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수용성(Technological Readiness)'이라는 용어가 있다. 국가가 산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에서 개발된 기술을 흡수·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국가경쟁력을 측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4~2015 세계 경쟁력 보고서(The Global Competiveness Report 2014~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술 수용성’ 부문 순위는 144개국 중 25위다. 전년과 비교해 3단계 하락한 것이다.
‘기술 수용성’ 순위를 결정하는 9개 지표 중 1개 지표가 상승했을 뿐 6개 지표가 하락했다. ‘최신 기술의 활용 정도’는 30위, ‘신기술을 흡수하는데 있어 기업의 적극성’은 28위로 나타났다.
통신 경쟁력 강세, 사회적 인프라 약세
주목할 것은 유일하게 순위가 상승한 ‘외국인 직접 투자와 기술이전’도 순위가 73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투자 유치, 기술 이전을 받는데 얼마나 소홀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반면 ‘인터넷 사용자 비중’은 15위, ‘인구 백 명당 고정 광대역 가입자 수’는 5위를 기록했다. ‘신기술 흡수 능력’, ‘최신기술 활용도’ 등의 낮은 순위를 인터넷 보급율, 광대역 가입자 수 등 ICT 인프라가 보완하고 있는 양상이다.
기술 경쟁력을 측정하는 또 다른 지표로 ‘혁신(Innovation)'이 있다. 말 그래도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능력을 뜻한다. 우리나라가 기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역량 중의 하나다.
WEF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혁신’ 부문 순위는 전년과 동일한 수준인 17위로 나타났다. ‘혁신’ 경쟁력을 구성하고 있는 8개 지표 중 2개 지표가 상승한 반면 4개 지표는 하락했다.
‘기업의 혁신 역량’은 24위, ‘연구기관의 질적 수준’은 27위, ‘기업의 R&D투자 적극성’은 20위, ‘산·학 연구협력 정도’는 26위, ‘정부의 고급 기술제품 구매 적극성’은 20위, ‘기술인력 확보 정도’는 42위를 기록했다.
지식재산과 관련된 ‘인구 100만 명 당 PCT 국제출원 건수’는 비교적 높은 순위인 8위를 기록했다. 반면 지식재산 인프라인 ‘지식재산권 보호’ 지표에 있어서는 68위를 기록했다. 전년과 비교해 무려 20단계 하락한 순위다.
“기업가정신 부족이 기술 혁신 막아”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이끌어가는 것은 대기업들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매월 ‘글로벌 혁신역량’ 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3월에 발표한 기업 부문 지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R&D 투자 세계 2500위 내에 포함된 기업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840개로 가장 많았고, 일본 387개, 중국 199개, 영국 140개, 독일 138개, 프랑스 89개, 한국80개 순으로 집계됐다.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비 역시 미국이 가장 많았다. 3167억 달러에 달했으며, 중국이 2578억 달러로 2위, 한국이 541억 달러로 5위를 기록했다.
PCT 국제출원 수도 미국이 5만1600 건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이 4만4000여 건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한국은 1만2000여 건으로 5위를 기록했다. 기업의 국제출원 비중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일본으로 94.5%에 달했다. 반면 한국은 67.3%에 불과했다.
나머지 특허 출원을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수행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기업의 혁신역량이다. 혁신 역량이 가장 높은 나라는 5.9점을 획득한 스위스였다. 한국은 4.7점으로 24위에 그쳤다.
우리나라 기술 수준에 대한 조사 결과는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4 세계경쟁력 연감’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60개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23개 지표를 조사한 '기술(technology) 인프라' 조사 결과 평가 지수는 세계 8위였다.
GDP 대비 통신 분야 투자 비중(8위), 인구 1000명당 유선전화 회선 수(3위), 통신 등을 이용한 사람·접속 가능 정도(11위), 사용 중인 컴퓨터 수의 세계 점유율(11위), 인구 1000명 당 인터넷 가능자 수(15위) 등 통신 관련 인프라 순위는 전체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했다.
반면 기업간 기술협력 정도(39위), 수준급 엔지니어 공급 정도(28위), 기술개발 자금의 충분성(42위), 혁신 지원정도(30위), 법적 환경이 기술개발 및 응용을 지원하는 정도(34위) 등 사회적 인프라 부문에서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기술은 그동안 한국의 산업을 짊어지고 온 주역이다. 기술개발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기술이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현대경제연구원은 ‘한·중 과학기술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절대적 지표로 본 중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높아져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R&D 투자 규모는 2010년 기준 1043억달러로, 한국(380억달러)의 3배에 육박했다. 중국은 1995~2010년 동안 연평균 24%씩 증가해 한국 증가율보다 3배나 높았다.
특허출원 건수도 39만건으로 한국(17만건)의 2배, 국제학술논문(SCI)급 논문은 14만편으로 4배에 달했다. 한국의 2005년 수준을 100으로 해 한·중 간 과학기술 경쟁력을 자체 평가한 결과 절대적 지표에서 중국은 409로 한국(151)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10년 현재 전자정보통신, 의료, 바이오 등 7대 주요 중점 과학기술의 283개 분야 중 9%인 26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의 기술 수준을 추월한 상태”라며, 한국 기업들이 첨단 기술 개발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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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4-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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