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8,2017

미군이 발견한 ‘한국출혈열’

박지욱의 메디시네마(69) 낙동강 전투 : 최후의 고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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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에 관한 미국 영화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2차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있었던 전쟁이었고,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아서랍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분명한 상흔은 하나 남겼는데, 바로 한국전쟁(the Korean War)에서 걸린 괴질인 ‘한국 출혈열’ 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지요.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우리를 1950년 9월 6일 낙동강 전선 60km 북방의 어느 야산으로 데려갑니다. 우리 국민들에게도 익숙한 미 육군 보병 24사단(스미스 부대)의 부대원들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카메라는 일부 살아 남은 패잔병 신세가 된 십 수 명의 병사들과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의 딱한 처지를 보여줍니다. 본부와 무선 통신도 끊기고, 상황 파악도 안되고, 사기도 바닥입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본부가 있는  ’465고지’로 가기 위해 행군을 시작합니다.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우거진 풀숲이나 나무 위에서 병사들을 공격하는 북한군 매복조와 저격수들, 적의 강력한 포격, 지뢰밭, 병사들의 공포, 하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가 마침내 고지의 기슭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미 고지는 적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소대장은 대원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과연 그들은 고지를 점령할 수 있을까요?

60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흑백 영화로 이야기의 흐름이나 장면들이 솔직히 썩 수준급이라고 할 수는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정전 3~4년 이내에 만든 영화라 6·25전쟁의 기억을 생생하게 담은 영화로 볼 수는 있습니다.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물론 엑스트라들도 참전용사들이라 실감나는 군인 연기를 펼칩니다. 배우들 중에는 70년대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미드’ <전투Combat>에서 주인공 역을 맡을 빅 모로루(Vic Morrow)도 있습니다.

촬영장은 우리나라가 아닌 캘리포니아의 야산인데 이 땅이 황량한 풍경과 매우 닮았습니다. 극중에 생포된 북한군이 뭐라고 말하지만, 한국인인 우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알고 보니 중국인이 북한군 역을 맡았군요.  그를 소대장이 심문을 하는 장면은 다른 영하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소대장은 한국어 회화 수첩(?)을 꺼내 “왜 항복하니?”, “일어서라!”, “가거라!” 란 말을 합니다. 고증된 장면이겠지요? 그런데 질문을 던져놓고 답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궁금합니다.

이 영화는 단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보여주지만, 이후의 전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UN 군의 이름으로 제일 먼저 전쟁에 투입되었던 미 육군 보병 제24사단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던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거의 궤멸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주어진 임무, 즉 파죽지세인 북한군이 남하를 최대한 저지해 증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 와중에 사단장이었던 딘 소장도 포로로 잡히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증원 부대와 함께 8월 초에는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합니다.

덕분에 부산 교두보는 지켜졌고 북한군의 주력을 낙동강으로 모으게 합니다.  덕분에 9월15일에는 적의 후방인 인천에서 상륙작전을 펴 대반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천의 성공과 함께 9월19일에는 UN군이 낙동강전선 돌파도 시작됩니다.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미국 뉴욕 맨해튼, 바테리 파크.  ⓒ 박지욱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 미국 뉴욕 맨해튼, 바테리 파크. ⓒ 박지욱

하지만 625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유엔(UN)군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납니다. 10월에 이미 중국 군대를 만났고, 그 다음 해 여름에는 전혀 새로운 적을 만납니다. 이 적은 야산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총칼도 없이 조용히 장병들을 공격해 쓰러뜨렸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정체를 드러낸 적도 없었습니다.

다만 병사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와 고통의 몸부림을 통해 그들의 끔찍한 습격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견고한 보초선을 넘나들며 아군을 공격하는 그 보이지 않는 적은 바로 ‘한국형/유행성 출혈열(Korean/Epidemic Hemorrhagic Fever)’이었습니다.

환자들은 갑자기 심한 두통과 몸살로 시작해서 복통과 구토가 납니다. 그리고 39︒C를 넘는 고열을 보이며 눈에 핏발이 서고 온몸에 멍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장 기능이 망가져 소변마저 만들지 못하다가 발병 1주일 째 정도되면서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회복기에 접어듭니다. 그런데 이때 소변량이 너무 많아서 심하면 저혈압이나 쇼크에 빠져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이후로 사나흘 정도의 고비만 잘 넘긴다면 아무 후유증 없이 회복되는, 도깨비 같은 병입니다.

