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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신기술
황정은 객원기자
2014-05-08

종이처럼 접히는 메모리 소자 [인터뷰] 박철민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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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통신기기의 크기는 계속 작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얇아지는 만큼 유연성도 요구하고 있어 곡률을 갖는 메모리 소자를 개발하는 것 역시 해당 분야에서 크게 강조되는 이슈 중 하나다.

유연한 메모리 소자는 다양한 곡률을 갖는 환경에서도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다. 이러한 소자는 기존 메모리 소자에서 사용되는 무기물 소재를 유기물 기반의 반도체 물질 및 고분자 절연체를 이용해 유연기판 위에 구현함으로써 실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기물을 이용한 기존의 유연한 메모리 소자는 수 밀리미터 수준의 곡률에서만 작동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극한의 변형에서는 신뢰도가 낮아지고 안정성을 나타내는 문제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무기물 메모리 소자에 비해 낮은 성능을 갖지만 유연한 특성을 갖는 유기 메모리 소자의 강점을 살리지 못했고 차세대 웨어러블 전자 소자에 적용하는 데도 어려움을 제공했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연 소자에 적합한 물성과 함께 뛰어난 전기적 특성을 갖는 유기물 및 고분자 재료를 사용해야 합니다. 유연 소자의 구조를 이루는 각 유기 반도체 물질과 고분자 절연체 박막이 갖는 기계적 특성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 및 분석이 필요한 거죠.”

유연성과 변형에 대한 저항 극대화

박철민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 박철민
박철민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 박철민

국제공동연구진이 소자의 유연성과 변형에 대한 저항을 극대화 한 차세대 폴더블(foldable) 비휘발성 유기 메모리 소자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박철민 연세대 교수와 이형석 교수 팀, 더불어 일본 및 프랑스 연구진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개발된 소자는 간단한 용액공정으로 제작이 가능하며 종이처럼 접을 수 있어 향후 웨어러블 컴퓨터 등의 디스플레이와 통신 및 저장 장치 소자 개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휘발성 메모리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저장된 정보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메모리입니다. 현재 다양한 원리와 재료를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죠. 저희 팀은 그 중 기계적인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고분자(플라스틱) 재료를 기반으로 메모리를 개발했어요. 특히 고분자 재료 중 비휘발성을 갖고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강유전 고분자를 기반으로 소자를 개발했습니다.

지금까지 고분자를 이용한 휘어지는 메모리는 여러 차례 개발됐지만 휘어지는 정도가 수 밀리미터 수준이었어요. 때문에 차세대 웨어러블 전자 소자로 응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죠. 기존의 휘어지는 메모리 소자의 경우에도 구조 내 기계적 성능 평가 실험을 바탕으로 유연 특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응용 수준의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박철민 교수팀은 새로운 타입의 강유전 고분자를 기반으로 한 유연 메모리를 제안했다. 기계적 유연성을 갖는 강유전 고분자 기반 메모리의 경우 강유전 고분자와 함께 유연성을 보장할 수 있는 유기반도체 재료를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즉 플라스틱 기판 위에 강유전고분자, 유기반도체가 차례로 적층되는 박막형 메모리가 구성되는 것이다.

기존의 한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기계적 유연성을 위해 소자를 구부리거나 휠 경우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유기반도체 층의 균열 혹은 유기반도체 층과 강유전 층 간의 분리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기계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박철민 교수팀은 일본 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강유전 고분자와 계면 접합성능이 우수한 유기 반도체 개발을 시도했다. 이를 강유전 메모리소자에 적용해 단순히 구부리는 정도의 유연성이 아닌 완전히 유기반도체와 강유전 고분자 박막을 접었을 경우에도 소자가 안정적으로 구동되는 메모리 소자를 개발한 것이다.

“이번 실험성과는 저희 팀이 최초로 이끌어낸 결과에요. 나노스크래치 실험을 통해 유기 반도체 물질의 기계적 특성과 강유전 박막 사이의 계면 특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한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나노인덴테이션 실험을 통해 반도체 물질의 기계적 탄성․소성 거동을 분석했어요. 나노스크래치 실험을 통해서는 반도체 물질과 절연막 간의 우수한 계면 특성을 확인했죠. 이렇게 개발된 메모리 소자가 반복적 구부림 또는 접힘 상황에서도 그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박철민 교수팀은 강유전체 메모리를 활용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강유전체란 외부 전기장이 가해지지 않아도 분극을 유지할 수 있는 물질을 일컫는다. 박철민 교수팀이 강유전체를 활용한 이유는 탄성에 있다. “강유전 재료는 잘 알려진 자석의 N극 S극, 즉 전자의 스핀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강자성 재료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강유전 재료의 경우 스핀이 아닌 전자의 분극을 이용해요. 전기장에 의해 유도된 분극이 자석의 N, S극 같이 두 가지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재료가 강유전 재료입니다. 이와 같은 두 종류의 분극은 정보 저장에 이용될 수 있죠.

