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1,2018

두려움의 대상, 의사의 흰색 가운

<부카르 박사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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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서 인물의 직업을 보여주는 것 중에 하나가 옷차림이다. 경찰관, 소방관, ‘토그브란슈’라는 희고 긴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는 모습을 한 요리사에서부터 경찰관, 소방관 등은 특정 유니폼만으로도 직업 유추가 가능하다.

직업을 나타내는 옷차림은 작업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다. 요리사는 청결을 위해 흰색 모자를, 경찰관과 소방관 제복은 시민들에게 안전을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수많은 종류의 유니폼은 대중들에게 친숙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많은 유니폼 중 의사들이 입는 흰색 가운은 이상하게도 대중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흰색 가운에서 환자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의사가 흰색의 가운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다. 19세기 이전에는 의사가 가운을 입지 않고 외출용 옷을 입고 진료를 했었다. 당시 치료와 간병을 담당했던 것은 종교였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입었던 옷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과 반대되는 흰색을 선택한다. 흰색은 전통적으로 깨끗함을 상징한다.

의사들이 입는 흰색 가운은 깨끗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오염 물질이 눈에 띄기 때문에 세탁을 자주 했어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흰색 가운은 세균 전파를 막아 주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1929년, 캔버스에 유채, 135*75

<부카로 박사의 초상>-1929년, 캔버스에 유채, 135*75 ⓒ 개인 소장

흰색의 가운을 통해 의사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렘피카의 <부카르 박사의 초상>다.

깃을 세운 흰색 옷을 입은 남자가 오른손으로는 시험관을 들고 왼손으로는 탁자 위에 있는 현미경을 잡고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가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 형태의 흰색 옷은 의사 가운을 의미하며 부카르 박사가 의사라는 것을 나타낸다.

깃을 세운 것은 풀을 먹여 금방 다리미질한 옷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푸른색 셔츠와 청색 넥타이는 부카르 박사가 멋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뒤로 가지런히 넘겨진 머리와 다듬어진 콧수염은 박사가 외모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손에 들고 있는 시험관의 노란 액체는 부카르 박사가 만들어낸 신약 락테올을 나타낸다. 부카르 박사는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설사 치료제 락테올을 개발해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

왼손으로 잡고 있는 현미경은 박사가 신약 개발 연구에 매진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타마라 드 렘피카<1898~1980>의 이 작품에서 기하하적인 배경과 모노톤의 색채는 부카르 박사의 강한 개성과 냉정한 성격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렘피카는 이 작품처럼 색상을 제한해 인물들의 개성을 돋보이게 만드는 독특한 스타일의 초상화로 파리 상류층에 명성을 얻었다. 부카로 박사는 렘피카와 2년 계약을 맺고 자신과 아내 그리고 딸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모든 의사가 진료할 때 흰색 가운만 입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합병원 수술실의 의사는 녹색 가운을 입기도 하고 아동 병원의 의사들은 핑크나 청색의 가운을 입기도 한다.

녹색 가운은 수술 중 피가 튀는 것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아동 병원의 의사가 화려한 컬러의 가운을 입는 것은 아이들이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에게 느끼고 있는 공포심을 사라지게 할 목적이다.

-1890년, 캔버스에 유채, 66*57

<가셰 박사의 초상>-1890년, 캔버스에 유채, 66*57 ⓒ 개인 소장

흰색 가운을 입지 않은 의사를 그린 작품이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이다.

가셰 박사는 프랑스의 의사로, 예술에 대해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에 주목했고, 그뿐만 아니라 그는 오베르에 있는 자신의 집에 아틀리에를 마련해 세잔과 판화 작업을 했으며 세잔의 작품을 처음으로 사기도 했었다.

고흐는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의 소개를 받고 셍레미 정신병원을 나와 가세박사가 살고 있던 오베르에서 그를 만나 초상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고흐가 그린 초상화 중 가장 걸작에 꼽히고 있다.

푸른색 외투를 입은 가셰 박사가 탁자에 기대어 앉아 있다. 탁자에는 노란색 책과 폭스글로브가 꽂혀 있는 화병이 있다. 폭스글로브는 약초로 가셰 박사가 유사요법(질병의 원인과 같은 종류의 약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19세기 치료방법) 전문가라는 것을 나타낸다.

박사의 노란색 머리는 모자에 가려져 있고 오른손으로는 턱을, 왼손은 탁자에 올려놓고 있다. 가셰 박사가 흰색의 가운을 입지 않고 있는 것은 오베르 지방의 철도회사 전속의사였기 때문이다.

모자 옆으로 나온 노란색의 머리카락은 염색머리를 나타내는데, 가셰 박사는 독특하고 기이한 성격의 소유자로 실제로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녔다. 푸른색 외투는 창백한 가셰 박사의 얼굴을 돋보이게 한다.

턱을 받치고 있는 자세와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셰 박사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당시 가세 박사는 우울증을 앓고 이었다. 구불구불한 선으로 묘사하고 있는 얼굴, 옷, 배경 등은 가셰 박사의 복잡한 심경을 암시한다.

가셰 박사가 고흐를 만났을 때 61세였다. 고흐는 그에 대한 인상을 ‘가셰 박사는 너와 나만큼 예민하고 아파 보인다. 게다가 그는 우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그의 아내는 몇 년 전에 죽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의사이고 자기 직업과 신념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가셰 박사의 초상은 당시 고흐의 절망을 나타낸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의지했던 동생 테오의 상황이 여러 가지 이유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가셰 박사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으며 초상화를 그리면서 두 사람은 더욱 친해진다.

가셰 박사는 이 작품을 너무 좋아해 하나 더 그려달라고 해 고흐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대단히 기뻐한다. 하지만 후에 고흐가 가셰 박사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가셰 박사와의 불화로 고흐는 새로운 환경에서 고립된 채 지낸다. 가셰 박사가 그를 초대하거나 찾아오지도 않아서 혼자 고독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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