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던 심괄이 지은 ‘몽계필담’이라는 책에는 이상한 내용이 하나 기록되어 있다. 자침이 대략의 남북을 가리키지만 진짜 남북의 방향과는 약간 다르다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자침이란 현대의 나침반처럼 자유로이 회전할 수 있도록 한 작은 영구 자석으로서 남북의 방향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는 자침을 가벼운 갈대나 나무 등에 붙여서 물에 띄워 방향을 파악했다. 심괄의 경우 명주실에 자침을 달아매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어설픈 측정으로 인해 심괄은 그처럼 이상한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일까.
아니다. 실제로 나침반의 N극이 가리키는 방향은 진짜 북쪽 방향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심괄의 몽계필담은 자북과 진북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힌 최초의 기록이다. 여기서 자북(磁北)이란 나침반의 자침이 가리키는 북쪽이며, 진북(眞北)은 실제 지구의 북쪽 중심을 말한다.
진북과 진남, 즉 북극점과 남극점을 직선으로 이으면 바로 지구의 회전축이 된다. 그러나 나침반은 지구의 회전축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지구 자기장의 두 극이 미치는 힘을 가리킨다. 현재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점은 캐나다 북쪽 허드슨만 부근으로서, 매년 약 40㎞씩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자극의 이동속도가 연간 10㎞이었던 것에 비해 4배나 빨라진 셈이다.
게다가 지구의 자기장은 현재 점점 그 세기가 약해지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정황들을 두고 지자기 역전의 전조 현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지자기 역전이란 현재 남극 근처에서 흘러나와 북극을 통해서 흘러들어가는 자기장의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어 북극에서 남극으로 자기장이 흐르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렇게 되면 나침반의 N극과 S극이 서로 뒤바뀌게 된다.
지자기 역전은 과거에도 수없이 발생한 현상
지자기 역전은 실제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던 현상으로서, 오래된 용암의 샘플을 조사한 결과 평균 25만년에 한 번꼴로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미국 과학자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에서도 지자기 역전이 재현된 바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지구 자기장의 모델을 그대로 컴퓨터에 옮긴 후 오랜 시간 후로 설정해 가동시켰을 때 놀랍게도 어느 순간 지구 자기장의 방향이 바뀌어 버렸던 것.
그 과정에서 자성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지자기의 세기가 아주 약해지면서 부분적으로 이상이 생긴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의 지구 자기장에서 관측되는 현상들과 상당히 일치하는 결과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지자기 역전이 왜 일어나는지는 물론 지구에 자기장이 형성되는 원리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기 역전 현상은 지구 종말설의 원인으로 곧잘 대두되곤 한다. 지구 자기장은 태양에서 뿜어내는 대전입자를 비롯해 은하계를 통과해 들어오는 우주방사선을 막아주는 투명한 방어막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자기 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되면 일시적으로 지자기가 없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태양에서 오는 고에너지 입자와 우주방사선에 노출돼 암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게 되고 전자기기들이 이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둘기나 박쥐, 고래 등과 같이 자기장을 감지해 생활하는 동물들에게는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런 동물들은 자기장이 역전될 경우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릴 수 있다.
게다가 자기장이 사라져 태양풍을 직접 맞게 되면 고에너지 입자들이 대기권 내부에서 에너지를 발산해 지구온난화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와 함께 자칫 대기권 자체가 강한 태양풍에 휩쓸려 나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현생대에 들어서 지자기 역전 현상이 1000번쯤 발생했지만 전 지구적인 생물 대멸종은 5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또 인류의 조상이 처음 등장한 이후 수백만 년간의 진화과정에서도 수십 번의 지자기 역전을 겪었으나 멸종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지자기 역전 현상과 생물 대멸종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세계 최대의 지자기 추적 프로젝트 진행 중
지자기 역전이 일어날 경우 발생할 현상에 대한 예측과 이론에 대해선 이처럼 논쟁이 많다. 또한 과거의 지자기 역전 주기가 일정하지 않아 현재 지자기 역전이 진행되고 있는 건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인류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들이며 자기장 형성의 명확한 원리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우주국(ESA)에서는 세계 최대의 지자기 추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러시아 프레세츠크 발사기지에서 쏘아올린 스웜(Swarm)이라는 3대의 인공위성들이 바로 그것.
지상 460킬로미터의 궤도에서 나란히 도는 스웜 A와 B, 그리고 530킬로미터 궤도에서 도는 스웜 C는 지구의 핵과 맨틀, 지각, 해양, 그리고 이온층과 자기층에서 발산하는 자기 신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있는 지상국에 보내오고 있다. 이 데이터들을 취합하면 지구의 중심부와 지각에 의해 생성되는 자기장에 대한 전 지구적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스웜 호가 지난 6개월간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최근 지구 자기장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지구 자기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대세이며, 특히 서반구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 그러나 남인도양 지역에서는 올해 1월 이후로 자기장이 강해지고 있으며, 시베리아 북쪽으로 자기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변화들은 지구 핵에서 유래하는 자기장 신호에 근거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곧 데이터를 분석해 맨틀과 지각, 해양, 전리층, 자기권 등의 다른 원천이 자기장에 기여하는 부분을 해명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스웜 프로젝트에 의해 축적된 정보들은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지도제작기술 등의 정확성을 개선시키는 것과 더불어 천연자원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발굴하는 기술 효율성을 개선하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 그 가치를 증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과연 스웜 프로젝트가 지구라는 행성의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태양 활동으로 인한 우주 날씨까지 많은 자연 프로세스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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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07-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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