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2,2017

온라인 웹진 [거울]의 동인 작가들(3)

21세기 한국 과학소설의 현재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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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상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지는 않지만 과학소설이 추구하는 본질에 성큼 다가섬으로써 눈길을 끄는 작품들도 있다. 이를테면 곽재식의 <그녀를 만나다; 2010년>1)는 질병으로 사망 직전 뇌를 새로 배양한 신체에 이식한 젊은이가 맞이한 곤혹스러운 처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여기서 주인공의 뇌는 새로운 신체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는 병원 측의 배려로 각기 절반으로 잘라져 두 개의 독립된 신체에 넣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식된 개체 둘 다 수술에 성공한다. 할 수 없이 일정한 재활기간이 지난 후 병원 측은 종합 정밀검사를 실시해 한 사람은 수술 전 원래 진본으로 판정하고 다른 한 사람은 원본과 상관없는 별개의 인격체로 백지상태에서 삶을 시작하라고 결정한다. 

단지 다른 개체보다 원본의 기억을 덜 갖고 있다고 해서 이미 갖고 있는 기억을 애써 마음 속에 묻어두고 과연 완전히 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특히 다른 것은 둘째 치고라도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기억에서만큼은 자신이 원본에 가깝다고 판정받은 쪽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강렬하다고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2)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첨단 과학기술이 인간사의 아이러니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하며 인격과 자아라는 것은 계량화 대상이 아니라는 주제의식을 구태여 말미에서 주인공의 독백으로 토로하는 대신 독자가 알아서 느끼게 해주었더라면 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 아인슈타인의 뇌를 반씩 나눠 각기 새로운 육체에 이식한 결과 두 개체 모두 멀쩡하게 생존한다면 진짜 아인슈타인은 누구일까? 곽재식의 <그녀를 만나다>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아인슈타인의 좌우 뇌를 활용한 메르세데스 벤츠의 광고물.



정희자의 단편 [U, Robot; 2009년]3) 역시 무척 흥미로운 사고실험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주제들이 섞인 이 이야기에서 단연 눈길이 가는 것은 과연 인간이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유전공학으로 배양한 인간의 외피 속에 인공지능을 탑재하여 탄생한 로봇이 아기가 걸음마 배우듯 점진적으로 사회성을 확보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스스럼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한 지적 존재에게 인격권을 부여해야 할까 아닐까.

이러한 로봇에게 로봇공학 3원칙을 적용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처사일까? 아시모프의 이 원칙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습관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지적 능력이 인간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앞선 로봇과 인공지능 입장에서는 속박이자 로봇권 유린이 아닐까? 인공존재이므로 창조주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신의 군림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는 세속사회의 인간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과학소설의 기존 로봇 개념에 역발상을 도입한 이 단편에서 아쉬운 점은 플롯 형식이다. 여성 로봇공학자가 딸처럼 키운 로봇에게 쓴 장문의 회상편지 형식이라 끝까지 읽고 나면 그녀가 굳이 그 로봇에게 둘 사이에 있었던 사정을 시시콜콜 그런 식의 편지로 되새김질해야 했는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보다는 오로지 독자의 이해를 위해 썼다는 티가 너무 난다. 이 단편은 1인칭 독백 시점에서 벗어나 플롯을 다시 치밀하게 짠다면 심금 울리는 장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씨앗이라 생각된다. 

이에 비해 한 해 전 발표된 그녀의 또 다른 단편 <지구의 아이들에게; 2008년>는 우주시대의 달라이 라마를 등장시켜 제국주의 침탈 속에 민족의 혼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U, Robot]처럼 1인칭 화자의 시각에서 수필처럼 씌어져 소설보다는 시놉시스 같은 느낌이라 감동이 덜하다. 정희자는 독창성과 문제의식에서는 앞으로 기대되는 작가지만 사건 전개를 1인칭 독백으로 구구절절 풀어나가는 화법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숙제로 보인다.

