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오감(五感) 중 촉각(觸覺)만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피부가 일부 특정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과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최근 독일의 과학자들이 촉각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피부에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후각 세포를 발견했다고 보도하면서, 피부 속의 후각 세포는 냄새를 감지하는 기능 외에도 상처가 난 곳을 찾아가 피부 재생을 도와주는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련 링크)
코 외의 다른 부위에도 후각 수용체 산재
사람이나 동물은 어떻게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그것은 코 속에 후각 수용체(olfactory receptors)가 있기 때문이다. 후각 수용체란 냄새가 나는 물질의 화학적 자극을 받아들여 이를 전기적 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를 말한다.
코의 안쪽 맨 위에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분포돼 있는 후각 수용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직 코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심장이나 폐 같은 신체의 장기는 물론 피부나 혈액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져 과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그 이후 후각 수용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코에는 350개 이상의 후각 수용체가 존재하고, 각각 서로 다른 냄새에 수용체가 맞춰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리고 약 150개의 수용체는 코 외의 다른 부위에 산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보훔대의 연구진은 최근 코 외의 다른 신체 부위에 있는 후각 수용체가 어느 정도 후각 능력이 있는지와 기타 다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실험에 착수했다. 실험 대상은 피부로 정했다. 왜냐하면 심장이나 폐, 혈액 보다 시료 채취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세포 생리학과의 다니엘라 부쎄(Daniela Busse) 교수와 한스 하트(Hanns Hatt) 교수는 우선 피부 표피의 주요 성분인 케라티노사이트(keratinocyte)에 있는 후각 수용체가 냄새에 반응하는 정도를 테스트했다.
그들은 실험을 통해 방향제나 향수 등에 들어 있는 향기의 원료인 백단유(sandalwood)가 ‘OR2AT4’라는 피부 후각 수용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백단유란 백단향을 증류해 만든 기름으로서, 향수나 향초의 원료로 주로 쓰인다.
이어서 연구진은 시험관 및 배양 조직에서 5일 간 백단유와 케라티노사이트를 혼합시켰다. 그 결과 표피 세포의 증식이 32퍼센트 증가했고, 세포 이동은 거의 50퍼센트가 넘게 증가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부세 박사는 “OR2AT4는 일반적으로 백단향을 감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수용체인데, 냄새를 맡는 기능 외에도 근처에 백단향을 발산하는 백단유가 있으면 곧바로 활성화돼서 세포 증식과 이동을 촉진시킨다는 점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수용체는 코에 있는 수용체처럼 두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원래의 기능 외에도, 세포의 ‘분할 및 이동(divide and migrate)’을 유발하는데 주로 사용 된다”고 전하며 “이는 손상된 피부를 치유하는 중요한 경로”라고 덧붙였다.
상처 치료 및 피부 노화 방지 효과 전망
보훔대 연구진은 OR2AT4가 피부 상피세포에 존재하면서 냄새를 맡는 역할로서가 아닌 피부를 재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을 밝혀냈다. 즉 OR2AT4 세포가 활성화했을 때 피부 세포가 증식하고 이동하는 과정을 촉진시켜서, 특히 상처가 난 부위의 피부를 아물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규명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모넬화학감각센터(Monell Chemical Senses Center)의 조엘 메인랜드(Joel Mainland) 박사는 “최근 들어 신체 각 부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는 후각 수용체가 하나둘씩 발견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따라서 피부에서 후각 수용체가 발견된 것이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지만, 이 수용체가 상처 치유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용된 백단향의 농도는 코 안의 수용체가 활성화되는데 필요한 농도, 즉, 우리가 보통 냄새를 맡는데 필요한 농도보다 천 배나 높았다”고 밝히며 “따라서 피부 재생과 같은 치유 효과를 증진시키려면 방향 요법보다는 스킨 크림 같은 상태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훔대 연구진이 진행한 실험에서는 천연 백단유 기름과 10가지의 합성 기름이 사용됐다. 그리고 그 중 3가지 기름에서만 유의성 있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하트 교수는 “후각 수용체들이 매우 정교하게 맞추어져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사람의 수용체에는 유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 별로 후각 수용체는 남들과 다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하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아직 사람마다 수용체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 효과가 있는 백단유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혹은 심지어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 하트 교수의 생각이다.
한편 보훔대의 연구진은 피부에서 감지된 OR2AT4 수용체 외에도 다양한 다른 후각 수용체들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하트 교수는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후각 수용체들이 치료 분야나 화장품 분야에서 활용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피부에 있는 다양한 후각 수용체들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내기까지는, 농축된 향수들을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트 교수는 강조했다.
이 외에도 하트 박사는 “후각 수용체가 세포생리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동료들, 특히 임상의들에게 설득시켜야 할 임무가 남아있다”고 하면서 “후각 수용체를 갖고 있는 일부 암세포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를 알아볼 것”이라고 전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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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07-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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