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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임동욱 객원기자
2012-09-19

‘세계 최고 기온’ 논쟁 끝났다 1913년 섭씨 56.7도가 공식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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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도 전국 각 지역이 찜통 더위에 시달렸다. 계속되는 무더위로 인해 모기의 생육이 저하되어 피해가 줄어들 정도였다. 경상북도 경산 지역은 비공식 기록으로 섭씨 40.6도를 기록했다. 이는 최악의 폭염으로 기억되는 1994년의 기록을 넘어서는 고온이다. 그 해 7월 서울은 38.4도, 강릉은 39.3도를 기록한 바 있다.

▲ 1922년 섭씨 58도의 최고 기온이 관측된 리비아 엘아지지아 근처의 이탈리아 군부대 ⓒB.A. Enrico Pezzi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대 최고 기온은 얼마일까? 공식적으로는 1942년 8월 1일 대구에서 관측된 40.0도가 가장 높은 극값으로 기록되어 있다. 극값이란 관측 이래 일일 최고기온을 말한다. 그러나 전국에 평준화된 측정장비를 설치한 것이 2006년이므로 그 전의 기록은 과학적으로 엄밀한 기록이라 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세계 최고 기온 기록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922년 리비아에서 관측된 섭씨 58도(화씨 136.4도)의 기록이 최근 세계기상기구(WMO)의 조사를 받은 후 왕좌를 빼앗겼다.

국제연구진을 조직해 조사를 벌인 결과, 비전문가가 부정확한 판독을 내리는 바람에 잘못 기록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로써 세계 최고 기온은 1913년 미국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 관측된 섭씨 56.7도(화씨 134도)가 차지하게 됐다.

연구결과는 ‘리비아 엘아지지아의 섭씨 58도 세계기록에 대한 세계기상기구의 조사 결과(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Assessment of the Purported World Record 58ºC Temperature Extreme at El Azizia, Libya)’라는 보고서로 정리 발표됐다.

당시 기록 재분석하자 여러 문제점 드러나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Tripoli)에서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 가량 달려가면 소도시 엘아지지아(El Azizia)가 나타난다. 1922년 9월 12일 이곳에 주둔해 있던 이탈리아 군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온도계의 눈금이 섭씨 58도를 가리킨 것이다.

이 기록은 1913년 7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데스밸리 계곡 내 그린랜드 목장(Greenland ranch)에서 관측된 섭씨 56.7도(화씨 134)도를 뛰어넘는 수치였다. 당시의 군부대 관측일지에도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어서 지금까지 최고 기온의 세계 기록으로 인용되곤 했다.

그러나 일부 기상학자들은 측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기록의 정확성을 의심해왔다. 대표적으로 1950년대 이탈리아 기상청 소속 리비아 지역 담당관 아밀카레 판톨리(Amilcare Fantoli)는 논문을 통해 “기블리(Ghibli)라는 이름의 고온풍이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면서 푄(Foehn) 현상이 일어났다고 해도 최고 온도는 58도가 아닌 56도였을 것”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세계기상기구(WMO)는 리비아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이집트, 모로코, 아르헨티나 출신 과학자들로 연구진을 조직해 2010년부터 면밀한 조사를 실시했다. 책임자는 세계기상기구 소속 극값조사위원인 랜들 처비니(Randall Cerviny)가 맡았다.

▲ 벨라니식스 온도계는 특이한 방식으로 인해 비전문가가 관측하면 섭씨 7도 가량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Gisuseppe S. Vaiana
연구진은 실제 관측일지를 확보해 데이터를 재분석하는 한편 당시 사용된 온도계를 세세히 살폈다. 그러자 △구식 장비가 사용된 점 △관측자가 비전문가에 가깝다는 점 △관측 위치에서는 사막 기후의 특징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인근 지역과의 기록 비교 결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 △해당 장소에서의 추가 기록이 부족하다는 점 등 대략 다섯 가지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기상 관측 훈련을 받지 않은 비전문가가 관측일지를 기록했다는 점이 가장 의심스럽다. 게다가 당시 사용된 온도계는 표준으로 인정 받지 못하던 벨라니식스(Bellani-Six) 방식이다. 영국 과학자 제임스 식스(James Six)가 개발하고 이탈리아 제조업자 안젤로 벨라니(Angelo Bellani)가 제작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벨라니식스 온도계는 U자 모양의 관에 알코올과 수은이 들어 있어서 온도 변화에 따라 쇠눈금이 오르내리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평소에는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온도를 읽어 올라가지만, 일정 온도를 넘으면 거꾸로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내려와야 하는 단점이 있다.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실제 온도를 섭씨 7도의 차이로 혼동할 수도 있다.

비표준 온도계와 비전문가의 조합이 오류 불러

게다가 당시의 관측일지를 살펴보면 일일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을 기록할 때 칸을 혼동해서 기록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기상 관측에 익숙하지 못한 비전문가가 기록했다는 증거다.

또한 1922년 9월에 인근 지역에서 측정한 기온 기록과도 큰 차이가 난다. 북위 32.5도에 위치한 엘아지지아의 9월 온도는 최저 섭씨 36도에서 최고 58도를 오르내리는데, 북위 32.8도의 주아라(Zuara) 그리고 북위 32.1도의 엘푸에하트(El Fuehat) 등 인근 지역의 기온은 최저 22도에서 최고 47도 사이였다.

▲ 엘아지지아 지역에서 기록된 1922년의 관측결과를 인근 지역과 비교하면 많은 오차가 발견된다. ⓒ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논문은 “비전문가가 눈금 판독을 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결국 세계기상기구는 “1922년 측정된 엘아지지아의 온도는 섭씨 58도일 수 없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최고 기온의 공식적인 세계 기록은 1913년 데스밸리에서 측정된 섭씨 56.7도가 차지하게 됐다.

최고 기온의 세계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처비니 조사위원은 세계기상기구의 발표자료를 통해 “극서 지역 거주민을 위해 건물을 지을 때 극한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재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각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뜨거운 모하비 사막에 실험실을 마련한 것도 내구력이 강한 재료를 찾아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세계기상기구 웹페이지(http://wmo.asu.edu/)에 접속하면 각 지역의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최저 기온은 남극 대륙의 보스토크(Vostok) 기지에서 1983년 7월 21일 관측된 섭씨 영하 89.2도가 세계 기록이다.

이번 발표로 왕좌를 빼앗긴 아프리카 대륙은 1931년 7월 7일 튀니지의 도시 케빌리(Kebili)에서 관측된 섭씨 55도(화씨 131도)를 최고 기록으로 대신 갖게 됐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09-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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