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신경의 발작적이며 과도하고 동시성의 전기적 방출로 드러나는 증상인 뇌전증(腦電症). 이 중에서도 압상스 뇌전증은 100명 중 1~2명이 발병하는 비교적 흔한 질병이다. 별다른 전조 증상 없이 의식이 잠깐 소멸되고 3초마다 뇌파가 극서파(spike-and-wave discharge)를 방출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주목을 받고 있다.
T형 칼슘통로의 이해
“압상스 뇌전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비교적 흔한 질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4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이 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압상스 뇌전증은 수 초에서 약 수십 초 동안 의식이 상실되는 비경련성 발작이에요. 하던 행동을 갑자기 중단하고 멍하니 응시하거나 발작 순간 동안 말을 중단하는 등 특징적인 증상을 보이죠. 압상스 뇌전증은 대부분 소아기에 발병합니다. 성장하면서 사라진다고 하지만 특히 학령기에 계속적인 질환으로 남을 경우 학습장애와 사회 적응 결핍 등의 원인이 되죠. 저희 연구팀은 뇌 신경망의 작동원리를 규명해 압상스 뇌전증을 치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 했습니다.”
신희섭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은 이번 연구를 통해 뇌 신경망의 구체적인 작동원리를 밝혀냈다. 압상선 뇌전증이 발병하는 이유는 뇌의 신호가 잘못 방출되기 때문이다. 뇌의 작용 중 신경세포가 서로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는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 과정이 정상적으로 행해지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이뤄질 경우 발작이 일어나는 것이다.
수면과 관련이 있는 시상, 시상 망사체, 대뇌 피질로 구성된 시상피질 회로에서 뇌신경 세포가 이상을 일으켜 과도한 흥분상태를 나타냄으로써 뇌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증상이다. 현재 압상스 간질에 관한 세부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동물 모델이 대뇌피질을 향해 규칙적으로 시상 투사가 일어나는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뇌신경의 흥분하기 쉬운 동시성 방전이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압상스 뇌전증 동안 시상에서 대뇌로 연결되는 신경세포는 단발성 발화(tonic firing)가 다발성 발화(burst firing)로 변환됩니다. 다발성 발화는 T형 칼슘채널을 통한 칼슘 이온의 유입에 의해 유도되고 과분극에 의한 반동 탈분극은 신경의 진동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신경 진동 메커니즘은 시상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시상은 크게 ‘시상 연결’과 ‘시상 망상’ 조직으로 나눌 수 있어요. 흥분성 신경과 억제성 신경이 상호 연결돼 있는 구조로 이들의 발화는 그 자체로 리듬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신희섭 단장에 따르면 T형 칼슘채널은 세 종류의 유형으로 나뉜다. 특히 뇌 부위에 따라 발현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시상연결 부위에서는 ‘Cav3.1’ 유형이, 시상 망상 부위에서는 ‘Cav3.2’와 ‘Cav3.3’ 유형이 주로 발현한다.
“‘Cav3.3’ 유전자가 제거된 생쥐에서는 시상 망상 조직에서 다발성 발화가 유전적으로 제거된 것을 의미합니다. 다발성 발화가 제거된 생쥐에서 약물 유도 압상스 뇌전증 행동을 살펴봤더니 정상 생쥐보다 극서파가 증가돼 있었어요. 바이러스 넉다운 실험과 시상 망상에서 발현하는 두 가지 유형의 T형 칼슘채널이 동시에 제거된 생쥐에서와 동일한 결과였죠.”
이러한 결과는 시상 망상의 다발성 발화가 극서파를 생성시키고 유지할 것이라는 기존 가설과는 정 반대되는 입장이다. 오히려 단발성 발화 패턴이 T형 칼슘채널이 모두 제거된 생쥐에서 늘어났는데 이는 압상스 간질에서 단발성 발화 패턴이 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단서를 제시해준다. 즉, 신희섭 단장팀의 연구에서 기존 압상스 간질에 대한 다발성 발화의 기능적 역할을 제고하고 있으며, 단발성 발화의 강화가 압상스 간질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결과를 제시해 주는 셈이다.
지금까지는 압상스 뇌전증의 주 원인이 다발성 발화라는 데 의견이 집중돼 있었다. 신희섭 단장은 “한 가지 구분해야할 것은 압상스 뇌전증을 일으키는 뇌의 회로인 시상피질 회로에서 시상은 시상 연결과 시상 망상체 부위로 나뉜다는 것”이라며 “시상 연결에서 나타나는 다발성 발화는 압상스 뇌전증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앞서 우리팀의 연구에서도 밝혔고 세계적인 많은 학자들이 밝히고 있는 가설”이라고 이야기 했다.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많은 연구자들은 시상 망상체의 다발성 발화도 압상스 간질을 일으키는 중요한 인자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시상 망상체의 다발성 발화가 압상스 간질의 원인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반면 신희섭 단장팀의 연구결과는 시상 연결의 다발성 발화와 달리 시상 망상체의 다발성 발화는 사라지면 압상스 간질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밝혔고 기존의 통설과 다름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다발성 발화와 단발성 발화, 이 두 가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시상 세포는 다발성과 단발성, 두 가지 종류의 발화를 보입니다. 형태상으로 한 번 발화에 여러 개의 발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다발성 발화라하고 한 번 발화 할 때 단 한 번의 발화만 일으키기 때문에 단발성 발화라고 합니다. 각각의 발화는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나타나는 점이 가장 다른 점입니다. 즉, 다발성 발화는 T형 칼슘 이온통로를 매개로 하며 단발성 발화는 다른 여러 종류의 이온통로들을 통해 발화 할 수 있는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발성 발화가 유전적으로 사라진 생쥐의 시상 망상체에서 단발성 발화가 정상 생쥐보다 많이 나타난 실험 결과다. 때문에 시상 망상체에서는 다발성 발화보다 단발성 발화가 압상스 간질을 일으키는데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제안을 하고 있다.
