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오후 2시 20분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근처의 첨단의료센터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수술이 실시됐다. 코베시 메디컬센터 종합병원의 쿠리모토 야스오 박사가 이끄는 3명의 의료진이 노인성 황반변성을 앓고 있는 70대 여성의 한쪽 눈에 1.3㎜×3.0㎜ 크기의 망막색소상피 세포를 이식한 것.
그 망막색소상피 세포는 바로 환자 본인의 피부세포를 채취하여 유도만능줄기세포(iPS)로 전환시킨 다음 망막색소상피로 분화해 얇은 종이 모양으로 배양한 것이다. 즉, 이 수술은 iPS 기술의 임상적 가치를 증명하는 세계 최초의 수술이었다.
이번 임상시험에 대한 전 세계 과학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잔 로링 박사는 “놀랍고 흥분된다. 나는 지금껏 이 소식을 손꼽아 기다려왔다”고 밝혔다. 로링 박사 역시 iPS 세포를 이용해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줄기세포 전문가이다.
줄기세포란 아직 분화가 결정되지 않은 미분화 세포지만 우리 몸의 근육이나 뼈, 내장, 뇌, 피부 등 신체 내에 있는 모든 세포나 조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분화능력을 지닌 세포를 말한다. 그런데 iPS는 수정란을 이용한 배아줄기세포와는 달리 다 자란 체세포를 이용해 마치 시계를 되돌리듯 역분화시켜 만능줄기세포로 이용하게끔 만든 것이다.
쥐의 성숙된 세포를 iPS로 분화시키는 방법을 발견한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박사는 그 공로로 지난 2012년 복제 분야에서 최초로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인류 최초로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언 월머트 박사나 최초로 수정란을 이용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든 제임스 토머스 박사 등은 매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번번이 탈락되곤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 윤리적 논란 때문이다. iPS의 경우 다 자란 체세포에다 특정 유전자를 집어넣는 조작만으로 배아줄기세포처럼 모든 신체조직을 형성할 수 있어 그런 윤리적 논란을 비켜갈 수 있었다. 또한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하므로 면역거부 반응을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고,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술 전에 유전적 안전성 실험 추가 실행
하지만 iPS의 불완전성과 위험성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iPS는 분화된 세포로부터 만들어지므로 돌연변이 및 기타 유전적 결함들이 누적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체의 면역체계가 iPS 세포에서 유래한 새 조직을 공격할 수 있으며, 이식된 조직 속에 만능 상태의 세포가 일부 남아 있을 경우 암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혈구세포로부터 유도된 iPS는 종양을 형성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RIKEN 산하 발생생물학센터(CDB)의 타카하시 마사요 박사는 그 같은 우려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iPS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수술 전에 유전적 안전성 실험을 추가로 수행했다고 밝혔다. 원숭이와 실험쥐 등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 연구에서 iPS 세포는 이식 거부반응을 일으키거나 종양을 형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타카하시 마사요 박사는 iPS 세포를 이용해 노인성 황반변성을 치료하는 방안을 연구해온 과학자로서, 이 수술의 원리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노인성 황반변성은 눈 안에 생긴 불필요한 혈관이 터져서 출혈과 함께 부종을 일으키고 심하면 실명할 수도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타카하시 마사요 박사는 지난해 7월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성체세포를 채취해도 된다는 승인을 얻은 후 노인성 황반변성으로 망막이 손상된 70대 여성에게서 피부세포를 채취했다. 그 피부세포를 역분화시켜 iPS 세포로 만든 다음 다시 망막조직으로 분화하는 데 성공한 후 후생노동성에 보고해 지난 9월 8일 마침내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냈다. 그리고 불과 4일 후 그 망막 조직을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시행한 것.
현재까지 수술을 한 환자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타카하시 박사의 임상시험이 성공한다면 미국 FDA나 유럽 식약청(EMA) 등의 보건의료기관들이 앞으로 iPS 치료에 대한 승인을 내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국립 눈연구소에서도 iPS 세포를 이용한 황반변성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는데 2017년 임상시험을 실시한다는 목표 하에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iPS로 파킨슨병의 치료법을 연구 중인 스크립스연구소의 잔 로링 박사는 FDA의 승인이 떨어지는 대로 임상시험에 착수할 예정이며, iPS를 처음 만들어낸 야마나카 신야 박사도 iPS를 임상에 적용하는 파킨슨병 치료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이번 임상시험에서 환자에게 중대한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iPS 연구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iPS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임상시험에 대한 승인이 모두 보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소 위기에 놓인 CDB의 구원투수 될까
한편, 이번 임상시험 소식은 최근 위기에 빠져 있는 RIKEN 산하 발생생물학센터(CDB)에 커다란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14년 전통의 CDB가 위기에 빠지게 된 발단은 올해 1월 30일 네이처에 발표된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의 ‘자극 촉발 만능세포(STAP)’에 관한 논문 때문이다.
쥐의 비장에서 채취한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를 시큼한 주스 정도의 약산성 용액에 30분 정도 담갔다가 배양하면 신체의 어떤 조직으로도 변할 수 있는 만능세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혁명적인 연구결과라는 절찬이 이어진 것.
그러나 오보카타 박사의 주장은 곧 반론에 부딪쳤으며, 지난 4월 1일 RIKEN의 조사위원회는 오보카타의 부정행위를 시인하는 발표를 했다. 결국 문제의 논문은 7월 2일자로 철회되었으며, 한 달 후 오보카타의 지도교수이자 논문의 공저자인 사사이 요시키 박사가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 후 RIKEN은 CDB의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고 이름도 바꾼 다음 새로운 운영진의 관리 하에 두겠다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 개인의 잘못으로 혁신적 연구의 산실인 CDB를 불필요하게 희생시켜려 한다는 의견이 전 세계로부터 빗발치고 있다.
만약 iPS를 이용한 이번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오보카타로 인해 초상집이 된 CDB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수 있으며, 또한 iPS를 이용한 새로운 임상시험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 저작권자 2014-10-10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