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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4-10-27

자기복제가 가능한 전기회로 등장 [인터뷰] 박정기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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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연하게 잘 휘어지는 전자기기가 주목을 받으면서 이에 수반되는 다양한 기술도 발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휘어지는 전자소자를 위해 디스플레이 두께가 더욱 얇아져야 한다거나, 아무리 굽히거나 접어도 전류가 흐를 수 있는 회로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회로가 잘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휘어지는 전자기기가 출시되면서 금속 재질의 전기회로가 균열로 인해 불량이 발생하는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주 휘어지고 굽어지는 등 다양한 자극을 받다 보니 회로에 균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발생한 균열의 경우 수리도 어렵다. 일반적으로 웨어러블 컴퓨터의 회로구조는 미세하면서도 복잡해 키트 단위로 부품을 교환하거나 고칠 수 없다. 때문에 한 번 회로가 단절되면 아예 쓰지 못하는 물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아이언맨’ 같은 인간형 로봇이나 웨어러블 컴퓨터 등의 개발과 제작을 요구한다. 시대의 니즈(needs)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움직임에도 끊어지지 않는 금속전선이 개발돼야 한다. 혹은 끊어진 전선을 효율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레이저만 쪼이면 접선 끝!

박정기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 박정기
박정기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 박정기

국내 연구진이 끊어진 전기회로를 손쉽게 복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박정기·김희탁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팀이 이승우 성균관대학교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끊어진 전기회로에 레이저를 쪼여주면 단락된 부분이 원래 상태로 다시 붙어 전기가 통하게 되는 기술을 만들었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의 이름은 ‘빛을 이용한 자기회복 전기회로’ 기술이다. 세계최초로 개발된 해당 기술은 회로에 레이저포인터를 2분 정도 조사하는 것만으로 끊어진 부위를 처음처럼 완벽하게 수리해준다.

개발된 전기회로는 휘고 접거나, 혹은 비틀어도 잘 작동되는 연성기판을 사용한다. 때문에 플렉시블 전자기기나 웨어러블 컴퓨터는 물론 움직임이 많은 인간형 로봇의 전선에 적용해 회로가 끊어졌을 때 곧바로 다시 수리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웨어러블 컴퓨터 및 플렉서블 기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국내외적으로 기술개발도 매우 활발해지고 있죠. 많은 전문가들은 이들 산업이 스마트폰 이후의 최대 먹을거리 전자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하지만 플렉서블 전자기기들은 구부림이나 늘림 등 외부 자극으로 인해 전기회로에 손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는 곧 전자기기 전체의 작동이 방해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죠. 무엇보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한 번 회로가 끊어진 기기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기기들은 고밀도 회로가 적용된, 가격이 매우 비싼 제품들입니다. 고밀도 회로가 적용됐기 때문에 고장난 부분만 수리하는 게 어렵고 모듈단위로 바꿔야 합니다. 이는 수리비용이 비싸지는 원인이고 결국 자원낭비의 문제점을 야기하곤 하죠.”

박정기 교수팀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손상된 전기회로에 빛, 즉 레이저를 짧은 시간 동안 조사함으로써 전기회로가 복구될 수 있는 매우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개발한 전기회로는 주위에 코팅된 특수고분자(아조고분자) 필름이 있어서, 빛을 받으면 일정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이 때 손상된 도선도 같이 흐르게 되면서 끊어진 부분이 다시 연결되죠. 저희 기술은 짧은 시간동안 빛을 조사하기만 하면 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은 물론, 기존 전기회로에 대한 부수적인 손상 없이 원상복구를 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조사되는 빛의 편광 방향과 나란히 움직이는 아조 고분자를 휘어지는 성질이 있는 연성필름에 코팅했다. 그 위에 전기전도도가 우수하며 손쉽게 합성이 가능한 은나노와이어를 도포함으로써 휘어지는 전기회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된 자기회복 전기회로를 테스트하기 위해 연구팀은 회로에 인위적으로 균열을 만들어 단락시켰다. 회로가 끊어진 부분에 500mw/cm2(단위면적당 발광 에너지) 세기의 레이저 빛을 조사하자 아조 고분자가 편광방향과 나란히 움직였다. 이와 동시에 도포된 은나노와이어가 아조고분자와 같이 움직여 끊어진 부분이 다시 접착돼 단락된 전기전도도가 회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에도 전기회로 손상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기전도성을 가진 유기금속 고분자 자체를 전도체로 만들어 비전도체인 다른 고분자와 섞어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죠. 이 경우 전도도 자체가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열을 가했을 때 흐름이 있는 고분자, 혹은 용매를 가했을 때 팽창하는 고분자 위에 금속 전도성 물질을 코팅해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 이 방식은 단락된 전도도를 회복하기 위해 섭씨 110도 이상의 고온 환경을 필요로 한다. 이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용매를 전기회로에 도포해야 하므로 기기 전체에 손상을 가하는 문제가 있었다.

