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 십 년 동안 고장난 시스템에서 나온 잘못된 데이터의 공급 때문에 수많은 생의학 분야 과학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무효가 될 수 있는 생의학 분야 논문은 3만개가 넘는다.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잘못된 세포주(cell line)를 사용했다고 네덜란드 과학자들이 플로스원(PLOS ONE) 저널에 발표했다.
잘못된 세포주 중 대표적인 것은 불멸의 세포로 유명한 헬라 세포(HeLa cell)이다.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에서 채취한 암세포는 적당한 조건만 조성하면 계속 번식해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신기한 세포이다.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을 따서 ‘헬라’라는 이름을 얻은 이 불멸의 세포는 수십 년 동안 생물학과 질병 연구의 모델로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 세포는 실험실에서 배양할 때 다른 세포를 변화시키는 약점을 가졌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잘 못 된 세포로 실험해서 얻은 논문이 지금까지 무려 30,000여개가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네덜란드 라드바우트 대학(Radboud University)의 빌렘 하프만(Willem Halffman)과 세르즈 호르바크(Serge Horbach) 연구원은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다고 라드바우트 대학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불멸의 ‘헬라 세포’가 다른 세포 오염시켜
실험실에서 헬라 세포는 다른 세포에 비해 아주 빠르게 증식함에 따라 다른 세포의 배양을 잠식해 들어갔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헬라 세포만 해당하는 부작용은 아니고, 다른 불멸의 세포에게도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오염된 세포주가 451개가 넘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 문제는 간단한 만큼이나 매우 심각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폐암을 연구했다고 생각하고 실험결과를 모아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들이 실험실에서 사용한 조직이 알고 보니 폐암 세포가 아니라 간 세포였다는 식이다.
혹은 사람의 세포라고 생각하고 실험해서 데이터를 얻었는데, 생쥐 세포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였다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했다. 인간의 피부암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생쥐 세포를 연구하는 식이다. 많은 경우에 과학자들은 이런 실수가 저질러졌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오염된 세포에 바탕을 둔 실험을 고의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잘못된 데이터를 분석한 만큼 실험결과는 재현되지 않는다.
호프만과 호르바크는 웹오브사이언스(Web of Science) 데이터 베이스를 훑어서 잘못된 세포주에 바탕을 둔 과학논문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국제세포주인증위원회(ICLAC International Cell Line Authentication Committee)가 관리하는 잘못된세포주등록(Register of Misidentified Cell Lines) 자료를 활용했다.
하프만은 1955년 이후 이렇게 잘 못 된 세포주가 개입된 논문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를 벌여 모두 33,000개 논문이 연관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은 아직도 온라인에 올라가 있으며 다른 연구자들이 인용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잘 못 된 세포를 가지고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많은 생의학 전문가들도 이렇게 451개의 세포주가 오염됐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수년간 세포배양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연구자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더 꼼꼼한 규범을 적용하거나 위생적인 세포배양컵을 사용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들이 이용하려는 세포가 잘 못 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테스트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과 비용도 들어가기 때문에 생략되곤 한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연구결과를 빨리 발표해야 하는 압력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하프만은 “연구결과를 빨리 발표하라는 압력을 줄이는 한편으로, 모든 과학자들에게 실험전 유전자 검사를 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과학자들은 “우리는 누구의 명성에 흠을 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과연 우리는 실수에 의해서 발생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자 잘 못 없어도 공표해야
아마도 한 가지 해결책은 “잘 못 된 세포를 가지고 실험하고 작성한 30,000개의 논문은 모두 다 공표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논문 저자들은 주장했다. 과연 그 논문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ICLAC의 아만다 케이프스-데이비스(Amanda Capes-Davis)회장은 2015년 세계 최대 논문 표절 및 철회 감시 사이트인 ‘리트랙션 워치’(Retraction Watch)에서 세포주가 오염되기는 아주 쉽다고 경고했다.
하프만은 “생의학 세포 보급기관은 이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때로 사기업에 가까운 기관에서는 명성에 흠이 잡히거나 재정상의 손실을 우려해서 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밝히기를 거부한다.”고 말했다고 사이언스얼러트는 보도했다.
불멸의 헬라 세포를 제공한 헨리에타 랙스는 미국 버지니아 주 클로버에서 담배농장을 하는 흑인 노예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30세쯤 자궁에 이상을 느껴 출산 이후 찾아간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호전되는가 싶더니 종양이 빠르게 번지면서 1951년 10월 4일 사망했다.
그녀가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의료진은 암조직을 채취해서 조지 가이(George Otto Gey)박사에게 보냈다. 가이 박사는 배양 조건만 맞으면 이 세포가 죽지 않고 끝없이 번식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암세포가 증식능력을 가진 악성 종양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특성을 살려 헬라 세포는 생물학 연구의 표준으로 사용돼 소아마비 백신, 항암치료제, 에이즈치료제 개발은 물론, 파킨슨병 연구와 시험관 아기 탄생 등 의학 발전에 활발히 이용돼 왔다.
지금까지 약 20톤의 헬라세포가 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이용해서 11,000개의 특허가 나왔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7-10-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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