기계적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분자 즉 플라스틱 기반의 메모리 소재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같은 요구조건을 만족하는 고분자 재료가 강유전 고분자 입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우수한 잔류 분극을 특성을 가진 ‘PVDF-TrFE’ 강유전체 고분자를 이용했습니다. 강유전 고분자는 유기물 기반의 메모리 소재 중 가장 우수한 메모리 성능을 갖고 있어요. 특히 기계적 유연성과 내화학성, 열안정성 등 매우 우수한 재료 성능을 갖고 있죠.”

인체정보 저장하는 스마트 센서 등에 이용 可

 

강유전체 고분자 메모리의 동작 원리. 강유전체 고분자 메모리는 강유전체의 분극 방향을 변화시켜 소스-드레인의 전류를 조절한다. ⓒ 한국연구재단
강유전체 고분자 메모리의 동작 원리. 강유전체 고분자 메모리는 강유전체의 분극 방향을 변화시켜 소스-드레인의 전류를 조절한다. ⓒ 한국연구재단

 

다른 유연 소자와 달리 유연 메모리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초기 단계다. 최근 들어 다양한 유연 메모리 소자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대부부분이 소자의 성능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도다. 단지 기계적 유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재료 자체의 개발 보다는 기계적 변형을 보다 쉽게 견딜 수 있는 소자구조 개발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박철민 교수는 이런 경우 얻을 수 있는 기계적 유연성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희 연구 역시 다른 연구들과 같이 메모리 소자의 기계적 유연성 확보를 위한 소자구조 등 다양한 시도를 진행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사항에 대해 의문을 가졌죠. 우리가 다루는 재료의 기계적 한계는 어느 정도인지, 극단적인 기계적 변형, 즉 접을 수 있는 소재는 가능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요. 그리고 이를 위해 과연 어떤 소재가 적합할 지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다양한 소재를 탐색하고 연구를 진행했어요. 강유전 고분자와 유기 반도체의 재료적 측면에서 궁합을 고민한 거죠. 그 결과 지금까지 보고된 재료 중 가장 우수한 기계적 정합성을 갖는 두 소재를 개발 할 수 있었습니다.”

박철민 교수는 기존에 이처럼 재료에 초점을 둔 연구진행이 어려웠던 것은 박막형 유연재료의 기계적 특성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저희 연구에서는 최초로 나노인덴테이션과 나노 스크레칭 기법을 고분자 기반 유연메모리 소자에 적용했다”며 “왜 이와 같이 우수한 유연성이 얻어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인을 규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연구는 약 3년 전, 현 큐슈대학에 재직 중인 리비에르(J. C. Ribierre) 박사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리비에르 박사는 일본에서 개발한 새로운 유기반도체에 대해 발표를 한 상태였고, 박철민 교수에게 이를 강유전 고분자에 적용해 메모리를 개발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연구가 출발할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유연 메모리의 성능 구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적절한 박막제조 조건, 적층을 위한 실험조건, 다양한 소자구조, 소재의 미세구조 제어 등 많은 과정들을 거치면서 소재를 이해하고 소자 성능을 구현할 수 있었죠. 특히 접을 수 있는 메모리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금속코팅이 된 껌 포장지를 이용하기도 했어요. 이를 이용해 소자를 만들고 접어서 메모리가 구동되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잊지 못하죠.”

해당 연구결과는 인체와 사물을 연결하는 사물인터넷 등 미래 스마트 사회에 반드시 요구되는 웨어러블 소자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전 방위로 진행 중인 유연 디스플레이, 유연 에너지 소자 등에 함께 적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유연 비휘발성 메모리는 인체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스마트 센서 등에 널리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플렉서블 유기전자 소자는 많이 소개됐어요. 하지만 완전히 접을 정도의 유연성을 갖는 메모리 소자는 아직 개발 전이었죠. 이번 저희 연구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된 셈입니다. 이번 연구는 우수한 유연성에 대한 원인을 실험적으로 분명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메모리 뿐 아니라 다양한 유연 소자연구에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 한 사람의 과학자로 사회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박철민 교수. 그는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인간과 인터넷, 그리고 사물이 하나가 되는 스마트 사회에서 유연성을 갖는 고분자 기반의 메모리 소자가 실용화돼 많은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기를 원한다며 앞으로의 바람을 이야기 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5-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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