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최신 항생제로도 죽지 않는 항생제 내성균[속칭 슈퍼 박테리아, 혹은 슈퍼 버그(bug)]은 인류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적이다.
미국에서만 매년 200만명 이상이 치료가 어려운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되며, 이 가운데 2만300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은 무분별한 항생제의 남용으로 인간이 자초한 ‘자연의 보복’일 수 있다. 항생제는 알약이나 주사제 혹은 연고 등 다양한 형태로 일부 국가에서는 처방 없이 마구 쓰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약국에서 파는 일반약품 중에 항생제가 적잖게 끼어 있다.
항생제는 또한 축산업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가축용으로 많이 쓰인다. 가축에게 투여한 여러 항생제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쳐 항생제 내성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다.
항생제를 접한 박테리아는 상당 수가 죽지만 개중에는 항생제를 회피하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하는 종류가 생긴다. 이 유전물질이 다른 박테리아에 수평 전이되면서 여러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다제 내성균이 생기게 된다.
문제는 이런 내성균들을 퇴치할 새로운 항생제가 신속하게 개발돼야 하는데, 내성균이 나타나는 속도보다 신약 개발 속도가 훨씬 늦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기존의 약품들 중에서 슈퍼박테리아에 효과가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또 여러 항생제를 효과적으로 조합, 배열하는 방법도 고안하고 있다.
“항생제 잘 배열해 조합하면 내성 억제 가능”
최근 미국 모피트 암센터( Moffitt Cancer Center) 연구원들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힌트를 얻어 항생제 내성균을 제거하거나 억제하는 새로운 수학적 방법을 개발했다.
현실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많은 항생제를 일일이 조합해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연구팀은 수학적 접근법을 활용해 대장균(E. coli )을 주어진 항생제 배열 조합에 노출시켜 생존력이 증가되는지 혹은 위축되는지를 알아봤다. 그 결과 두 가지에서 네 가지 항생제의 상이한 조합 중 70%가 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는 ‘플로스 컴퓨터 생물학’(PLoS Computational Biology) 9월호에 실렸다.
논문의 주 저자로 옥스퍼드대 컴퓨터과학과 대학원생이자 모피트 암센터 수학 종양학 연구원인 다니엘 니콜(Daniel Nichol)은 “이번 연구 결과는 항생제들을 주의 깊게 배열해 처방하면 항생제 내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논문의 시니어 저자인 제이콥 스코트(Jacob G. Scott) 모피트 암센터 방사선 종양학 연구원은 “이 연구 결과는 실험실에서 쉽게 테스트 해 볼 수 있으며 연구를 위해 복합 처방한 모든 약제들은 미국 FDA 승인을 받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약제이기 때문에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면 즉각 임상시험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하는 문제는 암세포가 표적 치료제에 내성을 갖는 것과 똑같기 때문에 연구에 사용한 수학적 방식은 두 분야 모두에 활용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타목시펜, 백혈구 활동력 강화해 내성균 억제”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의대 약학 연구팀은 유방암 치료제인 타목시펜(tamoxifen)이 백혈구(호중구, neutrophil)의 능력을 증강시켜 슈퍼 박테리아를 퇴치한다는 실험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13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실험용 쥐를 타목시펜으로 치료한 결과 대표적인 항생제 내성 병원균의 하나인 황색포도상구균(MRSA)을 제거하고 이 균의 생존율도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논문의 시니어 저자인 빅터 니제트(Victor Nizet) 교수(소아과 및 약학과)는 “갈수록 다제 내성균의 의협이 증가하고 있고 새로운 항생제는 드물어서 안전성이 입증된 기존의 많은 약 중에서 내성균에 효과가 있는 약을 찾아야 한다”며 “연구 결과 타목시펜은 면역력이 결핍되거나 기존의 항생제가 듣지 않는 환자에게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타목시펜은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타겟으로 해 유방암 치료제로 쓰이나, 백혈구를 조절하는 세라미드 생성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문의 제1저자인 로스 코리든(Ross Corriden) 박사(UC샌디에이고 의대 약학부 프로젝트 연구원)는 “세라미드에 대한 타목시펜의 영향력이 어떠한지 의문이 들었으나 투여된 약제가 백혈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 황색포도상구균에 감염된 쥐 가운데 타목시펜을 투여하지 않은 쥐는 하루 정도 생존한 데 비해 타목시펜을 투여한 쥐의 35%는 5일을 생존했다. 타목시펜을 투여한 쥐의 복막에서 추출한 MRSA의 수는 대조군에 비해 다섯 배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혈구의 활동을 증강시키는 약제는 타목시펜만이 아니며, 니제트 교수팀은 2010년에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스타틴계 약물에서도 이런 현상을 발견해 보고한 바 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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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10-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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