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겉모습만 보고 무언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곤충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이들은 징그럽게 보이는 외모로 인해 무조건 해로운 존재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오해했던 곤충들이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이로운 익충(益蟲)으로 판명날 때가 많다.
외모로 오해를 받는 대표적인 곤충으로는 왕지네를 꼽을 수 있다. 겉모습은 상당히 혐오스럽게 생겼지만 최근 농촌진흥청의 연구결과처럼 왕지네가 가진 유익한 점을 발견한다면, 이들이 사람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왕지네에서 분리한 항생물질인 ‘스콜로펜드라신 I’이 기능성 화장품의 원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발표하면서, 이 물질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아토피 피부염을 치유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토피 피부염 치유 효능 탁월
‘스콜로펜드라신(scolopendrasin) I’은 왕지네 같은 절지동물이 세균에 대항하기 위해 분비하는 항균 펩타이드(peptide)다. 항균 펩타이드란 항균 활성을 갖는 작은 단백질로서, 100개 미만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지네를 포함한 대부분의 곤충류는 면역 반응의 일환으로 항생물질인 항균 펩타이드를 분비하는데, 농촌진흥청 연구진은 왕지네에서 추출한 항균 펩타이드에 왕지네 학명인 Scolopendra를 적용하여 ‘스콜로펜드라신(scolopendrasin)Ⅰ’으로 이름 붙였다.
스콜로펜드라신Ⅰ이 주목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을 치유하는데 효능이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비록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만,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균들에 대한 항균 활성을 보인 것으로 밝혀져 차세대 항생 물질로 각광 받고 있다.
아토피성 피부염은 피부를 건조시켜 가려움을 유발시키는 현상 외에도 부스럼과 딱지를 만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급성 아토피성 피부염은 표피 내에 수포를 형성하여 염증을 일으키는 대표적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아토피성 피부염은 5세 이하의 어린이 중 3%~5%가 증상을 보이고 있어 유년기 아동들에게 특화된 질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토피성 피부염의 정확한 발생 빈도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약 10%~20%의 어린이들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겪거나 겪은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적으로 아토피 피부염이 발생하면 피가 고이거나 몸이 붓는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로 알려진 ‘면역글로불린 E(IgE)’와 ‘히스타민(histamine)’이 증가하는데, 스콜로펜드라신 I을 투여한 생쥐에서는 이들 아토피성 피부염의 지표물질들이 각각 약 37%~57%, 71%~82% 가량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스콜로펜드라신Ⅰ’을 투여한 생쥐의 경우는 기존 치료제를 투여한 생쥐보다도 약 15%~42% 정도 더 강력한 감소 효능을 보였다.
현재까지 아토피 피부염에는 면역요법과 약물요법의 치료가 시행되고 있으나, 그 원인을 확실히 규명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특별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증상이 심한 경우 스테로이드제제를 사용하지만, 이 같은 약물은 단기간의 임상 증상 완화에만 효과가 있을 뿐, 다시 수일 내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약품 소재 분야에서도 널리 활용 가능
농촌진흥청은 ‘스콜로펜드라신Ⅰ’에 대해 이미 특허출원을 완료했으며, 의약품 개발보다 한발 앞선 단계로 보는 화장품 개발 관련 기술을 산업체에 기술이전 했다.
기술 이전을 받은 업체 중 한 곳인 피앤에스생명과학은 ‘스콜로펜드라신Ⅰ’ 물질이 함유된 화장품을 개발해 제품을 출시했으며, 현재 다른 업체들도 상용화를 위한 시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의 황재삼 농업연구관은 “아토피 치유에 효능이 있는 ‘스콜로펜드라신Ⅰ’ 물질이 앞으로 화장품뿐만 아니라 의약품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상용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황재삼 농업연구관과 나눈 ‘스콜로펜드라신Ⅰ’ 물질 관련 일문일답이다.
- 대다수의 곤충들이 항균 펩타이드를 분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험대상으로 왕지네를 선택한 이유는?
전통의학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을 비롯한 전통의학 서적에 이미 항염(抗炎)이나 면역질환과 같은 지네의 의학적 효능들이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 같은 효능들은 항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왕지네를 실험대상으로 선택한 것이다.
- 기술이전을 받은 화장품 개발업체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체험결과가 궁금하다.
의약품이 아닌 화장품이기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임상결과는 필요치 않다. 하지만 개발업체가 출시 이전에 체험단 모집을 통해 화장품의 효능을 검증해 보았는데, 아토피 피부염을 잠재우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왕지네에 대한 혐오 이미지가 강한데 이 같은 선입견을 상쇄할 수 있는 방안도 개발업체와 논의되었는지?
우리도 처음에는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체험단의 의견을 수렴해보니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왕지네 자체는 징그럽지만, 예전부터 지네가 뛰어난 한약재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터라 오히려 효능에 대한 관심이 컸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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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8-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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