡선을 그린 셈이다. 연구진은 그 이유에 대해 추적한 결과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다. 미국인들의 기대여명 감소가 바로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 때문임이 밝혀진 것이다.

오피오이드(Opioid)란 마약성 진통제를 말한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처방하는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는 뇌와 척수에 있는 단백질에 결합해 통증 지각을 감소시킴으로써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모르핀을 포함해 옥시코돈, 하이드로코돈, 펜타닐, 메타돈, 트라마돌, 하이드로몰폰 등의 상표명으로 출시된 것이 모두 오피오이드다.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가 미국인의 기대여명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public domain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가 미국인의 기대여명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public domain

미국 연방질병통제센터(CDC) 산하 국립보건통계센터(NCHS)가 공개한 보고서에 의하면 마약성 약물 남용으로 인한 전체 사망자는 2015년 5만 2404명에 달한다. 그런데 그중 오피오이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건수는 63%인 3만3000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약물 남용 사망자의 2/3에 가까운 셈이다.

2016년에는 약물 과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약 6만4000명에 이르는데, 이는 자동차사고나 총기난사, 에이즈로 사망한 이보다 더 많은 숫자다. 약물 과용 사망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1999년에는 미국 인구 10만명당 6.1명이었는데, 2015년에는 16.3명으로 늘어나 지난 16년간 약 3배나 증가했다.

오피오이드 과용으로 10년 후 약 65만명 사망

미국의 의학전문매체 ‘스태트(STAT)’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기대여명은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후에는 약 65만명이 오피오이드 과용으로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10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바로 오피오이드다. 톰 프라이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양키스나 다저스 스타디움 규모의 사람들이 매년 사망한다”며 오피오이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문제는 미국인들을 사망으로 몰고 가는 약물 유행이 불법 약물이 아니라 합법적인 마약이라는 사실이다. 마약 성분임에도 오피오이드의 구입은 매우 쉽다. 수술 환자나 기존 진통제로는 효력을 보지 못한다는 환자의 진술만으로도 처방이 가능하다.

CDC에 의하면 지난 2012년 1차 의료기관에서 발급된 오피오이드 처방전은 2억5900만 건에 이른다. 1999년보다 무려 3배나 증가한 수치다. 오피오이드의 처방이 급증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1990년대의 의사들은 통증을 심각한 의학적 문제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들은 의사들의 그 같은 우려를 교묘히 파고들었다. 최대 오피오이드 제조회사인 ‘퍼듀파머’사는 1990년대 후반에 오피오이드를 복용할 수 있는 환자 범위를 넓혀 대중화시켰다. 또한 많은 제약회사들이 엄청난 로비 자금을 정가와 관련 공무원들에게 뿌려 오피오이드의 영역을 확대해나갔다.

심지어 범죄 조직까지 가세해 오피오이드의 불법 유통을 부추겼다. 의사를 직접 고용해 오피오이드를 대량으로 불법 처방하는 클리닉을 개설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뉴욕에서는 의사 한 명이 지난 5년간 무려 220만개의 오피오이드를 환자들에게 처방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부 의사의 마구잡이 처방 덕분에 오피오이드는 길거리 마약보다 더 쉽고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강력한 단속보다 치료 시스템 구축이 시급

오피오이드의 불법 유통은 한 번 터진 봇물처럼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 정부가 규제를 시작하자 구매가 어려워진 오피오이드 중독자들이 더 강력한 약물인 헤로인으로 옮겨가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헤로인 구입자의 75%가 처음에는 진통제로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피오이드로 인한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자 미국의 지자체들이 제조회사를 대상으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에버렛시는 퍼듀파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며, 타코마시도 퍼듀파머를 비롯해 엔도, 젠슨 등 3개 제약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최근에는 워싱턴주와 사애틀시가 퍼듀파머를 상대로 각각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주의 경우 2000년 이래 1만명의 주민들이 오피오이드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는 징역형 등의 법률 강화로 마약 사용자와 판매자를 단속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 비상사태 선언으로 오피오이드 남용을 막기 위한 재정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미국의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최근 발행한 기사를 통해 마약 중독에 대한 강력한 단속보다는 그들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정책 입안자들과 대중 모두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사람들이 치료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미국에는 그 같은 중독 치료 인프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외과의사협회가 2016년에 발행한 보고서에 의하면 마약 사용 장애를 가진 미국인의 10%만이 전문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미국은 수십 년 전부터 마약 밀매업자 등을 강력하게 단속해왔으나 눈에 띌 만한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미국이 오피오이드로 인한 최근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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