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과학기술 혁명을 이끈 유럽이 선두주자 자리를 되찾기 위해 강력한 혁신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지난 10월 16일부터 17일까지 양일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유럽혁신기술연구소(EIT) 혁신포럼’이 그 좋은 사례다.
2020년 이후의 혁신 전략에 대한 토론과 유럽의 미래에 대한 기초설계 필요성에 대한 강연 및 포럼이 이어진 이 행사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2017년 EIT 혁신상 수상식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수상 후보로 선발된 20개의 혁신 프로젝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유럽연합(EU)에서 추진 중인 혁신에 대한 트렌드와 창의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의 수상 후보들은 도전, 벤처, 혁신이라는 주제에 맞춰 각 그룹이 구성됐는데 디지털 기술, 지속가능한 에너지, 건강, 기후변화, 신소재 등의 혁신분야 프로젝트들이 제출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각각의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전혀 활용되지 않던 새로운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 포럼을 개최한 유럽혁신기술연구소(EIT)는 유럽 28개국 공동의 혁신을 강하게 추진하기 위해 201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설립된 EU 산하의 독립기구다. 연간 약 3억2000만 유로(41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집행하는데 신소재, 도시화, 디지털 신기술, 혁신적 에너지, 헬스케어, 기후변화 같은 분야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배정한다.
EU 내 기업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 지원 및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기업뿐만 아니라 교육기관 및 연구소 간의 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도 맡고 있다. 이에 따라 800여 개 유럽 내 연구기관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으며, 유럽뿐 아니라 미국, 이스라엘 등의 국가와도 협력 중이다.
열린 혁신 위해 유럽혁신의회 신설
세계 일류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는 EIT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EU 연구 혁신 프로젝트인 ‘호라이즌(Horizon) 2020’이 자리 잡고 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총 7년간 770억 유로(약 98조 6000억원)가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 수식어가 붙는 연구를 주도하는 EU의 대표적인 R&D 지원사업이다.
호라이즌 2020의 가장 큰 특징은 ‘열린 혁신’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기업가, 연구자, 투자자, 사용자, 시민단체 등 모두가 협업할 수 있으며, 참가국 제한도 없이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리 퀴리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비유럽 국가 연구자들이 유럽에서 연구를 하거나 유럽 연구자가 비유럽 국가로 진출하는 것도 지원한다. 벌써 1만6000명의 비유럽 국가 연구자들이 유럽에서 연구를 시작했는데, 2020년에는 3500개 이상의 비유럽 국가 소속 기관이 이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월 말 EU는 내년부터 2020년까지 앞으로 3년간 호라이즌 2020의 마지막 사업계획서를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27억 유로를 편성해 유럽혁신의회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시장 창출을 위한 혁신을 지원하고 안보, 이민 등의 정치적 우선순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또 연구과정의 지식 공유를 목표로 하는 ‘오픈 사이언스’의 장려도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유럽의 변화상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는 이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급부상 중이다. 파리 지역의 스타트업은 약 1만개로서, 유럽 최대의 스타트업 에코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파리 지역에 입주를 신청한 해외 번체기업 수도 31개로서,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그 비결은 프랑스 정부가 4차산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벤처산업 육성 정책에 숨어 있다. 2012년부터 해외 스타트업 유치 및 지원 프로그램인 ‘프렌치테크’를 추진 중인 프랑스는 지난 6년간 470억 유로에 이어 올해 100억 유로 규모의 미래산업 지원 펀드를 조성했다.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한 파리
프렌치테크 프로그램은 팀당 4만5000유로 지원 및 장기체류 비자 발급, 사무실 사용, 스타트업 성공을 위한 밀착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프랑스는 창업 기간이 4.5일로 유럽에서도 가장 짧은 편이다. 특히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외국인 고용제한 정책 때문에 실리콘밸리로 진출하려던 해외 기업들의 프랑스 이전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혁신 선도국가로서 특히 중소기업 혁신에 관심이 많은 네덜란드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혁신을 통한 중소기업 성장을 주요 목표로 하는 네덜란드 상공회의소는 매년 ‘중소기업 혁신 톱 100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는 전문가들에 의해 선정된 혁신적인 중소기업의 상품 및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자리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무역관에 의하면, 올해 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은 친환경 유모차를 생산하는 그린톰 오퍼레이션스 사다. 재활용 음료수병에서 뽑은 최고급 무독성 섬유 및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이 유모차는 제품 운송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고려해 인근 지역에서 구하는 소재로만 생산된다.
보통 하나의 유모차를 생산하는 데 31~74개의 음료수병이 사용되는데,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각의 제품 모델 생산에 사용된 플라스틱 병의 개수가 명시돼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첨단기술 관련 업체다. 하지만 굳이 첨단기술이 아니더라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중소기업에게도 문호가 개방돼 있다. 지난해의 경우 유기농 면 생리대를 생산하는 기업과 자가 치유 콘크리트를 개발한 기업 등이 상위로 입상했다.
네덜란드 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중소기업의 약 85%가 혁신을 통해 수익 창출을 경험했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혁신을 통해 65%는 고용 창출, 68%는 순익 증가, 58%는 국제 비즈니스 활동 증가를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7-11-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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