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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노벨상 축제에 동참하려면 [과학의달 특별기고] 이우일(서울대 부총장, 과실연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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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노벨상은 우리나라를 비껴갔다. 올해는 혹시 하고 기대해 보지만 아직은 설익은 기대가 아닌가 싶다. 작년에 물리학상 수상자를 셋이나 배출한 이웃나라 일본은 축제 분위기이다.

노벨상의 진수는 아무래도 과학 분야의 상들이다. 일본은 벌써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이 가운데 16명이 과학 분야 수상자이다. 일본은 내심 문학상도 기대를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인문과 과학, 즉 문·이과를 통틀어 일본 학계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일본은 2000년대 이후 한 해가 멀다 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우리는 노벨상으로 경제와 산업 발전에 걸맞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노벨상 수상만을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다양한 투자가 있었고 연구비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올해만 해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18조원을 훌쩍 넘었고, 이 중 기초과학 예산은 2017년까지 40%로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계속 예산을 쏟아 붓는데도 노벨상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우리보다 일본이 훨씬 더 창의적인가? 개인이나 사회의 창의성은 우리가 일본보다 낫다고 흔히 얘기되고 있다.

지난 해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었다. 대학 실험실에서 황당한(?) 아이디어를 수십 년간 추구할 수 있었던 일본 특유의 ‘R&D 지원시스템’의 우수성을 입증한 것이다.

이우일(서울대 부총장, 과실연 상임대표) ⓒ ScienceTimes
이우일(서울대 부총장, 과실연 상임대표) ⓒ ScienceTimes

유행 따라 연구비 지원하는 시스템 바꿔야

우리나라 R&D 지원시스템은 대체로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정부 재원을 투입하는 모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유행에 따른 연구를 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확보할 수 없는 구조이다. 그 유행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수년을 넘기기 어려워 연구주제를 수시로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게다가 해마다 과제의 성과를 측정한 후 ‘계속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과 평가 기준의 대부분은 국제학술지 논문 수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겉으로만 보면, 수시로 주제를 바꿔 연구하고 해마다 국제학술지 논문을 만들어내는 ‘슈퍼맨’들이다. 또 한 가지 주제로 3년 정도 연구했다면 이미 논문도 내고 과제가 ‘성공’했으니, 더 이상 그 주제로는 우리나라에서 연구비를 받기 어렵다. 과연 일본의 과학자들이 우리나라 같은 시스템에서 창의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을까?

그 동안 국제학술회의에 다니면서 잘 알게 된 일본인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대부분 20~30년 전에 수행하던 주제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물론 매번 약간씩 달라지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한 가지 주제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처음에는 딱해 보였다. 그렇지만 긴 세월 동안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하여 생기는 경험과 데이터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어, 결국 그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경우들을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남들이 한 것을 따라만 해서는 아무리 그 논문의 인용 수가 많더라도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노벨상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사람에게 주어진다. 작년 일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인 중 하나인 아카사카 교수는 아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청색 LED 개발에 20년 이상 매달렸다. 아카사카 교수의 학생이었던 아마노 교수 역시 수천 번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결국 성공을 이루어냈다.

우리나라 같으면 연구비나 학생 지원이 가능했을까? 아니 교수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일본이 2000년대 들어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것은 이렇게 기다려주는 연구비 지원시스템이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풀뿌리’ 기초연구 지원 늘리자

우리도 일본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축제에 주인공으로 동참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연구비 지원시스템을 다양화해야 한다. 진정으로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를 진작하려면 지금처럼 대형과제에 대한 단기적 성과 위주의 지원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성과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창의적 주제를 장기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구비 규모는 좀 작더라도 여러 연구자들에게 투자하는 ‘풀뿌리’ 연구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들 중 가능성이 커 보이는 과제는 좀 더 큰 규모로 지원하고 성공 가능성이 보이면 지원을 더 키워 나가며 경우에 따라 산업화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연구비 지원시스템을 다양화해야 한다. 일부 연구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대형과제 중심의 연구비 지원정책과 단기적 논문지상주의 평가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청색 LED의 성공에서 보듯이 대학 실험실의 연구 성과가 산업계로 이어져 ‘노벨상’과 ‘산업화’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일본의 성공을 여전히 부러워하고만 있어야 할 것이다.

이우일(서울대 부총장, 과실연 상임대표)
저작권자 2015-04-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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