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슨 언변을 발휘하든 여자의 눈물 한 방울을 이길 수 없다”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Voltaire)의 격언이 있다. 여자의 눈물을 보고도 약해지지 않는 남자는 자격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실제로 여자의 눈물이 남성의 공격성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지난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근호에 ‘인간의 눈물도 화학신호 전달한다(Human Tears Contain a Chemosignal)’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슬픔이나 애통함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여자들이 흘리는 눈물 속의 화학적인 성분이 남성의 호르몬 수치를 조절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의 신경생물학자인 노엄 소벨(Noam Sobel) 교수 연구팀이 이스라엘의 이디스 울프슨(Edith Wolfson) 의료센터 소속 의사들과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다.
감정으로 흘린 눈물의 냄새 맡으면 충동 누그러져
눈물을 흘리는 동물은 많다. 그러나 격한 감정에 의해 눈물이 흐르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다. 연구진은 ‘동물이 흘리는 눈물이 화학적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므로 인간의 눈물도 유사한 기능을 할 것’이라는 가설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암컷 두더쥐는 자신의 눈물을 얼굴에 바름으로써 다른 수컷들의 공격성을 저하시킨다. 눈물 속에 담긴 특정 성분이 화학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연구진은 눈물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여성 자원자들에게 비극으로 끝나는 슬픈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시험관에 모으게 했다. 대조군으로는 일반 식염수를 뺨 위에 흘려서 시험관에 담았다. 이 눈물과 식염수를 각각 거즈에 적신 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성 50명의 코 밑에 부착시켰다. 그리고 여러 여성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끼는지 물었다. 코 밑의 거즈에는 눈물과 식염수를 하루 걸러 교체했으며 남성들에게는 눈물인지 식염수인지 밝히지 않았다.
실험 결과 남성들은 슬픔으로 인해 흘린 눈물의 냄새를 맡았을 때 현저한 반응을 보였다. 사진 속 여성들의 성적 매력이 덜하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들은 심리적인 충동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도 낮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식염수 냄새를 맡았을 때는 호르몬 변화가 없었다. 감정 섞인 여자의 눈물이 남성의 충동과 공격성을 억제시킨 것이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찍은 뇌 사진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슬픈 영화를 보고 감정이 북받쳐 흘린 눈물의 냄새를 맡은 남자들은 충동과 공격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활성화 정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눈물이 성적인 목적으로 추근대거나 공격하는 남성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다. 소벨 교수는 “화학적 신호는 일종의 언어체계”라며 “감정 섞인 눈물에 담긴 신호를 언어로 바꾸면 ‘싫어’ 또는 ‘지금은 안 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눈물 속 화학성분에 대한 후속연구 필요
이번 실험에 대해 전문가들은 놀라움과 우려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인간의 행동과 페로몬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해온 마사 맥클린톡(Martha K. McClintock) 시카고대 심리학 교수는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에 담긴 화학신호를 파헤친 이번 연구는 울음이라는 행동이 지닌 의미를 확대시켰다”고 평했다. 또한 로버트 프로비니(Robert R. Provine) 메릴랜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감정적인 눈물이 화학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이 사회적 존재으로 진화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놀라운 증거”라고 평했다.양파 껍질을 벗길 때처럼 특정 자극에 의해 흘리는 눈물 속 화학적 성분은 감정이 북받쳐 흘리는 눈물과 다르다는 것을 밝혀낸 생물학자 윌리엄 프레이(William H. Frey II)도 “눈물 속 화학 성분이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사한 실험결과나 후속연구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정확히 어떤 성분이 화학신호를 보내는지, 이것이 후각으로만 감지되는 것인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게다가 왜 여자의 눈물이 성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데 쓰이는 것인지 그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다. 소벨 박사는 “월경기간 동안 짝짓기를 피하기 위한 생물학적 진화”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맥클린톡 교수는 “짝짓기를 피하기 위함이라면 여자들이 월경기간 동안 더 많이 눈물을 흘려야 할텐데 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반박했다. 눈물의 의미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프레이 박사도 진화에 있어서 호르몬의 역할에 대해 정확히 판단 내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침입자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눈물의 냄새를 맡은 남편이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아져 공격성이 저하된다면 가족을 지킬 수 없으니 진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자의 눈물로 실험한 이유는 ‘풍부하기 때문’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여자의 눈물’일까. 연구책임자인 소벨 박사의 대답은 간단하다. “여자들이 더 쉽게 많은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마시대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는 “여자는 언제나 풍부한 눈물을 준비해둔다”고 읊은 것처럼 말이다.
눈물 속의 화학적 성분을 검출해내기 위해서는 실험당 최소한 1밀리리터의 눈물이 필요한데, 남자들은 쉽게 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눈물의 양도 그만큼 적다.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는 일도 드물다. 실험에 자원한 70명 중 남성은 1명에 불과했다.
여성 중에서도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잘 울어서 ‘눈물 은행’이라고 불릴 정도인 자원자는 6명뿐이었다. 게다가 실험에 쓰이려면 2시간 이내의 얼리지 않은 신선한 눈물이 필요하다. 때문에 공동저자인 야라 예슈룬(Yaara Yeshurun) 연구자도 피실험자로 참가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남자의 눈물이나 어린 아이들의 눈물, 나아가 동물의 눈물이 어떠한 화학적 신호를 보내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 임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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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1-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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