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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객원기자
2014-10-06

독성 낮춘 HIV 치료 물꼬 트다 [인터뷰] 유재훈 서울대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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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면역기능을 약화시켜 인체로 침입하는 해로운 물질이나 미생물을 방어하지 못하게 해 해를 입히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Humanimmunodeficiency Virus). 사람의 몸속에 침입한 HIV가 피 속에서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T세포를 파괴하면서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면역력이 점차 약해지게 된다.

에이즈의 발병 원인으로도 알려진 HIV는 현재 HIV-1과 HIV-2로 구분되는데, HIV-1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돼 있고 HIV-2는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특히HIV-1은 HIV-2보다 감염력과 독성이 강하고 분포지역도 넓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독성 없는 치료제를 위해

유재훈 서울대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교수 ⓒ 서울대학교
유재훈 서울대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교수 ⓒ 서울대학교

인간면역결핍증(AIDS)을 유발하는 HIV-1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는 최근 20년간 많은 연구진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일정의 성과도 거둬 상당수의 환자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치료제는 독성이 매우 강해 환자들은 힘겨운 치료과정을 겪어야 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HIV 바이러스의 특성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학계와 의료계는 기존의 치료제와 달리 독성이 적고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HIV 치료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국내 연구진이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1)를 치료하는 펩타이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유재훈 서울대 사범대학 화학교육과 교수팀이 세포 투과가 어려웠던 펩타이드를 통해 새로운 치료법의 길을 제시했다.

“기존에도 HIV-1 치료제는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부작용이었죠. 보통 HIV-1에 감염된 환자의 경우 치료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한다고 했을 때 10~20년은 약을 투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간이 전부 상하게 돼요. 이유는 치료제가 매우 독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요즘에는 HIV에 감염된 환자가 HIV로 인해 사망하는 게 아니라 HCV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C형 간염으로 인해 사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HIV 치료제는 간을 상하게 하므로 새로운 치료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의 변종도 문제가 됐다. 유재훈 교수는 “언젠가는 현재 사용하는 치료제에 대해 저항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러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바이러스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연구팀은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HIV를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했다”고 언급했다.

유재훈 교수팀은 HIV 가 만들어내는 특이한 RNA에 결합하는 펩타이드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해당 펩타이드는 HIV 바이러스가 감염된 세포 안으로 스스로 투과해 들어갈 수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 펩타이드가 세포를 투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상황에서, 유재훈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매우 획기적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HIV는 RNA 바이러스입니다. RNA가 인간의 세포성 면역기능에 관여하는 T림프구로 들어오면 DNA로 바뀌게 돼요. 바뀐 후 호스트 셀(host cell), 즉 숙주세포에 달라붙어 DNA인 채로 가만히 있습니다. 소위 말해 잠복기를 갖는 거죠. 가만히 있다가 여러 개의 바이러스 복제본을 만들어야겠다 싶으면 DNA가 RNA로 바뀌게 됩니다. 여기서 탯(tat) 단백질과 타르(tar)의 전사, 즉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이 발생하게 됩니다. RNA유전체는 타르(tar)를 포함한 7개의 구조적 경계를 갖고 이를 통해 탯(tat)을 포함한 9개의 유전인자를 갖습니다.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타르(tar)와 탯(tat) 단백질이 붙게 되면서 트랜스크립션이 굉장히 길어지고 잘 이뤄지게 돼요. 상호작용을 통해 덩치가 커지게 되죠. 규모를 키워나가면서 트랜스크립션 팩터(transcription factor)를 모으기 시작하고, 전사는 더욱 잘 이뤄지게 됩니다. 쉽게 설명해서, 전사가 이뤄지면서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때문에 해당 바이러스의 활성을 막으려면 전사를 막으면 되는 거예요. 타르(tar)와 탯(tat) 단백질을 막는 거죠. 이렇게 할 경우 DNA가 RNA로 못 가게 되겠죠.”

유재훈 교수팀의 연구는 바이러스 RNA에 결합해 유전자의 전사를 억제해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완전히 새로운 치료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개발된 펩타이드 신약 후보 물질은 기존 치료제에 저항성이 생긴 바이러스에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독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현재 시판 중인 강한 독성의 치료제를 대체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펩타이드의 세포 투과 가능케 한 연구

HIV 바이러스 ⓒ 위키백과
HIV 바이러스 ⓒ 위키백과

연구팀이 개발한 치료제가 주목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도 언급한 대로 펩타이드의 세포 내 투과를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재훈 교수팀이 진행한 이번 연구의 가장 핵심기술로써 결국 해당 기술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이 연구 역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치료제는 인체 내 세포의 핵 안으로 들어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학계에서도 펩타이드의 세포 내 투과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온 만큼 해당 연구는 앞으로 많은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펩타이드를 세포 내로 투과하게 하는 것이 이번 연구를 진행하며 가장 어려운 점이었어요. 본래 펩타이드는 세포를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세포막은 이중막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중 세포 표면은 물에 반응을 잘하는 친수성이고 안쪽은 물과 반응하지 않는 소수성의 성질을 지녀요. ‘친수성-소수성-친수성’의 구조로 이뤄져 있죠. 세포바깥은 친수성, 세포 바깥쪽과 안쪽을 경계 짓는 막은 소수성, 그리고 세포 안쪽은 친수성, 이런 구조입니다. 펩타이드가 세포를 투과하지 못하는 이유는 친수성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세포 핵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수성 부분을 통과해야 하는데 거기서 늘 막혔던 거죠.”

이는 펩타이드가 세포를 투과하기 위해서는 소수성과 친수성의 성질을 모두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수성과 친수성을 모두 지닌 대표적인 물질에는 에탄올, 즉 술이 있다. 술은 세포를 잘 통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도 술과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것은 주의 받는다. 가령 몸 안에 들어가야 할 약물은 1인데, 술과 함께 복용할 경우 10의 양이 흡수돼 간에서 과부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재훈 교수팀은 펩타이드가 친수성과 소수성을 모두 갖게 함으로써 이번 연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개발한 연구결과는 기존 물질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월한 성능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독성이 없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내추럴한 펩타이드로 만들었기 때문에 독성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때문에 상용화도 생각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동물실험을 끝내지 못했지만 이 부분을 통과하게 된다면 예상보다 빨리 HIV치료제 개발 단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재훈 교수팀의 연구는 특히 세포벽을 투과할 수 있는 펩타이드를 제조했다는 점에서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개발한 약물 중 세포 내 투과가 힘들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현재 한 개의 약물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조가 넘습니다. 이토록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데도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혈액 속으로 약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혈액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우리가 원하는 세포나 조직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역시 어려워요. 두 가지가 잘 이뤄지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을 겪은 것인데, 우리팀의 연구를 이용하면 실패의 가능성을 대폭적으로 줄여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치료제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거죠.”

획기적인 연구결과인 만큼 해외 학계도 놀랍다는 반응의 연속이다. 특히 화학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로 알려진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는 해당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해 상위 10%의 논문에게만 주는 칭호인 ‘핫 페이퍼(Hot Paper)’를 부여하기도 했다.

5년에 걸쳐 진행된 연구. 유재훈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펩타이드 세포 투과 기술을 성공시킨 만큼 많은 제약 기술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의”라며 “구체적인 예로 텍솔은 현재 항암제 중 가장 좋은 약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약에 내성이 생긴 암세포에는 들어가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우리팀이 개발한 펩타이드를 다뤄서 사용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암이 어느 정도 진전된 환자들도 치료의 가능성을 갖게 되므로 여러 모로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 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10-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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