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6,2018

‘생명’은 외발자전거의 숨가쁜 균형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의 ‘동적평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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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 교수가 ‘생명’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말하는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이라는 개념은 독일의 생리화학자 루돌프 쇤하이머의 실험에서 빌려온 것이다.

하지만 동적평형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는 과정이 신이치 교수의 말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쇤하이머라는 과학자의 실험이 그 개념을 완전히 증명한 것도 아니고, 이전에 비슷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과학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신이치 교수의 개념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물질의 구성성분에서 생명체 내부의 화학반응으로

루돌프 쇤하이머(Rudolf Schoenheimer)는 1898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941년에 죽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1922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의사로서도 다양한 경험을 했겠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생리화학이라는 분야와의 만남이었다. 그가 연구하던 20세기 초엽엔 생명현상에 관심을 갖던 일군의 화학자들이 생리화학과 생화학을 정초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쇤하이머도 다른 과학자들처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행한 그의 연구들이 훗날 쇤하이머를 다시금 기억하게 만들었다. 과학자이자 과학사가인 로버트 쾰러(Robert E. Koehler)는 쇤하이머를 “아주 적절한 시기에 중간 대사과정이 중요한 문제임을 간파했”던 인물이라고 평한다.

적절한 시기라는 말은 당시 방사성 동위원소로 분자를 표지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뜻이다. 소화와 영양이라는 생리현상은 호흡 및 배설과 더불어 당시의 생리화학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였다. 동물이 섭취한 단백질이 어떻게 소화되고 흡수되고 배설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이 난무했지만 누구도 정확한 기제를 밝혀낼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많은 과학자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예를 들어 1841년 프랑스의 화학자 뒤마(Jean Baptiste Dumas)와 부싱고(Jean-Baptiste J. D. Boussingault)는 식물과 동물이 음식물을 섭취하는 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들에게 유기물질은 오로지 식물에서만 만들어지며 동물은 이를 소비하기만 할 뿐이었다. 따라서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과 같은 유기물의 합성장소는 식물이 될 수 밖에 없으며, 동물은 생합성을 할 능력이 없다. 동물은 식물이 소중하게 합성한 물질들을 분해하고 소비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동물생리학의 주요주제는 산화와 연소과정으로 집약된다.

이러한 가설은 독일의 생리화학자 유스투스 리비히(Justus von Liebig)에 의해 처음으로 반박된다. 자신의 실험결과를 근거로 리비히는 동물이 지질과 녹말 및 당분을 합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리비히만 이런 허무맹랑한 그저 그런 이론을 반박한 것이 아니다. 의학을 실험생리학의 기초 위에 놓으려 했던 프랑스의 실험의학자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도 동물의 간에서 글리코겐이 합성된다는 실험으로 프랑스 화학자들의 의견을 반박하는 데 일조했다.

베르나르의 글리코겐 합성 실험은 동물이 영양분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과정이 동적 과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실험의학에 대한 그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험은 동물의 신진대사과정의 동적 과정을 완벽하게 기술할 수 없었다. 당시의 실험들은 더욱 정교한 측정기술 없이는 진전이 불가능했다.

리비히의 제자인 칼 보이트(Carl Voit)에 이르러 영양의 생리적 기능이 신진대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과, 영양분의 기능은 몸의 필수 성분들을 유지하고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신진대사를 연구하는 생리화학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동물이 신진대사의 균형을 유지하는가로 좁혀졌다.

보이트는 여기서 더 나아가 “공장에 대한 정보는 일년에 그 공장이 얼마나 많은 상품을 만들어내는지로 알 수 있는 것이지, 그 공장이 가지고 있는 기계 하나하나를 조사한다고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보잇에게 생리학의 주제는 몸을 드나드는 물질에 대한 것이지,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기관이나 조직 혹은 몸에서 만들어지는 중간대사산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물질에 대한 관심이 더욱 강한 화학자 보잇의 학풍이 녹아 있는 것이다. 당장 끌로드 베르나르는 이러한 견해를 반박했다. 베르나르에게 보이트의 생명관은 “집에 대해 알고 싶으면 집이 아니라 문으로 드나드는 물건들만 연구하면 된다”라는 투로 들렸을 것이다.

베르나르의 견해는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드릭 홉킨스(Frederick G. Hopkins)로 이어졌다. 홉킨스는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의 중요성을 발견했고 비타민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사실로 훗날 노벨상을 수상한다. 홉킨스의 견해는 생리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물질이 아닌 생명현상, 화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생명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생명의 이러한 특징을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이라고 불렀다.

홉킨스는 19세기의 생리화학이 생명체의 구성성분을 밝히는데 집중했다면 20세기의 생화학은 생명체 내부의 동적인 화학반응을 밝히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베르나르와 마찬가지로 홉킨스도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는 없었다. 쇤하이머가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식으로 생리화학자들의 관심이 옮겨가던 시기였다.

과학사에 대한 관심

<동적평형>에서 신이치 교수는 쇤하이머가 ‘동적 상태(dynamic state)’라고 부른 말을 ‘동적 평형’으로 고쳐 부른다.