뇌에서 의식은 어떻게 관장 되는가
신희섭 단장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평소 그가 뇌에 대해 고민과 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뇌에서 의식은 어떻게 관장되는가’ 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을 안고 있었다.
“뇌에서 의식은 어떻게 관장되는지, 이 의식은 어떻게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결정하는지 궁금했어요. 때문에 그와 관련된 시상피질 회로의 메커니즘을 연구했습니다. 시상피질 회로는 수면과 간질 등 의식에 관련된 전반적인 상태를 관장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수면과 뇌질환에 관련된 것이고 그것이 잘못됐을 때는 어느 것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이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연구를 하다 보니 더 깊이 들어가게 되더군요. 시상 중에서도 서로 다른 세포의 타입이 존재하고 그러면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압상스 뇌전증 행동으로 접근했더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던 거죠.”
이러한 관심이 글 뇌신경망 구조와 압상스 뇌전증 연구로 이끌었지만 연구 과정 가운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존재했다. 신희섭 단장은 “연구자라면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연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바이러스 넉다운 실험을 할 때 시상 망상체의 세포 타입과 맞는 바이러스 타입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이야기 했다.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자신의 유전물질을 들여보낸 후 숙주세포의 유전자상에 끼어 넣거나 세포질 내에서 복제를 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넉다운 기법이란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외부 유전자를 바이러스 유전자 상에 끼워 넣어 생체 조직에 감염시킴으로써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Knockdown)해 전달 유전자의 생체 내 기능을 알아보는 기법입니다.”
이번 연구를 위해 신희섭 단장은 총 네 가지 타입의 바이러스를 실험했다. 하지만 바이러스 연구가 생각만큼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바이러스를 만드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생쥐에게 주입 후 압상스 뇌전증 행동을 보는 데만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신 단장팀은 바이러스 넉다운 기법을 시상 망상체에 적용하는 데만 약 2년 이상의 시간을 들였다.
“논문을 투고하고 난 이후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논문 투고 후 리뷰를 받는데 다발성 발화가 사라진 생쥐에서 보이는 특이적 뇌파인 극서파를 받아들여주지 않더군요. 때문에 그것을 검증하는 새로운 분석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정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움 심정이었죠. 아마도 돌연변이 생쥐이기 때문에 리뷰어들이 특이하게 다른 비정상적 뇌파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연구자에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지칠 수 있어요. 더구나 본 연구는 첫 번째 저자인 이승은 학생이 박사학위를 받기 위한 일이기도 했는데, 논문 발표가 지체됨에 따라 학위 취득도 늦어지는 게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갖고 있는 실험결과가 정확하고 설득의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죠.”
신희섭 단장팀의 이번 연구는 유전자 적중 기술을 이용해 T형 칼슘 이온통로 결손 생쥐를 제작하고, 바이러스 넉다운 기법 등을 통해 종래의 통설과 다르게 T형 칼슘 이온통로가 제거되면 압상스 간질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동안의 연구는 T형 칼슘 이온통로를 약물로 차단해 다발성 발화를 억제하거나 시상 망상체 세포 자체를 없애는 방법으로 다발성 발화를 연구했다. 하지만 약물은 다른 종류의 이온통로도 차단하는 부작용이 있으며 시상 망상체 세포 자체를 없애는 방법은 T형 칼슘 이온통로를 적중하는 연구 모델이 아니다. 때문에 시상 망상체의 다발성 발화를 타깃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이러한 타깃 연구방법이 압상스 뇌전증에서 뇌 신경망의 작동 원리를 더욱 정교하게 규명할 수 있는 기반이 된 셈이다.
“연구를 통해 압상스 간질에 대한 기존 가설에서 벗어나 뇌신경망의 회로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이번 연구가 압상스 간질에서 시상 망상체의 T형 칼슘 이온통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간질 장애의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 저희팀의 연구는 기존의 통설과 다른 연구 결과이기 때문에 압상스 간질에서 약물에 대한 부작용과 내성이 적고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후속 연구에 더욱 매진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뇌 신경망의 작동 원리를 밝혔다면 앞으로 이를 통해 간질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까지 가능하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8-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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