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질병으로 불리는 결핵. 보통 ‘결핵’ 이라고 하면 1960~70년대에나 발병했을 법한, 이미 잊혀진 질환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세계 인구의 1/3 이상이 결핵균 잠복상태에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800~900만 명의 결핵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 중 사망자는 200만 명 이상이다. 이처럼 결핵은 여전히 국가적인 보건문제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상태다.
현재 국내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은 OECD 가입국 중 1위인 것으로 전해진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고교생의 결핵 집단 발병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인 보건 안전망 확충이 시급한 실정이다.
결핵 치료를 위한 항결핵제가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나 약제 내성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현존하는 모든 항결핵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극내성 결핵균(XDR)까지 출현하고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결핵을 일으키는 결핵균은 숙주 세포 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 숙주 세포의 항균 활성 기전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향상시키는 신개념의 치료제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항결핵제 내성 문제, 실마리 될 연구
국내 연구진이 자가포식을 활성화 함으로써 결핵균을 사멸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조은경 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주도로 양철수 박사와 김좌진 박사 등이 연구를 진행해 자가포식 활성화를 통한 결핵균 제거기전을 규명했다. 해당 연구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자가포식 분야 국제학술지인 ‘오토파지(Autophagy)’ 지 5월호 게재 되기도 했다.
자가포식(Autophagy)이란 용어 그대로 자기 살을 먹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세포가 자기 단백질 덩어리나 소기관을 파괴해 생명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기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전이 잘못 조절되면 각종 인체면역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기능으로 언급된다.
“저희팀의 연구는 최근 개념이 정립되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자가포식 기전을 통해 결핵균을 사멸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연구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기존 항결핵제의 내성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기존 항균제가 결핵균 자체를 표적으로 삼았다며 저희팀의 연구는 결핵균이 숨어지내는 대식세포의 자가포식 기능을 증가시켜 균을 사멸시킵니다. 자가포식이란 자기 살을 먹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세포가 자기 단백질 덩어리나 소기관을 파괴해 생명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기전입니다. 잘못 조절되면 각종 인체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죠. 본 연구를 통해 자가포식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약제를 결핵균에 감염된 대식세포에 처리하면 자가포식낭에 결핵균이 잡히게 되고 결국 리소좀으로 끌려가 균을 사멸시키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결핵은 초기치료에 실패하면 내성이 생길 수 있는 위험이 높다. 초기에는 다양한 약제를 동시에 쓰게 되는데, 이 과정이 자칫 잘못되면 여러 약제에 동시에 내성을 갖는 다제내성 결핵균이 출현할 수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치료 과정 가운데 난치감염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조은경 교수는 “결핵균을 직접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핵균에 감염된 세포의 방어기전을 이해하고 이를 강화하는 보다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결핵 초기에는 이소니아지드, 리팜핀, 피라지나마이드 등 여러 약제를 함께 복용하는 다약제 요법으로 최소한 6개월 이상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데 환자분들이 약을 꾸준히 드시지 않기 때문에 초기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료에 어려움을 겪으면 환자 몸 속에서 결핵균은 약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돌연변이를 만들게 되고, 약제내성 돌연변이를 갖는 내성균에 의해 결핵은 재발하기도 해요. 다른 사람에게 내성균을 전염시키기도 하고요. 일단 약제 내성균에 감염되거나 재발되면 2차 약제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1차 약제보다 부작용도 많을 뿐 아니라 적어도 1년, 혹은 2년간 사용해야 해요. 필요한 경우 수술까지도 고려해야 하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극내성 결핵이라고 해서 현존하는 많은 약제에 거의 모두 저항하는 균까지 출현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사실 자가포식을 통해 결핵을 치료하고자 했던 시도는 기존에도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자가포식 유발에 흔히 사용되는 라파마이신(rapamycin) 같은 약제사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핵균 치료제로 응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핵균은 그 특징상 다른 세균과는 달리 사람의 면역세포 속에 숨어서 만성감염을 일으키고 면역계와 자가포식 기전에 저항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연구에서도 결핵감염 혹은 치료 과정에서 자가포식 현상을 강제적으로 일으키면 결핵균이 사멸될 수 있다는 개념은 밝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가포식 유발에 흔히 사용되는 라파마이신(rapamycin) 같은 약제는 면역억제제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결핵균 치료제로 사용하기 어려워요. 생체의 면역반응을 해치지 않으면서 직접적인 자가포식 활성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약제를 이용해서 결핵균 치료를 시도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죠.”