1951년 여름에 유엔군의 첫 환자는 생겼고 전쟁 기간 중 모두 3,200명의 유엔군 장병들(미군만 2,000명 이상)이 출혈열에 걸려 대략 5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치사율은 16%). 일단 1951년에 미 육군 산하에 출혈열 연구팀을 조직합니다(~1957년까지 서울에서 활동). 먼저 쭈쭈가무시병(털진드기병; Scrub typhus)과 비슷하다고 보고, 병을 옮기는 진드기를 박멸하기 위해 1952년부터 매년 2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군복에 살충제를 뿌립니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습니다.

미군 당국으로서는 당혹스러웠겠지만 출혈열은 오래 전부터 동북 아시아에 있어온 병입니다. 20세기 전반기부터 우리 농부들은 추수기에 이 병에 걸려왔었지요. 전쟁 때문에 만주와 시베리아에 주둔했던 소련군 수천 명, 일본 관동군도 1만 명 이상이 이미 출혈열에 걸렸고, 악명 높은 731 부대도 이미 출혈열 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서방 세계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1951년에 처음으로 한반도에서 이 병에 덜컥 걸린 것이지요.

유엔군만 걸린 것도 아닙니다. 북한군, 중국군도 출혈열에 걸렸고, 유엔군이 ‘세균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유엔군 역시 같은 병을 앓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2년 후, 정전이 되고 유엔군 대부분은 철수합니다. 하지만 미군 8만 명은 계속 이 땅에 주둔합니다. 덕분에 매년 미군 수십 명이 출혈열에 걸렸고 일부는 사망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주한미군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년 동안 200여 명의 미국 연구자들이 연구에 매달렸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두 손을 들어버립니다. 그 무렵 ‘한국’의 미생물학자가 ‘한국’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출혈열을 연구하려고 나섭니다. 미군은 너무 반가워 연구비까지 지원합니다.

우리 미생물학자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이호왕 교수(1928~ )였습니다. 물론 그의 연구는 미군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국군은 훨씬 더 많은 매년 100여 명의 환자가 생겼고, 민간인들도 수도권에서만 매년 500~800명의 환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얼추 매년 2,000 명 정도가 이 병에 걸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국민들에게도 심각한 질병이었지요.

이호왕 교수는 출혈열의 유행 지역인 경기, 강원 북부지역이 들쥐의 집단 서식지와 겹친다는 점을 들어 우선 들쥐를 연구합니다. 들쥐를 잡아 몸 속에서 병원체를 찾는 일이 먼저지요. 그런데 들쥐를 포획하던 현장 요원이 출혈열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사고가 생깁니다. 다행히 요원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들쥐와 출혈열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보다 더한 확증도 없겠지요? 새옹지마라고 할까요?

마침내, 6년간의 연구 끝에 우리나라 야산에 주로 서식하는 토종 들쥐의 80%를 차지하는 등줄쥐의 몸 속에 있던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바이러스는 들쥐의 분변에 섞여 몸밖으로 나오고, 이것이 마르면서 공기 중에 먼지처럼 떠돌다가 사람이 들이마셔 출혈열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이호왕 교수는 병원체의 이름을 한탄(Hantaan)바이러스로 정했습니다.

한탄바이러스. ⓒ 위키백과

한탄바이러스. ⓒ 위키백과

짐작하듯 한탄은 비무장지대를 흐르는 아름다운 강의 이름을 땄습니다. 이호왕 교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이름을 정했습니다. 첫째는 병원체가 처음으로 발견된 곳이 한탄강 유역(동두천읍 송내리)이라는 점. 둘째는 한탄강 상류의 격전지인 ‘철의 삼각지’에서 첫 환자가 발생했다는 점. 셋째로는 산이나 도시보다는 강의 이름이 부드러운 이미지를 준다는 점, 넷째로는 한탄강은 민족 분단의 상징이라는 점입니다. 심오한 뜻도 있고 어감 역시 세련된 맛이 있는 데다가 부르기에도 편해 귀에 쏘-옥 들어오는 이름입니다.

한국전쟁을 그린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고착된 전선이 유행지를 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UN군은 출혈열에 안 걸렸을 것이고, 미군은 한국 학자의 출혈열 연구 지원을 할 이유가 없었을테고, 그렇게 되면 출혈열은 아주 오랫동안 한국인들만 걸리는 풍토병으로 남았을까요?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어떻게든 이 병의 역사를 바꾼 큰 물줄기는 바로 전쟁이었다는 것, 전쟁을 통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병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이름을 의료계에 각인시킨 병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참고로 지금은 신증후 출혈열 (hemorrhagic fever with renal syndrome, HFRS)로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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