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7,2018

모국에서 배척당한 노벨상 수상자

노벨상 오디세이 (39)

FacebookTwitter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순간 갑자기 어지럼증과 함께 구역질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석증을 의심해야 한다. 이석증이란 특정 체위에서만 나타나는 안진(안구가 원하는 위치에 머물지 못하고 떨리는 증상)이 특징인 질환이다. 아직까지 병리와 생리 기전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이 질병에 대해 처음 기술한 의학자는 로베르트 바라니다.

비행기 조종사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위를 비행하다 보면 가끔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고 거꾸로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 같은 조종사들의 착시현상을 ‘비행착각’이라고 한다.

비행착각이 일어나는 원인은 조종사가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을 통해 느끼는 평형감각이 둔해져서 뇌가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늘을 바다라고 착각하거나 속도를 낮추는데 비행기가 하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정신경에 의해 자극받는 부분인 내이에 관한 연구로 현대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로베르트 바라니 박사.  ⓒ Public Domain

전정신경에 의해 자극받는 부분인 내이에 관한 연구로 현대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로베르트 바라니 박사. ⓒ Public Domain

특히 해상비행이나 야간비행 또는 혼자 고속 시계비행을 하는 경우가 잦은 전투기에서 비행착각이 발생하기 쉽다. 이런 비행착각을 방지하도록 훈련하기 위해 사용하는 의자가 있다.

베어링 장치가 있어 아주 부드럽게 회전하는 의자가 바로 그것인데, 이 의자를 통해 전정계가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기능하는지 연구할 수 있다. 이 의자 역시 로베르트 바라니가 개발한 까닭에 ‘바라니 체어’라고 불린다.

1876년 헝가리 출신 토지관리인의 아들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바라니는 어린 시절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골결핵을 앓아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바라니를 부축해주지 않았고, 그는 이를 계기로 의학에 눈에 돌렸다.

주사액 온도 차에 따른 환자 반응 연구가 계기

1900년 빈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한 그는 독일의 병원에서 근무한 뒤 다시 빈으로 돌아와 당시 유럽에서 귀 전문의로 유명하던 아담 폴리처 교수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사실 당시만 해도 신체의 평형을 유지하는 전정기관의 작용 방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상황이었다.

19세기 초부터 안진증과 내이의 질병으로 인한 어지럼증 등이 밝혀졌으나 이와 관련한 연구들은 그저 병리현상만을 관찰했을 뿐 이과학의 분야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 그런데 환자들의 치료 과정에서 바라니는 어지럼증과 관련한 매우 특별한 증상을 발견했다.

그가 환자들의 귀에 차가운 주사액을 놓자 강한 현기증을 호소한 것. 그는 따뜻한 주사액을 사용했지만 그럼에도 역시 환자들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그 과정에서 바라니는 환자들의 증세가 약간 다르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즉, 차가운 주사액을 사용할 때와 따뜻한 주사액을 사용할 때의 환자 눈떨림의 방향이 서로 반대 방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안진 증상의 결정적 요인이 주사액의 온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를 이용한 ‘온도안진검사법’을 개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바라니는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내림프액이 차가울 때는 비중이 커지면서 가라앉고, 따뜻할 때는 비중이 작아지면서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차고 따뜻한 온도 변화에 의해 반고리관 속의 내림프액이 다르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아낸 그는 1907년 연구성과를 정리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또한 그는 전정기관 증후군에 포함되지 않았던 여러 현상들을 연구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귀 및 신경 전문가들의 필수적인 검사법이 되는 지시검사를 개발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14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포로수용소에서 노벨상 수상 소식 접해

그런데 그가 노벨상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1915년 러시아군의 포로수용소에서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군의 군의관으로 참여했다가 포로로 붙잡혔기 때문이다. 참고로 1914년의 노벨상은 1915년 10월에서야 발표됐다.

결국 바라니는 스웨덴 왕자의 도움으로 1916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벨상을 받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바라니는 교수 임용도 되지 못한 채 빈의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배척당했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정부마저 그의 노벨상 수상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바라니는 유대교 신자인데다 헝가리 출신이라는 꼬리표까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황제를 헝가리 왕으로 섬기는 이중제국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인들은 헝가리 출신에 대해 강한 거부감과 더불어 인종주의 성향이 매우 강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절망한 바라니는 스웨덴 중부에 있는 웁살라대학에서 제시한 교수 자리를 받아들여 그곳으로 이주해버렸다. 이후 그는 1936년에 사망할 때까지 줄곧 스웨덴에서 머물며 수많은 진단법과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전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로베르트 바라니에 대한 오스트리아인들의 관점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해 지금은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위대한 과학자로 대접받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제29차 바라니학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어지럼증 분야에서 세계 최고 근위를 자랑하는 바라니학회는 로베르트 바라니 박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학회다. 이 학회는 어지럼증에 관한 전 세계 이비인후과 및 신경과 의료진과 기초과학자들이 모여 2년에 한 번씩 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어지럼증에 대한 연구 성과와 최신 동향을 공유하고 있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