“액체금속을 미세캡슐화해 전기회로 위에 도포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전기회로가 충격을 받았을 때 저절로 캡슐이 터져 전기회로를 회복하죠. 효과가 있긴 하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단점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방법들 모두 저희가 개발한 간편하게 빛을 사용하는 방법에 비해 매우 비경제적이고 기술적인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박정기 교수팀은 다른 방식의 연구를 진행했다. 고분자의 흐름을 유도해 전기회로를 극복하기 위한 기존 방법이 열이나 용매 등에 의존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빛으로써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박 교수는 “빛과 고분자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를 약 10년 동안 진행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덧붙였다.

빛으로 고분자 흐름을 유도하다

은나노와이어가 도포된 아조고분자 필름의 연성특성 파악. 구부림, 꼬임 등에도 모두 전기전도도를 유지한다. 자기회복 과정을 거친 후에도 전기전도도 특성을 유지한다. ⓒ KAIST
은나노와이어가 도포된 아조고분자 필름의 연성특성 파악. 구부림, 꼬임 등에도 모두 전기전도도를 유지한다. 자기회복 과정을 거친 후에도 전기전도도 특성을 유지한다. ⓒ KAIST

박정기 교수팀의 이번 연구가 성공할 수 있던 것은 핵심 기술, 즉 방향성 광 유체흐름 관련기술인 ‘DPL(Directional Photofluidization Lithography)’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에 사용된 고분자는 매우 특수한 성질을 갖는 ‘아조 고분자’입니다. 아조 고분자는 빛을 받으면 편광방향으로 흐르는 매우 특이한 현상을 나타냅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원리는 현재 규명 중에 있는데, 현재까지 추정된 바에 의하면 빛 에너지를 받으면 아조 고분자의 물리적구조가 변하면서 특정한 방향으로만 흐름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저희 연구팀의 이번 기술의 특징은 좁은 선폭의 빛이 특정 방향으로만 고분자 흐름을 유도함으로써 미세한 전기회로의 회복을 가능케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형태의 고분자 흐름을 이용한 리소그래피(이미지전달 기술)를 ‘방향성 광 유체흐름 리소그래피’라고 합니다. 저희 연구실에서 이를 영어로 ‘DPL(Directional Photofluidization Lithography)’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현재 해당 연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핵심을 말하자면 이렇다. 아조 고분자 위에 은나노와이어로 도선을 만들어 주고, 외부 충격으로 끊어진 도선에 빛을 쪼여준다. 빛을 쪼여주면 고분자의 광 유체흐름 원리에 의해 아조 고분자가 빛의 편광방향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도선도 함께 이동하게 된다. 결국 끊어진 도선이 다시 만나게 되고 전기회로가 복구된다. 짧은 시간의 조사만으로도 손상된 전기회로의 회복이 가능한 이유는 도선 아래에 코팅된 아조고분자가 빛에 대한 반응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박정기 교수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개발한 DPL기술을 실질적으로 응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다. 앞서도 언급했듯, 연구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은 DPL 기술이다. 해당 기술을 개발하기 이전, 박정기 교수 연구실에서는 이미 빛(레이저)과 고분자를 이용한 광 정보저장 장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상당한 기술적 성과를 이룬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광 정보저장시스템에 대한 시장 수요가 초기 예상보다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빛을 이용한 고분자의 나노구조체 제작 연구를 추가적으로 계속 하던 중 DPL 기술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나노구조체 제작을 성공했습니다. 더 나아가 DPL 기술을 실질적으로 응용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진행하던 중에 손상된 전기회로의 회복이라는 아이디어를 찾게 됐죠.”

DPL의 뿌리 기술을 얻은 시점까지 계수하자면 약 10년이 소요된 셈이다. 박정기 교수는 “뿌리기술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며 연구 과정을 회상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구를 마칠 수 있어 뿌듯하다. 앞으로 해당 연구 결과가 웨어러블 전자기기 산업의 본격적인 시장화에 큰 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단순한 기술개발 차원이 아닌, 세계 최초의 뿌리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연구입니다. 이번 연구는 개발한 뿌리기술을 토대로 세계 최초의 응용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해당 기술을 완전히 상업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회로의 상처 크기에 따른 빛의 세기와 시간, 혹은 온도 및 습도 등 여러 가지 외부 환경으로부터 신뢰성을 가질 수 있도록 수차례 확인과 개선이 필요하죠. 앞으로 본 기술을 웨어러블 전자기기 뿐 아니라 기존의 전자기기에까지 확장하고 싶습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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