“나는 여기서 쇤하이머가 발견한 생명의 동적인 상태(dynamic state)라는 개념을 한층 더 확장하여 동적평형이라는 단어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 말에 대응하는 영어는 ‘다이내믹 이퀼리브리엄(dynamic equilibrium)’이다.

해변에 서있는 모래성은 그곳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만들어낸 효과로서 그곳에 있는 동적인 무언가이다. 나는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무언가란 평형이다.

자기 복제를 하는 존재로 정의된 생명은, 쇤하이머의 발견에 다시 한 번 빛을 비춤으로써 다음과 같이 재정의될 수 있다. 생명이란 동적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그는 <동적평형>에서 과학사를 자세히 훑지 않는다. 예를 들어 쇤하이머가 중간대사물질을 생리학의 중요한 주제로 생각하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된 생리화학에서 생화학에 이르는 배경이해가 필요하다. 화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생리화학의 전통 속에서 ‘생명은 그 구성성분으로 결정된다는 견해’가 지배했던 당시, 생리학자인 베르나르는 생기론을 배척하고 물리/화학을 수용하면서도 생물학의 고유성을 지키고자 했다.

그렇게 베르나르에 의해 제안된 개념이 ‘항상성(homeostasis)’이다. 베르나르의 전통은 생리화학자들이 동적인 과정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고 영국에서 홉킨스가 이러한 관심을 ‘동적평형’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 1913년이다. 쇤하이머의 책이 출판되는 1942년보다 무려 30년 전에 쇤하이머를 있게 한 지적 전통이 존재했던 셈이다. 뉴턴의 말처럼 어떤 과학자던 거인의 어깨에서 멀리 볼 수 있을 뿐이다.

신이치 교수의 책은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주도 달려있지 않다. 따라서 저자가 홉킨스가 먼저 사용한 이 말을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자신의 연구경험과 쇤하이머의 연구결과로부터 한 과학자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얻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작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부족한 국내과학자들은 충분히 배울만한 점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독자들에게 알려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건 쇤하이머라는 위대한 실험과학자가 존재하기 위해 과학을 지켜왔던 선대학자들이 잊혀지는 것을, ‘잊혀진 과학자’ 쇤하이머도 원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동적평형이란 무엇인가

쇤하이머의 연구결과와 신이치 자신의 경험은 홉킨스가 깨달았던 바로 그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다. ‘생명이란 동적인 평형 상태에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한가지 중요한 계시가 숨어 있는데, 그것은 가변적이고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특징으로 갖는 생명이란 시스템은 그 물질적인 구조 기반, 즉 구성분자 자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즉, 생명현상이란 구조가 아니라 ‘효과’인 것이다…… 외발자전거를 타고 균형을 잡을 때처럼, 오히려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평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동적평형>은 신이치 교수의 ‘동적평형’에 대해 많은 장을 할애하지 않는다. 잡지에 기고했던 그들을 모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생각을 길게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동적평형’이라는 개념이 잘 와 닿지 않는 독자들은 지그소 퍼즐의 비유로 생명을 설명하는 신이치 교수의 탁월한 설명을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10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퍼즐 조각은 전체를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라는 말에서 ‘상보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난 후, 이보다는 좀 더 유연한 생명의 이미지를 위해 ‘진동’이라는 개념을, 네트워크 속에서의 생명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되먹임 과정’을 읽고 나면 독자들은 GP2가 사라진 생쥐가 왜 멀쩡했는지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유전자를 넉아웃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정란을 비롯해 새끼 마우스까지 탄생시켰다는 것은 곧 그 과정에서 동적평형이 무슨 수를 써서든 결여된 조각을 보완해 가면서 분화, 발생 프로그램을 끝까지 완수했다는 뜻이다. 반작용의 귀결, 즉 복고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평형이 탄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후 계속되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신이치 교수의 탁월한 설명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기억의 분자와 동적평형

생명이 그것을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이해로 설명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생리학에서는 철 지난 사고방식으로 취급되던 시기에도, 여전히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진 과학자들이 존재했다.

특히 기억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랬는데 <동적평형>에 등장하는 엥거 박사의 일화가 재미있다. 그는 기억이 특정한 물질의 형태를 띠고 해마에 저장된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쥐의 습성을 이용해 그는 훈련시킨 쥐의 뇌에서 추출한 뇌액을 다른 쥐에 주사해 기억이 전승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실험은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재현되지 않았다.

쇤하이머의 ‘동적평형’, 즉 생명현상이 끊임없는 분자의 교환 위에 성립한다는 통찰을 생각하면 기억이라는 현상도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다.

“이것이 기억이라는 것의 정체다. 사람의 기억은 뇌 어딘가에 비디오테이프 같은 것이 오래된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게 아니라 ‘상기된 순간에 만들어지는 무언가’인 것이다. 즉, 과거란 현재이며 그리운 것이 있다면 그건 과거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립다는 상태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

뭔가가 생생하게 기억난다면 과거가 생생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생생한 감각 속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기억은 여러 번 기억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 기억이다. 당신이 몇 번이고 떠올리고 그때마다 아련하게 그리워했으며 동시에 조금씩 바꿔온 그 무언가이다.”


기억을 ‘동적평형’이라는 틀로 이해했다면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가에 대한 생물학자의 답을 들을 차례다. 이것 또한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정답은 <동적평형>의 1장 중간 쯤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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