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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4-05-27

우리의 사랑이 또 존재한다고? 평행우주론 소재 연극 ‘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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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외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평행우주론’이다. 이 이론이 처음 나왔을 당시는 말도 안 되는 추측이라며 많은 사람들의 야유를 받았지만 이제는 저명한 과학자들 역시 이러한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평행우주론이란 쉽게 이야기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우주 속 다른 세계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이론이다.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에 의거해, 혹은 팽창이론과 다중 우주에 근거해 평행우주이론을 설명한다.

의거하는 논리는 모두 다르지만 요점은 하나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이 우주는 매우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무한히 크고 거대한 우주 속에 있다면 그 곳 안에서 원자와 분자의 배열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반복된다. 즉 이들 이론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우주 속 다른 세계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평행우주론을 이용해 남녀의 사랑을 풀어낸 연극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영국의 젊은 작가 닉 페인(Nick Payne)의 ‘별무리(Constellations)’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 작품은 별처럼 무수히 많은 사랑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은 과학이론으로부터 얻은 작가의 영감에서 시작됐다.

연극 '별무리'는 평행우주이론에 입각해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연극 '별무리'는 평행우주이론에 입각해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예술의전당

작품은 양봉업자 롤란드(Roland)와 천체물리학자 마리안(Marianne)의 대화를 여러 형태로 되풀이하면서, 둘 사이에 로맨스가 이뤄지는 과정을 천체물리학의 평행우주이론과 접목해 보여주고 있다. 사랑에 관한 많은 연극이 있지만 ‘별무리’는 하나의 내러티브로만 전개되지 않기에 기존의 연극과 다른 발상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영국 로열코트 극단으로부터 신작 의뢰를 받은 직후인 2010년, 심장질환을 앓던 아버지가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돼 숨을 거두면서다.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작가는 어느 날 우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된다. 전(前)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였고 현재 미국 코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교수의 3부작 다큐멘터리 ‘우아한 우주(Elegant Universe)’다. 이후 페인은 양자 평행우주이론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녀는 ‘우리가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 우주는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연극 ‘별무리’라는 작품을 집필하는 데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다.

다큐멘터리를 본 후 그녀가 받은 느낌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대본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내레이션이 그대로 인용돼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대본 첫 장에는  ‘환원주의적 세계관은 으스스하고 인간미가 없다(브라이언 그린, ‘우아한 우주’, 17쪽)’라고 쓰여 있으며 이외에도 ‘과학과 마술의 혼동은 처방 없는 질환의 일종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의 삶에 잘 부합한다(존 그레이, ‘불멸 위원회’, 109쪽)’, ‘우리의 우주가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상당한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다(피터 에트킨스, ‘존재에 대하여’, 19쪽)’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더불어 대본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다른 우주를 의미한다고 표기돼 있다.

작품에는 두 배우만 등장하나 평행우주이론을 접목한 만큼 실제로 이들은 각각 다른 인물인 셈이다. 수많은 장면 속에서 배우들은 매 순간 다른 존재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시각, 우주 속 다른 공간 안에 존재하는 연인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객이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작품을 접할 경우 10분 동안은 머리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동일한 장면이 두 세 번에 걸쳐 반복되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이 가까운 과거로 여러 번 시간 여행을 하듯, 이 작품도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연극 '별무리'는 평행우주이론에 입각해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연극 '별무리'는 평행우주이론에 입각해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예술의 전당

한 주제의 대화가 여러 번 반복되는 만큼 극 중에는 암전도 많다. 때문에 초반에는 극을 관람하는 데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꺼졌다 켜지는 조명이 무수한 우주 속에서 점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보다 자연스럽게 연극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여느 연인의 대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평행우주이론을 접목한 작품이라고 해서 어렵게 느낄 수 있으나 남녀의 사랑을 색다른 형태로 풀었다고 받아들이면 보다 여유 있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별무리’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연인은 헤어지고 또 다른 연인은 어려움을 극복한다. 서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연인은 싸우지만 다른 연인은 서로를 배려한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모습이 있다. 더불어 그러한 사랑을 다른 각도에서 언급하는 작가의 발상 역시 매우 신선하다.

무대는 전체적으로 거대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어떤 행성을 연상케 한다. 작은 돔 형의 바닥 주위로 많은 돌들이 놓여있다. 그 뿐이다. 단순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우주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다. 연출을 맡은 류주현 연출은 “우주의 신비로움이 나타나길 원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무대”라고 이야기 했다.

연극 <별무리>는 지난 2012년 영국 로열코트 극장(Royal Court Theater)에서 초연된 후 당시 영국 비평가들과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더불어 그 해 영국 3대 연극상 중 하나인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Evening Standard Award)’의 ‘최고 연극상(The Winner of the Best Play)’을 수상, 29세의 닉 페인은 최연소 수상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젊은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공연은 오는 6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계속된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5-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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