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연구자들이 20세기는 전자를 제어하는 전자공학기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빛을 제어하는 광자공학기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실리콘은 현대 전자공학기술을 구성하는 주요한 전자소자에 사용되고 있는 반도체 소재입니다. 현재의 반도체 실리콘 기반 전자공학기술을 이을 차세대 광자공학기술을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이라고 하죠.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의 실현에 있어 반도체 실리콘 물질로 만들어지는 효율적인 광원의 개발이 매우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실리콘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할 필요가 있는 거죠."
반도체 실리콘의 발광을 향상시키다
국내 연구진이 반도체 실리콘물질의 낮은 발광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핫루미네선스(Hot Luminescence, 고온발광) 메커니즘을 규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조창희 DGIST 신물질과학전공 교수팀이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리테쉬 아가왈(Ritesh Agarwal) 교수팀과 공동으로 반도체 실리콘의 발광효율을 높이는 메커니즘을 밝힌 것이다.
조창희 교수팀은 반도체 실리콘과 금속을 구조적으로 결합해 만든 플라즈모닉 메타물질에 핫루미네선스 메커니즘을 적용, 본래 발광하지 않는 반도체 실리콘 물질을 발광하도록 유도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반도체 실리콘은 고유의 낮은 발광효율로 발광소자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주로 컴퓨터 프로세서와 메모리 등 전자소자의 소재로만 활용돼 왔고 반도체 실리콘 기반의 발광소자를 개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조창희 교수팀은 이런 가운데 연구를 통해 핫루미네선스 메커니즘을 이용, 반도체 실리콘을 나노 금속 공진기와 결합함으로써 가시광선 영역에서 효율적인 발광을 유도한 것이다.
"그동안 실리콘 물질이 갖는 고유한 간접천이 에너지 띠 구조에 의해 실리콘 물질에 기반한 효율적인 광원의 개발은 매우 어려운 문제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번 저희팀의 연구를 통해 반도체 실리콘을 나노 금속 공진기와 구조적으로 결합해 핫루미네선스라는 새로운 발광 과정을 유도했어요. 이번 연구는 이에 대한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죠."
그렇다면 본래 발광하지 않는 반도체 실리콘 물질로부터 발광을 유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실리콘의 역할을 우선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반도체 실리콘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를 구성하는 전자소자, 즉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메모리 등을 만드는 중요한 반도체 소재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자공학기술을 실리콘 전자공학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죠. 컴퓨터 프로세서나 메모리 등의 전자소자는 전자의 흐름, 즉 전류의 신호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가 고도화됨에 따라 사람들은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더 빠르게 처리하길 원하죠. 그런데 전류의 신호로써 정보를 처리하는 전자공학기술은 대용량 초고속 정보처리 측면에서 한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류의 신호가 아닌 빛의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써 초고속 대용량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인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물론 더욱 구체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지만 조창희 교수팀의 이번 연구를 통해 핫루미네선스라는 새로운 발광 메커니즘을 규명함에 따라 반도체 실리콘 물질 기반의 고효율 광원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의 실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심어주고 있다.
호기심 끝에 얻은 핵심 아이디어
조창희 교수팀은 반도체 실리콘을 나노 금속 공진기와 결합함으로써 이번 연구를 성공시켰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부단한 연구가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011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때 연구 성과가 있었습니다. 나노 금속 공진기의 플라즈몬 공명 현상을 이용해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함으로써 CdS(황화 카드뮴)라는 직접천이 반도체 물질의 발광에 필요한 시간인 재결합 수명을 1000배 이상 빠르게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죠. 이 결과를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머터리얼즈'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효율적인 광원 개발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반도체 실리콘 물질에 비슷한 개념을 도입해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라는 호기심을 갖게 됐죠. 이렇게 아이디어가 개발된 셈이에요."
그렇게 연구를 진행시켰고, 조창희 교수팀은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창희 교수팀은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반도체 실리콘은 발광에 필요한 시간인 재결합 수명이 밀리초 정도로 매우 긴 편인데, 이 시간이 매우 길게 되면 발광 효율은 매우 낮아지게 된다. 조창희 교수는 "반도체 실리콘을 나노 금속 공진기와 결합함으로써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재결합 수명을 피코초 정도의 매우 짧은 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며 "즉,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대학원 학생시절부터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만큼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조창희 교수는 실리콘 물질 기반 광원을 개발하는 것이 큰 도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결과 2011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때 지도교수에게 연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당시 지도교수님도 제안한 아이디어에 대해 매우 흥미로워했다. 바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총 3년 정도의 연구기간이 있었습니다. 2011년에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시작된 연구는 2012년 9월 제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신물질과학전공에 임용된 이후에도 연속적으로 수행됐어요. 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핫루미네선스라는 새로운 발광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핫루미네선스 과정은 반도체의 전자와 포논, 그리고 금속의 플라즈몬이라는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상당히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요. 이러한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분광학적 기법과 이론적 모델링을 도입했고 그 과정에는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에 없던 반도체 실리콘과 나노구조 금속이 결합된 플라즈모닉 실리콘이라는 새로운 물질을 디자인했고, 핫루미네선스라는 새로운 발광 메커니즘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발광 효율의 지표로서 측정된 양자효율은 수 퍼센트 정도로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아직은 다소 낮지만 향후 연구개발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연구 결과는 무엇보다 차세대 초고속 대용량 정보처리 기술인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의 구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새로운 발광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은 다양한 광소자 개발에 있어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 연구는 물질을 구성하는 다양한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제어함으로써 새로운 물성을 발현시킬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물질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디자인함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물성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과학자로서 사명감을 느낀다는 그는 "내 연구의 방향은 물질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이를 통해 신물질을 디자인해 인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는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훌륭한 과학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몸담고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신물질 연구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전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8-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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