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의학자이자, 의사의 시조(始祖)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청진기 하나 없던 시절인 기원전(B.C) 시대에 활동했던 그가 환자의 질병을 알아낼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
고대 문헌에는 ‘히포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환자가 호흡할 때 입과 코에서 나오는 냄새를 반드시 맡아볼 것을 가르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흡을 분석하여 질병 여부를 알아내는 오늘날의 진단의학을 그는 이미 기원전 400년 전에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2400여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환자의 호흡을 질병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진단의학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오늘날의 의료진도 환자가 들이 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분석하여 진료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환자의 호흡을 분석하여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장비를 전 세계 14개 국가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공동연구진이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주목할 부분은 진단 과정에서 인공지능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한 번에 여러 개의 질병을 파악할 수 있는 기술
사람이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 진단을 내리는 장비는 이미 2~3개가 상용화되어 보급되어 있는상황이다. 음주 단속에 사용하는 ‘알코올 검사기’나 유해균인 헬리코박터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의 감염을 확인하는 ‘요소호기 검사기’ 등이 바로 그런 장비들이다.
반면에 공동연구진이 개발 중인 진단장비는 이들 검사기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한 번에 최대 17개의 질환을 파악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난소암이나 직장암 같은 각종 암은 물론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과 크론병(Crohn’s Disease) 같은 진단 절차가 까다로운 질병까지도 한 번에 진단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것.
공동연구진이 진단장비 개발에 착수하기 전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개발된 호흡관련 진단기술은 질병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 번 측정에 한 가지 질병밖에는 식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개발된 진단 장비는 암이면 암, 당뇨면 당뇨 등 각 질병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냄새를 동시다발적으로 식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성능에 대해 공동연구진의 일원이자 나노기술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이스라엘의 호삼 하이크(Hossam Haick) 박사는 “사람을 구별하는 작업에 지문이 사용되는 것처럼, 각종 질병들은 정상적인 건강상태와 구별되는 저마다의 화학적 냄새를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하며 “바로 그런 냄새의 특성을 통해 질병을 식별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은 숨을 내쉴 때 마다 질소나 이산화탄소 같은 가스를 배출하는 것 외에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을 배출하는데, 그 조성과 농도는 건강상태에 따라서 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VOC(Volatile Organic Compound)’는 대기 중에서 쉽게 기화되는 유기화합물들을 종합적으로 가리키는 용어로서, 그 종류로는 포름알데하이드 및 톨루엔, 그리고 아세트알데하이드 등이 있다.
하이크 박사는 “사람이 코와 입을 통해 내뱉는 가스에는 이 같은 VOC가 수십 가지나 들어있다”라고 언급하며 “그 중에서도 13가지의 VOC는 질병의 인자와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그 농도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으면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데, 이 판단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라고 설명했다.
당면 미션은 진단율 향상과 장비의 스마트화
공동연구진은 호흡이 질환과 연관되어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전 세계 9개 지역에서 환자와 정상인이 섞인 총 1404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검사를 시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86%라는 양호한 진단율을 확보했다.
이에 대해 하이크 박사는 “진단율을 90% 이상으로는 끌어 올려야 상용화가 가능한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가능성과 잠재력만큼은 어느 정도 확인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진단의학계의 지속가능 여부는 ‘건강한 사람과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 초기단계의 질병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구별해 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이크 박사의 말처럼 진단의학계의 현재 화두는 ‘질병의 조기 파악’이다. 특히 발견시기가 생존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폐암의 경우는 진단시기가 언제냐에 따라 생존율이 10%에서 70% 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공동연구진은 두 가지 과제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가지는 이미 언급한대로 진단율을 좀 더 높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장비를 소형화 및 스마트화 시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진단장비를 소형화하여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과제인데, 개발에 성공하면 통화를 하는 동안 내쉬는 호흡을 통해 자연스럽게 질병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 및 산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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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1-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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