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세포는 일반 정상세포와 달리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세포다. 세포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든지, 혹은 그 모양이 정상의 것과 달라지면서 인체 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암이 발생하는 과정 중에는 DNA유전자의 잘못된 복제도 한 몫을 한다.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로 안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DNA복제가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하면 유전체불안정성이 초래돼 암이 발생하는 것이다.
암 억제 단백질의 안정적인 DNA복제 유도기능
국내 연구진이 DNA의 정확한 복제를 돕는 암억제단백질 ‘BAP1’의 작용기전을 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권종범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이 미래부가 추진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보건복지부 암정복추진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크로마틴 조절 단백질과의 협력을 통한 암억제단백질 BAP1의 안정적인 DNA 복제유도기능을 규명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새로운 항암제 개발의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BAP1은 폐 표면과 흉부 내면 사이를 구성하는 흉막조직의 중피세포에서 유래하는 폐암인 흉막중피종 등에서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 암억제 단백질이다. 핵에 존재하며 표적단백질에 붙은 유비퀴틴을 떼어내는 탈유비퀴틴화 효소활성을 갖고 있다.
“DNA 복제는 세포분열의 핵심과정으로써 유전체 전달과 보전에 필수적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유전체불안정성이 야기되고 암이 발생하게 되죠. INO80은 유전체의 실질적 구조인 크로마틴의 역동성을 조절하는 리모델링 인자입니다. 전사조절과 DNA 손상복구에 기능한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그동안 DNA 복제에서의 INO80의 역할과 작용기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현재 권종범 교수 연구실은 유전체안정성 조절에 중요한 DNA 복제 및 손상복구 과정의 분자기전을 이해함으로써 유전체불안정이 야기되는 이유와 암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크로마틴 구조 조절을 담당하는 INO80 단백질의 DNA 복제 기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BAP1이 INO80과 결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기능적 의미를 조사한 결과 BAP1이 INO80을 탈유비퀴틴화해 안정화하고 DNA 복제분기점으로 안내해 복제가 정상적이고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준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즉 INO80의 DNA 복제기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BAP1과의 기능적 연결고리를 찾게 된 셈이다.
“이런 사실을 확인할 즈음 폐암(흉막중피종), 포도막흑생종, 피부흑색종, 신장암 등 다양한 종양세포에서 BAP1 유전자 변이가 존재하고, BAP1 단백질이 암억제 기능을 갖는다는 연구보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BAP1이 어떻게 암억제 활성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죠. BAP1의 INO80 조절 기능이 암억제 역할과 관련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BAP1이 없는 폐암세포주에서는 INO80 단백질이 안정되지 못하고 분해되면서 농도가 크게 낮아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반면 인위적으로 BAP1을 넣어준 경우 농도가 다시 회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죠.”
뿐만이 아니다. 폐암 환자의 종양조직 암세포에서 이 두 단백질 모두 농도가 낮아 있는 것으로 나타나 INO80 조절을 통한 BAP1의 암발생 억제기능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즉 권종범 교수팀이 발견한 INO80-BAP1 분자기전이 실제 폐암 발생에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BAP1 유전자는 이미 15년 전에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그 기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그러다가 최근 2~3년 사이에 암억제 기능이 밝혀졌습니다. 신규 암억제인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BAP1 연구는 아직 시작단계에 있습니다. 그 중 최초로 밝혀진 몇 안 되는 기능 중 하나가 INO80 조절을 통한 DNA 복제 및 유전체안정성 유지 기능입니다. 향후 몇 년 내로 BAP1에 대한 많은 연구 논문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결과를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BAP1의 부재가 INO80 결손을 초래하고, 그 결과 DNA 복제가 비정상적으로 진행되면서 유전체불안정성이 야기됩니다. 결국 이로 인해 암이 발생하는 거죠. 하지만 이를 명확하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후속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겠죠.”
기존에도 폐암억제를 위한 연구는 타 연구진에 의해 상당부분 진행됐다. 권종범 교수는 “우리팀의 연구는 암 발생과 관련한 무수한 연구결과 중 하나”라며 “새로운 기전을 이해하는 데 일조했다는 정도로 그 의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암의 발생은 종종 많은 종류의 유전자 변이를 동반한,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두 개 유전자 기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죠. 수많은 과학자들이 엄청난 노력을 투자해서 암의 발생 원인을 연구해오고 있지만 암 관련 유전자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매년 새로운 암억제 유전자들이 발견되고 있는 중이죠. 저희팀이 발견한 BAP1은 그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을 통해 폐암 발생에 대한 새로운 기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상태죠.”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가 맺은 결과

권종범 교수가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세포분열과 유전현상의 핵심요체인 DNA 복제에 대한 분자기전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적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권 교수팀은 이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암억제인자인 BAP1과의 기능적 상호 연관성을 발견했다. 그는 “암 발생의 원인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지만 기초적인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가운데 암억제단백질의 기능과 상학적인 의미를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했다.
“저희팀의 이번 연구는 INO80 유전자 결손 생쥐 제작 기간까지 고려하면 7년이 소요됐습니다. 실제 연구기간을 계산하자면 약 5년 정도 되겠네요. 그 가운데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많았어요. 모든 연구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잖아요. 변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과학연구는 지금까지 몰랐던 과학적 사실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며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분명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즐겁지만은 않은 게 또한 사실이죠.
중요한 주제일수록 경쟁그룹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그들보다 먼저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해요. 연구비와 연구인력 면에서 부족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연구환경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새로운 실험기법을 구축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러한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실험결과를 얻었을 때 용기와 에너지가 생기게 됩니다. 절대 포기하고 않고, 연구결과를 따라 꾸준히 단계적으로 진실을 규명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권종범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INO80의 DNA 복제기능 연구과정에서 BAP1이 INO80를 통해 DNA 복제정상화와 유전체안정성을 도모하는 새로운 기전을 규명한 사례다. 또한 흉막중피종 형성에서 그 임상학적인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로써 권 교수팀은 BAP1의 DNA 복제역할과 유전체안정성 기능을 최초로 규명했으며 암 억제인자로서 BAP1의 세포 내 기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됐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앞으로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BAP1은 흉막중피종, 흑색종 및 신장암 등의 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더 많은 종류의 암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죠. 따라서 BAP1의 세포 내 기능과 작용기전을 이해하고 그 조절경로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면 항암제로 응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BAP1의 DNA 복제 및 유전체안정성 기능을 규명하고 이 기능의 결손이 흉막중피종 발생의 원인 중 하나로 제시한 저희팀의 연구결과는 단기적으로 흉막중피종 치료제 개발에 이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종류의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지식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계적인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지에 게재되며 주목을 받고 있는 이번 연구를 성공으로 이끈 권종범 교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한다”며 앞으로의 방향을 차근차근 이야기 했다.
“먼저 BAP1과 INO80의 DNA 복제 과정에서의 역할과 관련 분자기전을 상세히 규명할 것입니다. 이는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포유류 세포의 DNA 복제기전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거든요. 그 다음으로는 INO80을 통한 BAP1의 암억제기능에 대한 연구를 더욱 진행할 것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BAP1은 아마 여러 종류의 암억제에 기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INO80을 통한 암억제기전이 폐암 외에 다른 암 종에서도 작용하는 일반적인 경로인지 조사하고 생쥐를 이용해 본 가설을 구체화하기 위한 후속연구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10-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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