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5,2017

오랑우탄은 과연 몇 종일까?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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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제외한 대형 유인원(꼬리 없는 영장류)이 몇 종이나 될까? 분류학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은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이렇게 ‘세 종’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침팬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행동 양식이 꽤 다른 보노보(과거 피그미침팬지라고 불렀다)를 알고 있다면 ‘네 종’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릴라와 오랑우탄은 각각 두 종으로 나뉜다. 즉 서부 고릴라와 마운틴고릴라(또는 동부 고릴라)로 나뉘고 보르네오 오랑우탄과 수마트라 오랑우탄으로 나뉜다. 결국 오늘날 지구에는 여섯 종의 대형 유인원이 인류와 공존하고 있다.

최근 세 번째 오랑우탄 종으로 확인된 타파눌리 오랑우탄의 모습. ⓒ Andrew Walmsley

최근 세 번째 오랑우탄 종으로 확인된 타파눌리 오랑우탄의 모습. ⓒ Andrew Walmsle

호수 사이에 두고 두 종 따로 살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11월 2일자에는 두 종인 줄 알았던 오랑우탄이 실은 세 종이라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사람을 제외한 대형 유인원은 모두 일곱 종이 되는 셈이다. 스위스 취리히대 인류학과 미셸 크뤼첸 교수가 총괄책임을 맡은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토바호수 남쪽 1000km2의 좁은 범위의 지역에 서식하는 오랑우탄이 호수 북쪽의 넓은 지역(1만5000km2)에 서식하는 수마트라 오랑우탄과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형태와 행동, 게놈 분석을 토대로 밝혀냈다.

말레이어로 ‘숲 속의 사람’이란 뜻의 오랑우탄(orangutan)은 말 그대로 밀림 깊숙이 살고 있기 때문에 17세기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는 거의 연구가 되지 않았고 현지인들 사이에서 소문만 무성한 존재였다. 토바호수 남쪽의 오랑우탄은 최근까지도 그런 상태였고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된 게 불과 20년 전인 1997년이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당연히 수마트라 오랑우탄이라고 생각했고 설사 다른 지역의 오랑우탄과 상당 기간 떨어져 살았더라도 수마트라 오랑우탄의 아종(subspecies) 정도일 것으로 봤다. 그러나 2013년 현지인들이 수컷 오랑우탄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고 호주국립대 고고학/인류학부 에릭 메이야드 교수팀은 사체를 넘겨받아 골격을 분석했다.

그 결과 토바호수 남쪽 타파눌리 지역에 서식하는 오랑우탄은 호수 북쪽 넓은 지역에 살고 있는 수마트라 오랑우탄 및 보르네오 오랑우탄과 생김새가 꽤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두개골이 상당히 작았고 턱이 좁으며 위쪽 첫 번째 어금니도 작았다.

한편 현장 조사에서 타파눌리 지역의 오랑우탄의 부름소리가 북쪽 수마트라 오랑우탄의 부름소리과 비교했을 때 주파수와 지속시간이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랑우탄 수컷이 하루 서너 차례 내는 부름소리(long call)는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행동으로 1km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다. 측정 결과 타파눌리의 오랑우탄은 최대 진동수 범위가 800헤르츠 이상으로 747헤르츠 미만인 수마트라 오랑우탄보다 꽤 톤이 높았다. 또 지속 시간도 111초 이상으로 90초 미만인 수마트라 오랑우탄보다 상당히 길었다.

연구자들은 타파눌리에 사는 오랑우탄 두 마리를 포함해 오랑우탄 서른일곱 마리의 게놈을 분석했다. 그 결과 생김새와 행동에서처럼 염기서열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분석한 결과 뜻밖에 결론에 이르렀다.

아시아에 사는 대형 유인원인 오랑우탄 세 종의 서식지를 나타낸 지도다. 수마트라 오랑우탄은 수마트라섬 토바호수(Lake Toba) 위쪽에 살고 있고 호수 남쪽에 타파눌리 오랑우탄이 살고 있다(노란색). 보르네오 오랑우탄은 보르네오섬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세 아종과 서식지에 따라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아시아에 사는 대형 유인원인 오랑우탄 세 종의 서식지를 나타낸 지도다. 수마트라 오랑우탄은 수마트라섬 토바호수(Lake Toba) 위쪽에 살고 있고 호수 남쪽에 타파눌리 오랑우탄이 살고 있다(노란색). 보르네오 오랑우탄은 보르네오섬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세 아종과 서식지에 따라 다른 색으로 표시했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800마리도 안 남아 있는 듯

즉 염기서열을 토대로 한 계통분류학의 관점에서 토바호수 북쪽에 사는 수마트라 오랑우탄과 호수 아래 타파눌리 지역에 사는 오랑우탄은 무려 338만 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것으로 밝혀졌다. 오랑우탄은 모계사회로 이처럼 계열이 갈라진 뒤에도 간헐적으로 수컷이 유입돼 피가 섞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십 만 년 전 갈려진 사람과 네안데르탈인이 가까운 곳에 살게 되면서 피가 섞인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나 두 서식지가 완전히 격리된 1만~2만 년 전 이후에는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타파눌리 지역의 오랑우탄과 보르네오 오랑우탄은 오히려 더 가까워 67만여 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것으로 나왔다. 즉 어찌된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는 수마트라섬에 살게 됐고 일부는 보르네오섬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두 섬은 워낙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뒤 두 집단 사이에 유전적 교류는 거의 없었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연구자들은 토바 호수 남쪽 좁은 영역(서울시 면적인 605km2의 채 두 배가 안 되는)에 사는 오랑우탄에 지역 이름을 따 폰고 타파눌리엔시스(Pongo tapanuliensis)라는 학명을 지어줬고 평소에는 ‘타파눌리(Tapanuli) 오랑우탄’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대형 유인원에서 새로운 종인 생긴 건 드문 일이라 축하할 일이지만 상황이 꼭 그렇지도 않다. 안 그래도 서식지 파괴와 포획(애완용 오랑우탄 수요가 많다)으로 오랑우탄의 개체수가 계속 줄고 있어 문제인데, 수마트라 오랑우탄에서 타파눌리 오랑우탄을 따로 떼어내 두 종이 될 경우 둘 다 멸종 위험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타파눌리 오랑우탄이 심각한데 전체 개체수가 800마리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논문에 따르면 현재 이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댐이 지어질 경우 현재 서식지의 8%가 물에 잠긴다고 한다. 신종을 발견하자마자 이들의 멸종을 걱정하게 됐으니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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