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에는 림프관이 널리 퍼져 있어 유방에 암이 생기면 암세포가 림프관을 타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 전이가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수술한 후에도 재발되는 수가 적지 않다. 이는 암 수술 후 6개월마다 재발 여부를 검사하는 종양 표지자 항원검사에서 수치가 정상으로 나와도 재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방암 전이와 재발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저명 학술지 ‘네이처’(Nature) 23일자에 발표돼 재발한 암의 치료 전략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의 요점은 전이 혹은 재발한 암세포는 초기의 원발성 암세포와 달리 줄기세포와 같은 특성을 띠고 있어 처음에 썼던 항암제가 듣지 않아 새로운 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기 암과 전이 암은 별도의 치료약 필요”
우리 몸 안에서 암세포의 전이는 신속하고 간단하게 진행된다. 암 세포 하나가 종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혈류 속으로 흘러 들어간 다음 재빨리 몸 속의 다른 어디엔가로 옮겨가 새 둥지를 튼다. 이렇게 이주하는 종양들은 곧바로 치명적인 전이 암으로 진행하거나, 최초의 종양이 제거된 후 수십년 동안 휴면기에 있으면서 재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전이 암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가지만, 전이 암의 작은 씨앗들은 추적하기가 어려워 이 분야를 연구해 오고 있는 과학자도 매우 드문 편이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대학 연구진은 사람의 유방 종양에서 전이성 개별 암세포를 추출해 실험용 쥐에 이식한 후 이 전이성 암세포가 혈류를 타고 쥐 몸 안의 다른 곳에서 종양을 형성하는 것을 포착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전이성 암세포들에게서 나타나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이들이 유래한 최초의 원발성 종양들과는 매우 다르며, 유방 줄기세포에서 전형적으로 표현되는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는 암 전이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꾸고 전이된 ‘암 씨앗’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약 개발의 교두보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의 시니어 저자이자 해부학과 부책임자인 제나 워브(Zena Werb) 교수는 “지금 쓰이는 대부분의 암 치료제는 초기 암과 전이 암에 차이를 두지 않고 적용된다”며, “초기 암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도 전이 암에는 듣지 않아 환자들이 재발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들이 초기 암을 치료하거나 제거했어도 몇몇 전이 암세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20~40년 후에 뒤늦게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세포 유전체학을 연구에 활용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이 연구를 주도하고 현재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조교수로 있는 데본 로슨(Devon Lawson) 교수는 “휴면기의 전이 암세포들이 어떻게 정체를 숨기고 수십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다”며, “이는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암 연구분야의 거대한 블랙박스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연구의 어려움 때문에 모든 유방암 환자가 전이로 사망하는데도 이 분야 연구비는 전체 암 연구비의 7%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워브 교수팀은 이전 연구에서 전이 암이 될 것 같은 일련의 암세포들을 유방 종양의 가장자리에서 발견했다. 이 암세포들은 혈류와 매우 가깝게 접근해 있었고 주변의 종양미세 환경에서 발견되는 단백질도 갖고 있어 유방 줄기세포와 매우 유사한 유전적 프로그램을 발현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유방 줄기세포는 사춘기 동안에 유방을 형성하고, 수유기 때 더 크게 성장하도록 한다.
이번의 새 연구에서 연구팀은 ‘환자 유래의 이종이식’(PDX)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종양 세포를 실험용 쥐로 이식했다. 또 유동 세포계산법을 이용해 실험용 쥐의 핏 속을 돌아다니거나 어느 부위에 정착해 있는 개별 전이성 인간 암세포들을 포획해 새로 개발한 미소유체(microfluidic) 기술로 이 암세포들이 가진 활성 유전자의 특성을 밝혀냈다.
전이 암세포가 줄기세포 특성 보여
연구팀이 실험용 쥐의 여러 다른 부위에서 자라는 인간 암세포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비교한 결과 초기 단계와 발달이 더 진행된 암세포군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발견됐다. 이미 여러 기관으로 퍼져나간 전이 암세포에서는 암세포들의 유전자 활동이 림프나 간, 폐나 뇌와 같이 암세포가 정착한 기관에 따라 약간씩 특성화된 양상을 보이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쥐에 이식될 때와 같은 원래 암세포의 그것과 같았다.
이에 비해 핏 속을 돌아다니는 초기 단계의 전이 암이나 암세포는 원래의 암세포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전형적으로 유방 줄기세포에서 나타나는 유전형을 표현했다. 이와 함께 이들 ‘씨앗 암세포’들은 스스로를 동면시킬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이들 암세포 무리가 동면 혹은 휴면기에 있으면 미분화된 상태로서 상대적으로 세포사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상태에서는 암세포가 새롭고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실험용 쥐의 전이 암세포가 유전적으로나 임상적으로 다양한 환자군에서 추출해 주입한 것인데도 유사한 유전자 활동 패턴을 보임으로써 세포가 전이성이 되는 것은 원래의 종양세포 유전자에 의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신약 개발에 대한 통찰력 제공
연구팀은 전이성 유전형 표현정보가 신약 개발에 가치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디나시클립(dinaciclib)이란 약을 이용해 원리증명 실험을 수행했다. 워브 교수는 이 약이 원래의 종양은 위축시키지 않고 전이성 암만을 거의 제거했다고 밝혔다.
논문의 교신 저자 중 한사람인 이 대학 의대 조직 및 세포생물학과 안드레이 고가(Andrei Goga) 교수는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것은 암 연구자들의 숙원 중 하나”라며, “현실적으로 종양을 발견했을 때 암세포가 그곳에 그대로 있지 않고 전이됐을 수도 있는데, 이번 연구는 초기 전이암의 유전적 특성을 알면 이 암들이 몸의 어디로 전이됐는지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놀랄 만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 활용한 단세포 유전체학(single-cell genomics) 이 새롭게 떠오르는 정밀의학 분야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5-09-24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