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017

지식과 정보 대중화의 출발, ‘금속활자’

과학기술 넘나들기 (8)

인쇄하기 과학기술 넘나들기 스크랩
FacebookTwitter

최근 금속활자의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소식이 하나 보도된 바 있다. 즉 그동안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금속활자일지도 모른다고 거론되어 온 이른바 ‘증도가자(證道歌字)’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을 심의한 결과가 부결로 매듭지어진 것이다.

증도가자란 고려시대의 불교 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인쇄한 활자라고 주장되어온 것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1377년)보다 138년 이상 앞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과학적 조사 결과 실제 증도가자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성서. ⓒ Free Photo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성서. ⓒ Free Photo

21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1999년 무렵, 미국에서는 앞선 1,000년에 걸쳐서 인류의 역사에 무척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발명들이 무엇이었는지 조사해서 순위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결과, 숱한 발명품들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꼽힌 것은 바로 다름 아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였다. 비록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 1,000년 동안의 중요한 발명품 1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금속활자가 인류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뜻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서양에서 금속활자를 처음 발명한 것으로 꼽히는 인물은 독일의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이다. 15세기 무렵 서양에서는 책을 만들기 위하여 목판을 이용한 인쇄법을 사용하였는데, 구텐베르크 역시 목판 인쇄공의 한 사람으로서 주로 교회에서 주문한 성서를 인쇄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당시의 목판 인쇄는 한 장의 나무판 위에 한 페이지의 분량의 글자들을 차례로 새겨 나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한 자라도 잘못 파면 목판 하나를 모두 못 쓰게 되어 처음부터 다시 파야만 했다. 당연히 책을 만드는 데에 시일이 많이 걸렸고 약속한 날짜에 일을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 ⓒ Free Photo

금속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 ⓒ Free Photo

구텐베르크는 글자를 잘못 파서 못쓰게 된 목판을 볼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좀 더 편리하게 글자를 인쇄하는 방법이 없는지 궁리해 보았다. 고심 끝에 그는 못 쓰게 된 목판의 글자들을 하나씩 끊어서 나무활자들을 만든 후, 그것을 짜 맞추어서 한 페이지를 인쇄하고, 다음 페이지 역시 거기에 맞게 나무활자들을 맞추는 방법으로 인쇄를 하였다. 이 방법을 쓰면 한 글자를 틀려서 한 페이지 전체를 다시 새기는 고충도 없고, 같은 활자를 몇 번이고 쓸 수 있어서 편리했지만, 좋지 않은 점도 있었다. 즉 나무 활자는 그다지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덧 번 정도 쓰고 나면 활자들이 깨지고 닳거나 귀퉁이가 부서져서 인쇄된 모양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구텐베르크는 보다 튼튼한 재료를 써서 활자를 만들려고 궁리한 끝에, 납으로 활자를 만드는 금속활자를 발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짜내는 압착기를 이용하여 책을 찍어내는 인쇄기도 만들었다. 금속활자를 이용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선보인 것은 1447년으로, 그는 새로운 인쇄기로 성서나 노래책, 그밖에도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쇄물 등을 많이 펴냈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많은 책들을 찍어낼 수 있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알파벳 개수를 따서 ‘26개의 납으로 된 병정’으로 불렸고, 다른 나라에도 널리 퍼지면서 인쇄술은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찌 보면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금속활자가 다른 훌륭한 발명품들을 뒤로 하고, 지난 천년 동안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꼽히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물론 금속활자를 통한 인쇄술 덕분에 책과 지식의 보급, 교류가 엄청나게 늘었고, 그것이 이후 인류의 역사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 때문이다.

금속활자 덕에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이 많아지고 글을 익히게 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소수의 귀족이나 특권층만이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식과 정보의 습득과 유통이 대중화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대중들이 지식과 정보를 서로 교류하면서 발전시키다 보니, 인류 역사도 크게 바뀌게 되었고, 종교개혁, 과학혁명 등 16세기 이후 일어난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 역시 금속활자 인쇄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지식의 보급 덕분에 사람들의 의식도 크게 깨치게 되어,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역시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 세종 시기의 금속활자. ⓒ GNU Free

조선 세종 시기의 금속활자. ⓒ GNU Free

우리나라는 구텐베르크보다도 200년 이상 앞서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그것이 서양에서만큼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또한 국보 제126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지만, 중국에서 인쇄되어 전해진 것이라는 ‘과학판 동북공정’에 밀려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과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는 지식과 정보의 습득 및 유통이 인쇄물보다는 갈수록 온라인과 모바일 등에 더욱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종이신문, 인쇄책자 등은 퇴조를 거듭하면서 미래에는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있는데, 불가피한 시대적 조류라 하더라도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