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의 파일럿 조지 다브너(G. Daubner)와 존 보데(J. Bode)가 커다란 쓰로틀바를 밀자, 4개의 슈퍼차저 엔진이 폭발하듯 굉음을 내며 비행기가 발진했다. 이는 제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독일 상공을 누볐던 B-17 '날으는 요새(Flying Fortress)'가 다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9일 비행기 제작 전문 국제단체(Experimental Aircraft Association, EAA)가 마련한 이 행사에서 “B-17 폭격기는 햇볕에 반짝이는 은색의 동체와 긴 날개를 뽐내며 미국 메릴랜드 동부 공항 위의 1200피트 상공을 약 20분간 비행했다”고 프랑스의 AFP 통신이 23일 전했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 승리의 결정적 공신이 된 B-17 중폭격기는 미국의 보잉사가 설계했다. 1935년 최초의 시험 비행을 한 후, 2차 대전 중 유럽전선에 파견돼 나치 독일에 가한 전략폭격의 선봉에 섰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고, 이후로도 전 세계 공군에 보급돼 용맹을 떨쳤으나 지난 1968년 브라질 공군에서 퇴역한 이후 일반인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날 복원 행사를 통해 유럽 상공을 호령하던 웅대한 날갯짓을 다시 한 번 펼쳐 보이며 멋지게 부활했다. B-17 중폭격기가 '날으는 요새'로 불리게 된 바탕에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기술인 과급기가 큰 역할을 했다.
여기서 나오는 힘으로 커다란 동체 곳곳에 모두 13대의 11㎜ 중기관총의 장착이 가능해 호위기 없이도 독일 공군의 요격전투기를 상대할 수 있었다. 또 2724㎏의 폭탄을 싣고도 폭격기 치고는 매우 빠른 최고 시속 462㎞로 1만 675m 고도에서의 비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B-17 중폭격기의 진정한 위력은 주간 정밀 폭격에 있었다. 이를 위해선 또 다른 걸작 발명품이 필요했다.
포기할 수 없는 노든조준경
1942년 여름. 미·영 연합군은 독일의 전략 목표에 대한 폭격 작전을 두고 서로 의견이 갈렸다. 안전한 야간 폭격을 지속하고 있는 영국 공군에 비해 미 육군 항공대는 ‘날으는 요새’ B-17 폭격기 편대를 바탕으로 주간 폭격을 선택했다.
일찍부터 독일 상공에서 폭격을 시작했던 영국 폭격기병단 사령관 해리스 장군은 “독일 공군의 전투기 요격에 의해 주간 폭격작전은 큰 손실을 입었고 거의 가망 없다”며 포기한 상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육군 항공대가 주간 폭격을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발명자 칼 노던(Carl Norden)이 만든 신형 노든 폭격조준기(Norden bombsight)때문이었다. 이 조준기는 폭격수가 6000m 상공에서 피클통을 명중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함을 자랑했으나 이를 위해선 구름에 가리지 않는 고도에서 주간에 폭격을 해야 했다.
이 노던 조준기가 정밀했던 이유는 1931년 MIT에서 개발한 미분해석기를 그 시초로 탄생한 아날로그 컴퓨터가 쓰였기 때문이다. 전압, 길이, 전류, 온도 등의 연속적이고 계량적인 자료를 입력받아 곡선이나 그래프로 출력하는 아날로그 컴퓨터는 계산이나 측정의 정밀도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2차 대전 중에는 신속한 입력과 그 상태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인해 미 해군의 전함 등에 탑재된 16인치 함포의 탄도와 방위각 계산에도 활용됐다. 노든조준경의 조준 장치에는 망원조준경과 아날로그 컴퓨터로 이뤄진 계산기가 달려있었다. 이것이 항공기의 속도, 고도, 편류(偏流) 등에 적합한 탄도를 산출했다.
그러나 실전에 투입된 지, 얼마 안 돼 큰 문제점이 드러났다. 폭탄 투하를 책임지는 폭격수가 목표 상공에서 조준하고 있을 때, 폭격기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아무리 정밀한 노든조준기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도가 높을수록 오차가 훨씬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격항정 동안은 자동비행
1943년 3월 18일 북서 독일의 베게자크에 있는 U-보트 잠수함 조선소 상공에 미 제 8공군 소속의 폭격기 97대가 나타났다. 이 대편대의 주류는 B-17 중폭격기들이었다. 이 폭격기들에는 기존의 것들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장비가 탑재됐다. 그것은 바로 자동 비행 장치(AFCE)이었다.
폭격 조준수가 이 자동비행장치의 버튼을 누르면, 폭격기의 조종 권한은 폭격조준수에게 넘어가도록 기계적으로 설계돼있었다. 그 고도에서 비행기는 똑바로 목표 상공 위로 직진하게 된다. 만약에 대공포가 근처에서 작렬하고, 요격기가 공격을 하는 이유로 조종사가 폭격기를 움직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따라서 폭격조준수는 지상 목표물에 다가가기 전에 폭탄창(Bomb bay)을 열고, 노든조준기에 달려있는 두 개의 가로/세로 조준기를 돌려서 십자선을 지상 목표물에 맞춰놓는다. 이어 조준기의 십자 선에 지상 목표물이 겹치는 순간, 투하 버튼을 누르면, 일시에 폭탄이 쏟아진다.
폭탄은 사전에 조절한 간격으로 자동으로 투하된다. 선도기가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하면 뒤에 따르는 후속 기들은 그대로 똑같이 따라한다. 이것이 바로 폭격항정(Bombing run)이었다. 이 시간은 약 3분밖에 안되지만 승무원들에게는 일각이 여삼추처럼 길게 느껴진다. 이때 가장 낮은 고도가 되고, 여지없이 독일군의 강력한 88mm 대공포의 역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폭탄 투하가 완료되면 조종석의 계기판에 자동비행장치의 제거를 알리는 초록램프가 들어온다. 조종사는 이 신호를 보고, 이제 자신이 다시 조종 권한을 부여받을 때가 됐음을 인식하게 된다. 폭격이 끝나면 편대는 예정된 가상의 집합 지점으로 가서 귀환 길에 오른다.
이 베게자크 폭격 후에 미 제8 공군 사령관 에이커 장군은“몇 달간의 주간 폭격은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결론지었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4-10-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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