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에볼라는 중앙아프리카의 밀림지역에서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종족에게서나 간혹 발생하는 천형 같은 질병쯤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지역 간의 이동이 더 활발해진 요즘엔 상황이 다르다.
올해 대유행을 일으키고 있는 에볼라의 발생지인 서아프리카 지역도 박쥐를 잡아먹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박쥐가 원인 숙주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에볼라는 인수공통 전염병인 셈이다.
인수공통 전염병은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전염될 수 있는 질병으로서, 특히 동물로부터 사람으로 전염되는 질병을 말한다. 대부분 직접적인 접촉이나 공기로 감염되지만, 일부는 모기나 파리를 통해서도 전염된다. 1952년 WHO는 전문가 회의에서 인수공통 전염병의 정의를 “척추동물과 사람과의 사이에 자연적으로 전파되는 질병 또는 감염”이라고 내린 바 있다.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사스는 물론 광견병, 구제역, 브루셀라, 결핵 등도 인수공통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공동연구팀이 지난 60년간 발생한 신종 질병을 분석한 결과 약 60%가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전인된 인수공통 전염병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그중 대부분은 야생동물로부터 기원된 병원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인수공통 전염병의 발생은 과거보다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30년간 보고된 인간에게 새로운 병원균의 대부분은 동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수공통 질병을 일으키는 요인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을 비롯해 여타 이동 가능한 작용물 등으로 다양하다. 현재 1400여 종 이상의 감염요인들이 인간에게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약 60% 가량이 인수공통이다.
최근 들어 인수공통 전염병이 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인류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줄어든 반면, 그들과의 접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환경적인 변화, 이민 및 이동인구의 규모 및 빈도 증가 등도 감염을 부추기는 원인에 속한다.
게다가 세계 대부분의 육류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도 원인 중 하나에 속한다. 몸집이 크고 번식력이 좋은 종만을 사육하다 보니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져 발병에 취약하다. 밀집된 사육 환경도 전염병 발생을 부추기는 배경이 된다. 또한 가축들의 사료에 대량으로 섞는 항생제는 항생제 내성을 지닌 슈퍼 박테리아를 발생시키기에 딱 알맞은 환경이다.
기술 및 자원 공유하는 글로벌한 접근법 필요
이 같은 대규모 사육 환경에서 가축들은 병에 더 취약해지고 병은 빠르게 전파되며, 돌연변이와 재조합을 통해 더 치명적인 위력을 갖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나타날 확률이 커진다. 인간은 이런 인수공통 감염인자에 대한 저항성이 없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인수공통 전염병의 최대 문제점은 전 세계의 보건 관련 자원이 부국에 편중되어 있는 반면 질병의 빈발 지역은 개발도상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가 필요한 기술 및 자원을 공유하는 글로벌한 접근법만이 인수공통 전염병의 판데믹을 막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에볼라 치료제의 발견에 매달리는 것보다 야생에서 다음 차례의 인수공통 전염병이 출현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국제개발처에서는 야생동물 유래 바이러스의 확산을 감시하고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신흥감염병 세계유행위협을 다루는 전문가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이 컨소시엄에서는 야생동물 고기 거래시장을 감시하거나 유행병을 야기할 소지가 있는 야생동물 숙주에서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활동하는 개도국 지역민과의 문화 차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생동물을 사냥함으로써 겨우 생활을 꾸릴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신체적 접촉을 가족 가치의 덕목으로 꼽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야생동물에 대한 감시 프로그램이 작동된다면 인수공통 전염병을 잠재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보존생물학연구소의 보존생물학자인 이자벨 앤 비손이 이끄는 연구팀이 바로 그 주인공.
한센병도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밝혀져
사이언스 지의 보도에 의하면, 연구팀은 60년치 과학저널 및 신문기사를 뒤져 야생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수 있는 150여 가지 병원체로부터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조사했다. 첫째는 병원체가 시각적으로 야생동물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이나 죽음을 일으키는지의 여부이며, 둘째는 인간 질병의 발생이 먼저 일어나는지 아니면 동물 질병의 증가와 함께 발생하는지를 조사한 것.
그 결과 150여 가지의 병원체 중 70가지는 발작이나 무기력함, 갑작스런 공격성, 그리고 죽음과 같은 동물의 가시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나 질병의 신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실제로 인간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13가지 병원체는 야생동물에서 발생한 후에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 과학자들은 자연과 동물의 건강에서 발견되는 신호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며 긍정적인 평을 하고 있다. 특히 버지니아 주립대의 질병생태학자인 캐서린 알렉산더는 “야생동물의 건강은 환경 변화의 주요 신호이며, 인간의 건강에 대한 위험을 예측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한편, 인간에 의해 전염되는 것으로 생각된 질병들이 동물에 의해서 전염된다는 사실이 최근 잇달아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발견된 독특한 유전형의 한센병이다. 한센병은 대인감염을 통해 전염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한 과학자의 끈질긴 추적 끝에 아르마딜로를 통해서 감염되는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르마딜로는 단단한 껍질로 온몸이 덮여 있는 야행성 포유류로서, 북미 남부 및 남미에 서식한다. 연구진은 아르마딜로의 분변이 섞여 있는 흙먼지를 흡입하거나 아르마딜로를 죽이면서 접촉할 경우 한센병이 전염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20% 이상의 아르마딜로가 한센병에 감염되어 있다.
또한, 유럽인들이 남미에 발을 딛기 훨씬 전에 페루인들에게 결핵을 옮긴 것은 바다표범이라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동물에게서 결핵에 감염된 바다표범들이 대서양을 건너 남미로 왔으며, 그것을 사냥해 잡아먹은 페루인들이 결핵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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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12-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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