▲ 인간의 육체에 탑재한 인공지능에게 로봇공학의 3원칙이 통용되어야 할까? 정희자의 단편 [U, Robot; 2009년]은 아시모프의 기존원칙이 폐기될 수밖에 없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쓰임새를 사색한다. ⓒefremov


박애진의 특이한 단편 <신체의 조합>4)은 우리의 세상과는 무척 동떨어진 두 세계를 오가는 진취적인 한 남자의 생존기다. 이 기이한 세계들에서는 식량이라고는 타인의 육신이 전부다. 지하세계에 사는 주인공의 무리는 부정기적으로 인간의 잘린 신체조각들을 토해내는 구멍에서 자신에게 맞는 신체조각들을 쟁취해 방치하면 굳어버리는 신체부위를 계속 갈아 끼우며 살아남는다. 

하지만 현 상태에 만족하며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주인공은 아서 C. 클락(Arthur C. Clarke)의 장편 <도시와 별 The City and the Stars; 1956년>의 앨빈처럼 전설로 듣던 지상세계로 나가는 출구를 찾아 헤맨다. 마침내 그가 천신만고 끝에 동료들을 제물삼아 지상까지 나왔을 때 받는 실망감은 디스토피아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지만, 주인공이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분리된 두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려는 목숨을 내건 마지막 시도는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우리와는 삶의 원리나 환경이 이질적인 세계를 무대로 한 이 단편은 장편으로 개작하여 우리사회의 이면을 투영해 넣을 수만 있다면 훨씬 더 무게감 있고 주목받는 작품으로 탈바꿈할 수 있으리라 본다. 

반면 그녀의 또 다른 단편 <파라다이스; 2009년>는 사회비판적 메시지로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배경을 설정해놓고도 정작 스토리라인은 달에 두고 온 남자와의 감정을 정리하느라 주체를 못하는 여주인공의 내면 심리에 주안점이 두어져 양자 간의 유기적 균형이 이뤄지지 못했다. 

핵전쟁인지 급성 바이러스 창궐인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으나 지구 전체가 오염되어 달 식민지에만 일부 생존자들이 살아남은 미래, 그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부자와 권력자들은 남들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는 것을 시위하려고 로봇 조종사들을 고용해 지구의 폐허더미에서 예술품과 골동품을 찾아오게 한다.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겉으로는 재활용품을 달 식민지로 가져와 부족한 자원을 충당하겠다고 이중 플레이를 하면서 말이다. 이 정도로 선명한 설정이 준비되었다면 단편이라도 보다 강렬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을 법한데 흥미로운 설정이 그냥 배경으로만 그치고 말아 아쉽다. 

정지원의 단편 <시간을 팝니다>5)는 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우의소설에 가깝지만 사람들 간의 시간을 사고 팔 수 있게 중개하는 사업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인간의 일방통행적 욕망을 잘 포착해냈다. 

류형석의 단편 <어떤 미운 오리새끼의 죽음>은 인간의 유전형질을 날 때부터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 빈부격차가 유전형질의 우열의 차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바람에 상대적 박탈감에 괴로워하는 주변부 인생을 그린다. 다만 유전형질 조작에 반대하는 저항운동단체가 유전공학 연구원들을 무차별 테러한다는 설정은 공감에 무리가 있어 보이고 플롯도 뒤가 읽히는 복수담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이수현은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에서 장편 <패널노말 마스터>로 우수상을 받은 뒤로는 주로 해외 과학소설의 번역에 주력해왔다.





1) 이 단편은 황금가지에서 펴낸 한국SF단편선 <아빠의 우주여행; 2010년>에 수록되었다.
2) 오늘 처음 그녀와 재회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나를 (수술 전처럼) 사랑하게 될지 조마조마하게 고민했고 내가 뭐라 말해야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 지 궁리했다. 그렇지만 이미 그녀와 뭘 어떻게 하는가와 상관없이 나의 뇌는 (또 다른 분리된 뇌에 비해) 워낙 다른 부분의 점수가 낮아 이미 원래의 뇌가 아닌 것으로 결정되어 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나는 그녀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어 있었고 나에게도 역시 내가 사라했던 사람의 추억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 곽재식, <그녀를 만나다>, <아빠의 우주여행>에 수록, 2010년, 308쪽
3) 이 단편은 황금가지에서 펴낸 선집 [U, Robot; 2009년]에 수록되었다.
4) 이 단편은 행복한 책읽기에서 펴낸 선집 <누군가를 만났어; 2007년>에 수록되었다.
5) 이 단편은 웅진씽크빅 시작에서 펴낸 단편집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 2; 2009년>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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