팀워크가 이뤄낸 연구성과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은경 교수팀은 팀 내 협동적인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어떤 연구도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한 것이다. 활발한 소통의 분위기 속에서 조 교수팀은 대사조절 단백질(AMPK)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화합물이 세포 면역반응의 일종인 자가포식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결핵균에 감염된 생쥐의 대식세포(우리 몸의 선천면역을 구성하는 세포로 일차면역 방어를 담당하며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탐식한다)에 해당 화합물을 처리하면 강력한 자가포식을 통해 감염된 결핵균이 제거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반대로 자가포식 유전자를 없애 자가포식 활성을 차단하면 결핵균 자가포식이 현저히 감소했다.
‘AMPK(AMP-activated protein Kinase)’ 란 세포 내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고 미토콘드리아 기능 활성화에 관여하는 인산화 효소를 의미한다. 세포 내 AMP 수준 감소에 반응해 에너지 생성을 활성화시키고, 동시에 에너지 소비 과정을 억제한다. 조은경 교수는 “이번 연구는 숙주세포가 AMPK 를 통해 직접 자가포식을 활성화시켜 약제 내성과 무관하게 결핵균을 사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연구의 의의를 전했다.
“저희팀은 특히 AMPK 활성을 일으키는 약물에 관심을 갖고 스크리닝을 진행했어요. 그 중 결핵균 사멸효과가 뚜렷한 화합물을 찾게 됐죠. 기존에 밝혀진 약제들이 여러 가지 한계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갖고 있는 세포기반 스크리닝 시스템을 이용해 수많은 약제들의 효과를 꾸준히 관찰습니다. 그 결과 이번 연구성과를 얻을 수 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조은경 교수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난 20년 동안 조 교수는 결핵에 대한 숙주 방어기전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다. 그런 가운데 최근 6~7년 동안 결핵분야에서 자가포식 활성과 기전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를 수행했으며, 특히 지난 2009년에는 비타민D에 의한 자가포식 현상으로 결핵균이 사멸된다는 연구내용을 ‘셀(Cell)’ 자매지인 ‘셀 호스트 앤 마이크로브(Cell Host & Microbe)’에 발표한 후 꾸준히 후속연구를 수행했다.
“기존의 결핵 치료제가 효과적으로 작용하려면 균에 감염된 대식세포의 자가포식 활성이 꼭 필요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갖게 됐어요. 지난 2009년부터 이러한 생각을 했죠. 선행연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실질적인 응용은 이번 연구를 통해 실현한 거예요.”
다양한 아이디어와 끈끈한 팀워크가 이룬 결과가 나오기까지, 연구팀은 많은 어려움과 난점에 부딪혀야 했다. 조은경 교수는 “중요한 많은 연구가 그렇듯이 이번 연구도 함께 참여하고 기여해 준 공동연구자들의 도움과 협력이 없었다면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며 연구성과의 공을 공동 연구자들에게 돌렸다. 조 교수는 “이번 연구를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논문을 수정, 보완하는 과정 중 대식세포와 마우스 생체 내에서 자가포식을 실제로 활성화 시키는지 결정적인 단서가 필요했다. 김진만 교수님 연구팀과 공동연구자들이 그러한 단서를 찾는 과정 가운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덧붙였다.
“결핵이 재발하거나 내성인 경우, 수년간 2차 약제들을 복용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치료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저희 연구는 약제 내성과는 무관하게 숙주세포의 자가포식 기능을 활성화시켜 결핵균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잠복결핵에 감염돼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요. 여기에 더해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는 세포 내에서 면역계에 저항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가포식을 활성화 시키는 저희팀의 방법은 앞으로 결핵 치료 외에도 세포 내 다양한 감염균을 는데 굉장히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다제내성 결핵환자는 약 1,800여 명이며 전세계적으로는 약 31만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제내성 결핵은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죠. 저희팀의 연구가 이러한 다제내성 결핵 치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조은경 교수는 앞으로 임상시험 네트워크 구축과 협력을 이어감으로써 향후 결핵 치료법 개선이나 개발에 적극적으로 해당 연구결과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결핵치료에 획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약제 개발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보고한 화합물은 현재 일차적 동물실험까지 마친 상태입니다. 실제로 결핵치료에 병합해 사용하거나 내성 결핵균에 대한 효과를 확인해 실용화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부분이에요. 실제로 당뇨병이나 심장허혈손상 등에 해당 약제 효과가 보고된 적은 있지만 다제내성결핵이나 난치감염병에서 약제의 효과에 대한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 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임상시험 네트워크 구축과 협력을 통해 향후 결핵 치료법 개선이나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6-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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