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0,2017

유전질환, 사람 따라 증상 다른 이유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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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7일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수전 린드퀴스트가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화이트헤드생의학연구소 연구원이면서 MIT의 교수이기도 한 린드퀴스트는 샤프론단백질 분야를 개척해 유명해졌다. 샤프론(chaperone)단백질은 리보솜에서 막 만들어진, 아미노산 수백 개로 이뤄진 사슬이 올바로 된 입체 구조로 접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린드퀴스트는 단백질 접힘을 연구하다 열충격단백질(heat shock protein. 줄여서 HSP)에 주목하게 됐다. 세포에 있는 단백질은 갑작스레 온도가 올라가면(열충격) 변형돼 기능을 잃을 수 있는데, 이때 단백질의 구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게 밝혀지면서 열충격단백질이란 이름을 얻었다.

훗날 HSP는 열뿐 아니라 다양한 스트레스로부터 단백질이 변형되는 건 막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샤프론단백질이라는 더 포괄적인 이름을 얻게 됐다.

린드퀴스트는 HSP90이라는 샤프론단백질을 집중 연구했는데, 특히 1998년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유명하다. 초파리에서 HSP90에 문제가 생기면 기형인 개체들이 나오는데, 린드퀴스트는 여기에 어떤 패턴이 있음을 간파했다.

즉 임의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변이가 드러난 것처럼 보였다. 린드퀴스트는 우리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는 초파리들은 실제로 다양한 변이가 있지만 HSP90의 작용으로 변이가 드러나지 못한 상태인데, 이 단백질이 고장 나면서 고삐가 풀려 여러 형태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2013년 린드퀴스트는 하버드대 클리포드 타빈 교수와 함께 동굴물고기 진화에도 HSP90가 관여함을 밝혔다. 중미의 작은 민물고기 아스티아낙스 멕시카누스(Astyanax mexicanus)는 보통 강에 살지만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동굴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들 동굴물고기는 눈이 완전히 퇴화돼 있다.

연구자들은 어느 날 우연히 강에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로 들어온 아스티아낙스에서 급격한 환경변화로 숨겨진 변이가 발현돼 눈알 크기가 제각각이 개체들이 나왔다고 가정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굴 안에서는 눈이 필요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구조를 만드느라 부족한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눈알이 작은 개체가 선호됐고 이런 과정이 쌓이면서 결국 눈이 완전히 퇴화한 오늘날의 동굴물고기가 나타났다는 것.

연구자들은 강물에 비해 이온이 턱없이 부족한 동굴의 물이라는 환경 스트레스가 HSP90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결과 이런 일이 일어났음을 증명했다. (자세한 내용은 과학에세이 58 ‘동굴 물고기가 눈을 잃어버린 사연’ 참고)

수전 린드퀴스트 (Susan Linquist, 1949.6.5~2016.10.27). ⓒ MIT

수전 린드퀴스트 (Susan Linquist, 1949.6.5~2016.10.27). ⓒ MIT

작고한지 네 달 만에 유고 논문 실려

학술지 ‘셀’ 2월 16일 온라인판에는 린드퀴스트의 유작인 논문이 실렸다. 게재 이력을 보면 사망 두 달 전인 지난해 8월 31일 논문을 제출했고 한 차례 수정을 거쳐 사망한 지 세 달이 지난 올해 1월 19일 게재가 확정됐다.

역시 HSP90에 대한 논문으로, 상당수의 유전질환에서 사람에 따라 증상의 경중에 차이가 나는 현상을 이 샤프론단백질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이 논문을 소개한다.

초파리와 동굴물고기 등 동물연구를 통해 HSP90이 돌연변이의 영향을 줄이는 작용을 하고 환경이 나빠져 이런 완충역할을 할 수 없을 때 돌연변이가 표현형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사람을 대상으로는 아직 증명이 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유전질환에 관여하는 1500여 가지 돌연변이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즉 돌연변이 결과 만들어진 변이 단백질이 HSP70에 더 잘 결합하는 경우는 유전병의 증상이 심각한 경우가 많은 반면 HSP90에 더 잘 결합하는 경우는 증상이 대체로 덜하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컸다.

HSP70은 또 다른 샤프론단백질로 HSP90과는 기능이 다르다. 즉 HSP70은 리보솜에서 만들어지는 아미노산 사슬이 단백질로 접히는 과정 초기에 관여하는 반면 HSP90은 어느 정도 접힌 뒤에 관여한다. HSP70은 돌연변이 단백질이 어느 정도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완충역할까지는 하지 못한다. 즉 변이 단백질이 HSP70과 더 친해 HSP90이 접근할 수 없을 경우 단백질이 기능을 못하게 돼 유전질환의 증상이 심하다는 말이다.

한편 HSP90과 더 친한 변이 단백질로 인한 유전질환의 경우 전반적으로 증상이 덜하면서도 개인차가 큰 이유는 HSP90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트레스의 유무에 따른 결과일 수 있다.

즉 아스티아낙스 멕시카누스가 이온 농도가 낮은 물에서 자랄 경우 HSP90이 기능을 못해 돌연변이로 인한 표현형이 드러나듯이, 사람에서도 HSP90을 무력화시키는 스트레스가 작용할 경우 변이로 인한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판코니빈혈(Panconi anemia)이라는 질환을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세포를 대상으로 이 가정을 검증했다. 많은 돌연변이가 판코니빈혈로 귀결되는데 그 가운데 변이 단백질이 HSP90과 친한 경우는 대체로 증상이 심각하지 않다. 세포차원에서는 DNA에 독성이 있는 항암제에 대한 생존율을 증상의 척도로 이용하는데, 정상 세포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세포를 37도가 아니라 40도에서 배양하면, 즉 열 스트레스를 주면 정상 세포의 생존율은 변화가 없지만 변이 세포는 생존율이 뚝 떨어진다. 즉 HSP90이 제 기능을 못했다는 말이다.

비록 선천적인 유전자결함을 지니고 있더라도 HSP90이 변이 단백질이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완충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한, 즉 HSP90에 악영향을 주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번 발견은 수전 린드퀴스트가 우리들에게 남겨 준 마지막 선물 아닐까.

변이 단백질로 인한 유전질환의 증상 경중에 샤프론단백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변이 단백질이 HSP70과 더 친할 경우 정상 기능을 못해 증상이 심한 경우가 많다(왼쪽). 변이 단백질이 HSP90과 더 친할 경우 어느 정도 기능을 유지해 병의 증상이 대체로 약하다. 그러나 개인차가 있는데 HSP90을 무력화하는 스트레스를 겪을 경우 완충효과가 사라져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오른쪽).  ⓒ 셀

변이 단백질로 인한 유전질환의 증상 경중에 샤프론단백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변이 단백질이 HSP70과 더 친할 경우 정상 기능을 못해 증상이 심한 경우가 많다(왼쪽). 변이 단백질이 HSP90과 더 친할 경우 어느 정도 기능을 유지해 병의 증상이 대체로 약하다. 그러나 개인차가 있는데 HSP90을 무력화하는 스트레스를 겪을 경우 완충효과가 사라져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이다(오른쪽). ⓒ 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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