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인 2002년 8월 ‘베티(Betty)’란 이름의 까마귀 한 마리가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놀란 사람들은 영국 옥스포드대 동물학자들이다. 이들은 서남태평양의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제도에서 사로잡은 까마귀 한 쌍을 관찰하고 있었다.
길쭉한 플라스틱 용기 속에 음식을 집어넣은 다음 까마귀 집에 넣어주고 까마귀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러자 암컷 ‘베티’가 철사 또는 고리를 용기 속에 집어넣어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을 빼먹는 것을 목격했다.
연구팀은 까마귀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지능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사한 실험을 계속했다. 그 결과 10번 중 9번 유사한 행동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들 까마귀가 인과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추상적 인지능력을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먹이잡이 도구를 만드는 까마귀들
새가 침팬지처럼 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 역시 암 까마귀 ‘베티’가 처음이었다. 10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베티의 솜씨에 놀란 과학자들은 베티가 태어난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과학자는 영국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의 행동생태학자인 크리스천 러츠(Christian Rutz) 교수였다. 그의 연구팀은 4년 동안 칼레도니아 제도에 머물며 생포한 18마리의 까마귀를 큰 새장 안에서 관찰했다.
이들 야생 까마귀들이 베티처럼 먹이를 잡기위한 도구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까마귀들은 잔가지를 부리로 다듬어가면서 한쪽 끝이 작은 낚시 바늘 같은 철사 같은 연장을 만들고 있었다.
썩은 판다누스 나무속에서 벌레들을 끄집어내는데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만든 도구가 85개에 달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철사 모양의 도구는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만드는 방식 역시 똑같았다.
2m 이하의 관목 속에서 작은 가지를 꺾은 다음 가지 한쪽 끝을 부리로 다듬어 낚시 바늘같은 작은 고리를 만들었다. 여기서 작업 끝난 것이 아니다. 나무에 파여 있는 구멍 속에 가지 끝을 밀어 넣은 채 이 도구를 구부렸다.
어떤 까마귀는 입으로, 어떤 까마귀는 가지 몸통을 발로 밟으대며 도구를 활 모양의 도구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런 모습을 비디오로 상세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관련 논문을 10일 영국왕립오픈과학저널‘(Journal 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제출했다.
까마귀 인지능력 놓고 찬·반 갈려
논문에서 러츠 교수는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들이 14년 전 베티가 했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으며, 그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14년 전 옥스퍼드대에서 베티를 연구할 당시 교수는 같은 대학에서 포스닥을 하고 있었다.
그가 베티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연구 상황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 당시 베티의 행동과 지금의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들의 행동이 일치하는 것은 과거 베티의 행동이 통찰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본능적인 행위였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
러츠 교수는 “14년 전 베티가 한 행동은 자연의 본능에 따라 이루어진 로봇과 같은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에모리 대학의 행동생태학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교수는 러츠 교수의 주장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동물 실험에서 모든 까마귀들이 자신의 도구를 구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연구 결과들은 까마귀의 이런 행위가 하드웨어에 입력된 본능적인 행위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퀸즈 메리 대학의 인지생물학자인 나단 에머리(Nathan Emery) 교수는 “베티에 대한 연구를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어려운 난관에 봉착해 동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혁신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며 “도대체 어떤 새가 낚시처럼 생긴 도구로 먹이를 꺼내먹냐?”고 반문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행동생태학자 알렉스 카셀릭(Alex Kacelnik) 교수는 “베티가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사람 같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는 추상적 인지능력을 지닌 최초의 동물이 된다.
베티의 행위가 본능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러츠 교수는 현재 8마리의 까마귀를 대상으로 후속 실험을 진행 중이다. 까마귀들이 벌레를 꺼낼 때 구부러진 도구를 사용하려 하는지, 아니면 구부러지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려하는지 그 선호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 연구결과에 따라 베티는 물론 베티의 고향인 뉴칼레도니아 까마귀의 비밀이 어느 정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까마귀들이 잔가지를 구부리는 이유가 단순히 본능적인 행위일 수 있다. 반면 침팬지도 하기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수도 있다.
연구 결과에 따라 동물의 인지능력을 놓고 벌어지는 과학자들간의 치열한 논쟁이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2002년 베티 등장 이후 동물학자들은 가장 영리한 동물로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를 꼽아왔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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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8-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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