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일본 국립성육(成育)의료연구센터 연구팀은 인간 배아줄기세포와 인공만능줄기세포를 이용해 1~2㎝ 크기의 '미니 장(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1㎤ 크기에 이 소장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설사나 변비약에도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사람의 소장과 마찬가지로 상피, 근육, 신경 조직을 모두 갖춘 것으로 밝혀졌다. 10년 전만 해도 줄기세포로 장기를 만드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화되기 어려운 미래학자들의 희망사항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을 통해 놀라운 결과들이 소개되고 있다. 27일 ‘사이언스 얼럿(Science Alert)’은 미국의 우스터폴리테크닉대학(WPI) 연구진이 시금치에 있는 잎맥을 모세혈관과 같은 사람의 혈관 조직으로 변환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잎맥 활용해 움직이는 심장조직 만들어
WPI 연구진은 환자 치료를 위해 크게 부족한 장기를 공급하기 위해 인공장기 개발에 주력해왔다. 줄기세포 분화를 통해 여러 종류의 장기를 제작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번번이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줄기세포를 통해 장기의 모습을 갖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혈관 조직이 없는 장기였다. 특히 5~10 마이크로미터 굵기의 모세혈관(capillaries)으로의 분화를 시도했을 때 세밀하게 구성된 혈관조직을 재구성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모세혈관이란 세동맥과 세정맥 사이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혈관을 말한다. 동맥에서 갈라지는 모세혈관전세동맥과 모세혈관후세정맥 사이에 모세혈관 망을 형성하고 그 통로를 통해 주변 조직과 산소, 영양분 등의 물질을 소통시킨다.
모세혈관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연구진은 엉뚱한 데서 해결책을 찾아냈다. 식물의 잎맥이다. 논문 주저자인 조슈아 거슬락(Joshua Gershlak) 연구원은 “식물과 동물은 유체(流體), 화학물질, 고분자 등을 소통시키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식물의 맥관(脈管) 조직만큼은 동물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유사성에 주목한 WPI 연구진은 이 조직을 만드는 대신 시금치 속에 들어있는 조직을 활용했다.
시금치 잎에서 세포를 제거한 후 남은 잎맥 안에 인간의 혈액세포와 유사한 용액과 미세 입자들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시금치 잎맥에 사람의 줄기세포를 살포하자 세포들이 잎맥을 통해 혈액을 공급받으면서 심장조직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건강한 심장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모세혈관 조직이 살아서 움직이는 인공 심장조직을 제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이 논문을 오는 5월 나노-바이오 융합기술 전문 학술지인 ‘바이오머티어리얼(biomaterial)’ 지에 게재할 예정이다.
“식물 조직으로 다양한 조직 분화 가능해”
잎맥을 구성하고 있는 섬유소(cellulose)는 살아있는 줄기세포와 비견되는 물질이다. 많은 연구소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실험실에서 이 섬유소를 양육하면서 실험에 활용해왔다. “특히 시금치 잎맥을 보고 혈관과 유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이 연구를 다른 식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른 식물 섬유소를 활용할 경우 또 다른 장기의 인체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나무의 섬유소를 통해 장기이식이 가능한 뼈 조직 분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진은 심장마비로 인해 심장 수축현상이 중단되고, 이로 인해 심장 조직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특별한 치료법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파괴된 조직에 대한 인공조직 이식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론에 머물고 있던 심장조직 이식이 현실화되고 있는 중이다. WPI 연구진은 시금치 잎맥을 사용해 제작한 살아있는 심장조직을 실제 환자에게 어떻게 이식할 것인지에 대해 그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인공 심장조직 이식과 관련,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체 내에서 외부 물질을 거부하는 면역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그 반응 여부를 밝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식물 조직을 활용해 인공장기를 분화시키려는 시도는 세계 여러 곳에서 진행돼왔다. 오타와 대학 펠링연구소가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해부터 사과 섬유소를 활용해 사람의 청각세포 분화를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달에는 잎맥에 전류를 흘려보내 움직임을 조작할 수 있는 ‘사이보그 장미(syborg rose)'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소형 3D 프린터를 활용해 인공장기 조직을 제작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이번 WPI의 모세혈관 조직 분화 성공은 향후 인공장기 개발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혈관 조직 분화가 가능해진 것은 물론 다양한 식물 조직을 세포 공학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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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3-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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